[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최근 한국 축구와 관련된 소식은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뤘으나, 예선전에서의 부진한 경기력에 어부지리로 얻은 성과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최근 여섯 번의 A매치에서 3무 3패로 부진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62위까지 떨어져 사상 처음으로 중국(57위)에 추월당하기도 했다. 

대표팀의 성적과 경기력으로 드러난 위기는, 대한축구협회의 위기 관리 능력과 대응력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일이 지난 한 달간 진실공방 속에 책임론으로까지 번진 거스 히딩크 감독 논란이다. 이러한 부정적 흐름은 비난의 화살을 넘어, 한국 축구, 대표팀 경기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성이 없었다. 성찰보다 해명에 가까웠다. 여론의 논란과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스포티비뉴스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축구의 문제를 진단하고 축구가 다시 국민의 희망과 기쁨으로 부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기획해 5회에 걸쳐 보도한다.

① ‘국민 안줏감’ 전락한 한국축구, 소통 없는 협회장 리더십이 화 키웠다

② 경험 없는 기술위-퇴보한 대표팀 : 인재 낭비-시간 낭비-돈 낭비

③ 속수무책 행정력 : 실무 모르는 회장단, 현장과 괴리된 의사 결정

④ 위기의 K리그, '협회'와 엇박자에 설상가상

축구계 인사들의 뼈아픈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2018년이 밝기 전에 한국 축구의 쇄신을 위해 대한축구협회가 결단을 내리고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정몽규 회장과 협회 집행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협회 내부 인사는 “실무 경험을 갖춘 행정 전문가가 의사 결정권이 있는 위치에서 함께 논의해야 한다. 팀에서 논의되어 실 단계로 올라가도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이 되지 않는다. 현장의 소리가 의사 결정권자에게 닿지 않고, 반영이 안 되니 조직 내부의 일 처리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정 회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협회 조직 개편과 임원진 개편을 말했다. 구체적 방안은 추후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축구인 출신 원로로 구성된 회장단에 협회 안의 다양한 실무를 경험한 행정가가 들어가거나, 젊은 인사를 등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뼈를 깎는 개혁을 위해 외부 인사 내지 외국인을 초빙하는 등 다각도로 협회의 체질 개선을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표팀 핵심 분야에 종사했던 인사는 “국제적 현장 경험을 갖춘 이들이 기술 파트의 요직에서 일해야 한다. 기술위원장은 현장 경험이 있어야 하고, 세계 축구 정세에 밝아야 한다”고 했다. 기술위원장 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 회장은 19일 회견에서 기술위원장이 대표팀 감독의 성적과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국가 대표 감독 선임위원회를 따로 구성하겠다고 했다. 둘을 분리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인사를 선임하는 게 중요하다. 

내부 인사로 돌려 막는 ‘회전문 인사’ 대신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기술위원장으로 최고 역량을 발휘하고, 한국 축구의 기술 파트 전반을 발전시키고 운영해 나갈 인물을 찾아야 한다.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공을 들이고, 고민해서 선임해야 한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협회의 비위 사건에 대한 명확한 조치와 투명한 재정, 한국 축구의 상업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협회를 향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선 책임 소지가 있는 부분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결단해야 한다. 

협회는 ‘경기력 회복’을 만병통치약으로 보고 있다. 김호곤 위원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대표팀이 신뢰를 잃은 이유는)경기력이라고 생각한다. 하루 속히 국민의 신뢰를 쌓기 위해선 경기력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 회장도 19일 기자회견에서 “히딩크 논란의 본질은 마지막 두 경기에서 팬들의 기대에 못 미친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표팀 전력 강화가 핵심 과제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앞으로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대표팀 경기력을 개선해 협회를 향한 모든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쌓인 의구심이 산더미다. 더구나 현 체제에서 대표팀 경기력의 개선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재정 문제도 있다. 협회가 실기를 이어가는 사이 대표팀의 인기와 관심이 폭락했다. 월드컵 본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기대보다 자조가 팽배하고, 상대팀을 응원한다는 반응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반납해야 한다는 팬들도 있다.

정 회장은 19일 회견에서 여자 대표 팀의 아시안컵 본선 진출, 남자 대표 팀의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 등을 성과라고 했고, U-20 대표 팀도 월드컵 16강에 올라 8강 목표에 조금 모자랐다고 했다. 이에 대해 K리그 고위 관계자는 "인적 자원과 재무적 측면이 중요한데, 재무적 측면을 해결하지 못하고 성적의 성과가 나왔다고 기뻐할 게 아니다. 현재의 단기 성과는 전임자의 공도 있다.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신 교수는 "정몽규 집행부가 재무구조, 재무상황에 대해 통렬하게 책임져야 한다. 기업인이 왔으면 경영이라도 잘해야 한다. 축구라는 상품을 월드컵 기간에 잘 팔 생각을 해야 한다. 기업 CEO 출신으로 축구 산업 확장을 약속해서 기대했는데, 3년 지나고 나서 한국 축구는 시장도 축소됐고, 실제로 영업에 관련된 모든 지수가 최악이다. 매출이 줄었고, 경상 이익은 적자다. 4년만에 오는 월드컵 특수가 있는데, 그럼에도 마이너스로 갈 수 있는 혼란에 빠져 있다. 숫자로 잡히지 않는 축구의 붐업이라도 월드컵으로 해야 하는데 그것까지도 다 잃고 있다"며 히딩크 이슈에서의 대응, 빈번한 대표팀 감독 교체 과정의 낭비를 지적했다. 

협회 재무 상황에 대한 비판은 다른 고위 인사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본인 공약도 못 지켰다. 약속도 못 지켰고 전문성도 없다. 히딩크가 오고 안오고 이슈는 중요치 않다. 정몽규 회장의 4년을 보자. 처음 축구협회에 입성할 때 선거를 치렀고, 공약 중 가장 달콤했던 것은 예산을 3,000억 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전보다 줄었다. 회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업성이다. 운영은 그 아래 부회장 등 전문가가 하면 된다. 회장은 무슨 역할을 했나? 본인의 포지션만 가져갔다. FIFA(평의원), AFC (부회장)에는 왜 들어갔나. 한국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무얼 했나. 프로연맹에서도 승부조작이 벌어진 시기에 있었고, 자살한 선수도 많았다. 리더가 고통을 가져가고, 아래가 행복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회장이 영광을 혼자 가져가고, 축구인, 축구팬들이 짐을 다 지고, 고통 받고 있다. 각국의 협회장이 사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업을 위해 IOC나 FIFA에 들어가고자 한다. 정 회장이 본인 사업을 위해 일하는지,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하는지 모르겠다."

신 교수를 비롯한 축구계 전문가들은 여전히 결과보다 과정과 실험, 단련이 중요한 11월 A매치와 유럽파가 빠지는 12월 동아시안컵이 신태용호와 현 협회 집행부가 버틸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이때도 부진한 경기력에 패배가 이어지면 비판 여론을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우선 협회는 11월과 12월 신태용 감독이 중심을 잡고 팀을 이끌 수 있도록 모든 논란에서 자유롭게 해야 한다. 외국인 코치 문제도 하루 빨리 결정해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더불어, 11월과 12월의 실패에 대비한 계획도 짜두어야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후, 선택지가 없다는 이유로 낭떠러지로 향하는 열차를 내버려둬선 안된다.

국가대표팀 핵심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지금이라도 히딩크 감독을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신 교수도 “어떤 사업에 투자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계약 기간이 남아있더라도 지속해서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이 되면, 손해를 보겠다는 판단이 되면, 멈추는 것이 맞다”며 협회가 경우의 수에 따른 플랜A, B, C를 준비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움직여야 한다며 현 코칭스태프에 대한 지지 문제에 대해 협회는 더욱 다양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11월을 잘 넘길지도 모르겠고, 12월 동아시안컵에서 중국 일본 북한 경기에 잘못되면 어떻게 될 건가. 행정하는 사람, 경영하는 사람은 냉정해야 하고 어떤 상항이든 경우의 수에 따른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신 교수는 “지금 아마 귀를 닫지 않고 눈을 감지 않았다면 협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정 회장도 다 듣고 읽었을 것이다. 기자회견에 고민의 흔적은 나타난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땅에 떨어진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9회 연속 본선 진출 좌절을 은근히 바랐던 이들은, 이 기회에 한국 축구의 대대적 개혁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못할 경우 한국 축구 산업이 입게 될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재앙은 넘겼지만, 개혁은 필요하다. 어쩌면 더 큰 재앙이 닥칠지 모른다. 정몽규 회장은 지금까지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혁명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