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A매치서 하나로 뭉친 모습을 보여준 대표 팀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울산, 한준 기자] 14일 밤 세르비아와 경기를 마치고 난 뒤 믹스트존은 붐볐다. 이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팀 선수들은 울산에서 머무른 호텔이 아니라 서울로 올라가 가족들을 만나고 해산하기에 일정이 빠듯했다. 대표 팀 언론담당관은 방송 기자와 펜 기자의 인터뷰 선수 시간 배분에 공을 들여야 했다. 방송 기자가 다른 선수의 인터뷰를 하는 사이, 손흥민은 펜 기자를 먼저 만났다. 그리고 방송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까지 시간이 비었다. 손흥민은 믹스트존에서 지인을 마주쳤다. “오늘 경기 좋았어. 정말 잘했다.” 손흥민은 축하 인사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비볐다. 

“아.. 이겼어야 하는데.”
“잘 했는데, 뭘.”
“축구는 결과 잖아요.”

이날 손흥민은 세르비아의 골문에 7차례 슈팅을 시도했다. 모두 골문 안으로 강하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번번이 세르비아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다. 전반전에는 파르티잔의 블라디미르 스토이코비치, 후반전에는 에이바르의 마르코 드미트로비치가 예리하게 골문을 파고든 손흥민의 슈팅을 막아냈다. 기막힌 슈퍼세이브가 연이어 나왔다. 득점하지 못한 게 손흥민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론의 생각도 마찬가지. 이날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홋스퍼에서 보여준 예리한 면을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르비아 대표 팀의 주장 브라니슬라브 이바노치비도 “공간을 주면 언제나 위협적이더라”며 막기 어려운 선수라고 호평했다. 

손흥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 팀이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울분을 표했다. 동유럽 축구를 대표 하는 강호 세르비아와 1-1 무승부를 거둔 것은 한 달 전 러시아와 모로코를 상대로 무력한 패배를 당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좋았다. 신태용 대표 팀 감독은 “1골을 내줬지만 11월 두 경기 모두 우리보다 앞선 상대를 만나 경기 내용이 더 좋았다”고 만족한 모습이었다. 슈팅 상황 외에도 손흥민은 부지런히 전방 수비를 펼치며 헌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에서 대표 팀에 대한 애정과 간절함이 전해졌다.

▲ 공격 때나 수비할 때 온 몸을 던진 대표 선수들 ⓒ한희재 기자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구자철은 “10월에 얻은 교훈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라며 한 달 만에 대표 팀이 달리진 이유를 말했다. “코칭 스태프가 원하는 게 명확했다. 분명히 안 좋은 경기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대표 팀의 부진한 경기와 안 좋은 분위기가 선수들 스스로의 자성과 반성, 강한 동기 부여를 끌어냈다. 바닥을 치고 일어난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선수들 스스로의 깨달음이 11월 A매치의 집중력과 헌신에 반영됐다. 

주장 기성용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차분하게 조용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기성용의 말에는 늘 뼈가 있다. 그의 말 안에 대표 팀의 현실이 담겨있다. 11월 A매치의 성과는 전술적 변화도 있지만, 선수들의 자세 변화가 가장 크다고 했다.

“지난 번보다는, 팀이 좀 더 팀다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나름대로 선수들도 책임의식이 강해졌다. ‘이 팀’에 책임을 갖고 경기를 하다 보니, 자기 팀이라는 생각을 갖고 경기하는 것 같다. 아직까지 월드컵까지 시간이 많기 때문에 그 사이 부상이나 여러 변수가 있을 수는 있는데, 어떻게 보면 지금 여기 있는 선수들과 나머지 선수들, 그 사이 안에서 월드컵 멤버가 정해진다. 선수들이 이제는 각자 그런 책임감이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지난 최종예선보다 선수들이 한발 더 뛰는 모습, 경기에 뛰지 않더라도 선수들이 서포트하는 모습에서, 자기 역할이나 팀에 대한 애정이 강해진 것 같다.”

바꾸어 말하면, 이전의 대표 팀에는 책임감이 결여된 모습이 있었고, 자기 팀으로 여기지 않는 선수도 있었다. 경기에 나가지 않는 선수들이 따로 노는 모습도 있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이야기도 있지만, 대표 팀은 사분오열되어 스스로 무너지고 있었다. 11월 A매치에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 대표 팀의 명예회복과 승리, 국민적 신뢰를 되찾겠다는 동일한 목표를 두고 합심했다. 콜롬비아전 승리와 세르비아전 무승부는 그 결실이다. 

▲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준 손흥민 ⓒ한희재 기자


좋은 경기를 하고 나니 선수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간절함에서 자신감이 더해져 상승 효과를 냈다. 두 경기 모두 경기 스코어 보다 내용이 더 좋았다. 구자철은 “개인적으로 이번 소집을 통해 느끼는 게 굉장히 많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의욕도 동기부여도 많이 찾아간다. (다음 소집인) 3월은 굉장히 먼 얘기지만 우리(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는 시즌 중이고, 소속팀에서 경기에 나가야 대표팀 부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팀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내일 (독일로) 돌아가서도 잘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 시간이었다.”

기성용은 여기서 안주해선 안된다고 다시금 선수들의 정신을 다잡았다. 

“여기서 선수들이 만족한다기 보다는, 이제 앞으로 월드컵까지가 중요한 시간이다. 동아시안컵이나 3월 평가전을 통해서 선수들이 100% 준비되지 않으면, 2014년에 어떤 결과 나왔는지 경험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그런 경험을 참고해서 잘 준비해야 한다.” 

이에 대해선 내내 무승부라는 결과에 아쉬워한 손흥민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바뀐 것에 대해 안주하면 안 된다. 나도 어린편이지만, 경기 전 선수들에게 이야기 한 것은, ‘우리가 콜롬비아전 한 경기 잘 했다고 잘하는 팀이 아니다. 상대가 우리보다 잘하는 팀이 아니다. 우리가 상대보다 한 발 두발 더 뛰어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게 맞는 말 같다. 두 경기를 잘 했다고 팬분들이 ‘잘한다. 한국 축구 볼만하다’고 이야기 하시는데, 나는 그게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선수들이 더 자신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이번 두 경기로 자신감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강 팀과 붙었을 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더 투지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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