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천안, 조영준 기자] "(유)광우 형이 떠났을 때 삼성화재는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더 독기를 가졌죠. 여기서 좌절하면 제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오로지 승리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길 수 있다면 몰빵 배구라는 말을 들어도 상관없었습니다. 어떤 배구를 하든 마찬가지죠."
'전통의 명가' 삼성화재의 저력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삼성화재는 올 시즌 개막전에서 KB손해보험에 2-3으로 졌다. 이어진 OK저축은행과 경기에서는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2연패에 빠진 삼성화재는 유광우(32, 우리카드)의 빈 자리가 커 보였다. 그러나 이후 6연승 행진을 달렸다. 새로운 주전 세터 황동일(31)과 공격수들의 호흡은 시간이 흐르며 나아졌다. 끈질긴 수비와 탄탄한 조직력을 중요시하는 삼성화재의 배구 문화는 올 시즌 초반부터 위력을 발휘했다.
삼성화재는 15일 천안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시즌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2라운드 경기에서 현대캐피탈과 클래식 매치를 치렀다. 지난 3일 1라운드 경기에서 현대캐피탈을 3-1로 꺾은 삼성화재는 이 경기에서 3-0(25-18 25-23 25-23)으로 이겼다.
2연패 뒤 삼성화재는 6연승 행진을 이어가며 승점 17점으로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지난 시즌 팀 창단 이후 처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삼성화재는 '전통의 명가' 재건에 나섰다.
'삼성화재의 배구' 계승한 신진식 감독
경기가 끝난 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은 "기본에서 졌다. 레프트 4명 전원이 모두 무너졌다"며 패인을 분석했다.
과거 삼성화재는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 배구를 추구했다. 팀을 위해 희생하는 문화가 형성된 삼성화재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V리그 7연패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2016~2017 시즌 삼성화재는 정규 리그 4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신진식 감독은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 배구를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신 감독은 "승리를 위해 범실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최근 남자 팀 상당수 구단은 강한 서브를 강조한다. 그러나 삼성화재는 강한 서브도 중요하지만 연속된 범실을 줄이는데 무게를 뒀다. 실제로 삼성화재는 팀 서브 부문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팀 공격종합(54.99%)과 오픈공격(50.15%) 퀵오픈(71.23%) 등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 팀 블로킹 1위에 오른 점이 인상적이다. 과거 수비에 치중하던 삼성화재는 현재 팀 수비 6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공격과 득점에서는 대다수 부문에서 1위를 달리고 '공격의 팀'으로 변했다.
주장 박철우(32)는 "감독님의 주문 가운데 하나는 범실을 줄이라는 점이다. 범실 가운데 서브 실책이 가장 많다. 감독님이 강조하는 점은 연속 서브 범실을 피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강한 서브로 상대 리시브를 흔드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연속 서브 범실은 팀 상승세에 제동을 건다. '실리 배구'를 추구하는 삼성화재는 쉽게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올 시즌 공격수들의 점유율에 대해 황동일은 "최대한 에이스인 타이스를 살리려고 한다. 또한 (박)철우 형도 버티고 있다. 팀이 이길 수 있다면 몰빵 배구와 분업 배구 등 어느 배구를 해도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과거 삼성화재는 안젤코 추크(34,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가빈 슈미트(32, 캐나다) 등이 있을 때 외국인 선수에 의존했다. 그러나 현재 삼성화재는 박철우가 버티고 있다. 타이스 덜 호스트(26, 네덜란드)는 현재 득점 2위(204점) 공격성공률 4위(53.33%)를 달리고 있다. 박철우는 득점 10위(126점) 공격성공률 1위(58.55%)에 올라있다.
두 공격수를 적절하게 활용하고 이들에게 해결사 소임을 할 책임감을 주는 것이 신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황)동일이에게 타이스는 무조건 점유율 40%를 가지고 가라고 했다. 박철우는 30% 나머지는 다른 선수들을 활용하라고 주문했다"고 밝혔다.
신 감독은 볼을 올려주는 세터와 공격수에게 똑같이 책임 의식을 심어줬다. 그는 "동일이에게만 잘하라고 주문한 것은 아니다. 타이스에게도 지시했는데 나쁜 볼이 올라와도 처리해줘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뒤늦게 전성기 연 세터 황동일, 시즌 막판까지 좋은 흐름 유지할까
유광우가 떠난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덧 서른을 넘은 황동일은 이런 점을 부담으로 생각하지 않고 독기를 품었다. 그는 "(유)광우 형이 떠났을 때 삼성화재는 끝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에 더 독기가 생기더라. 여기서 좌절하면 제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1cm의 장신 세터인 황동일은 높이가 장점인 타이스와 박철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지원했다. 또한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시절부터 산전수전 겪었던 경험도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현대캐피탈과 경기 도중 삼성화재의 전 사령탑이었던 신치용 단장도 황동일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황동일은 "단장님도 2단 공격 기회가 오면 무조건 때리라고 말씀하셨다. 제 장점을 살리라고 주문하셨는데 기본적으로 할 의무를 챙기고 그런 부분(공격)을 살리라고 하셨다"고 밝혔다.
박철우는 황동일의 장점에 대해 "많은 세터와 호흡을 맞춰봤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다. 어느 지점에서 볼을 올려주느냐가 중요한데 동일이는 키가 크고 높이도 좋기에 타이밍을 잘 맞춰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점이 큰 장점이고 나머지는 공격력"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황동일은 기복이 심하다는 약점이 있었다. 올 시즌 삼성화재의 '배구 문화'에 녹아든 그는 팀 6연승에 기여했다. 삼성화재의 키플레이어가 된 황동일의 선전은 시즌 초반 6연승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장기 레이스인 리그 일정을 생각할 때 황동일의 선전이 계속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배구 선수이기 전에 한 가족의 가장인 그는 책임감을 털어놓았다. 언제나 뒤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가족이 있다는 점이 황동일을 일으켰다.
그는 "정말 10년 만에 기회가 왔다. 아내와 아들에게 배구 선수 황동일이란 이름을 알리고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꼭 성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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