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
▲ '바람의 아들(오른쪽)과 '바람의 손자' ⓒ도쿄돔(일본),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 '바람의 손자' 이정후는 17일 대만과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만전 승리 일등 공신이다.

대만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선발투수 임기영과 마무리 투수 장필준도 큰 힘을 보탰지만 점수를 내지 못하면 이길 수 없는 것이 야구다. 많지 않았던 찬스를 살린 이정후의 3루타는 대표 팀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금 같은 1승을 안겼다.

이정후는 0-0으로 맞선 6회말 2사 1루에서 대만 선발투수 천관위의 가운데 몰린 커브를 받아쳐 오른쪽 담장을 맞히는 3루타를 쳤다. 이전 이닝에서 1사 1, 2루 위기를 넘겨 낸 한국이었다. 6회말 공격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한국은 분위기를 다시 대만으로 넘겨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하성의 볼넷에 이어 이정후의 3루타가 터지며 한국은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번 대회에는 이정후의 아버지 이종범이 코치로 참가하고 있다.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팩트다. 아들의 적시타를 본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종범 코치는 "순간 울컥했다. 슬펐던 건 아니고 감격했던 것 같다. 정후에게 고마웠다" 고 말했다.

이 코치는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순간에 왜 울컥했을까. 톱스타의 아들로 야구를 하는 이정후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피를 이어받는 선수다. 모두가 그가 야구를 잘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반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능력 부족'을 탓한다.

그런데 야구 선수 아들 출신 선수 가운데 이정후 정도의 임팩트를 주는 선수는 결코 많지 않다. 빈대로 야구 선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종범의 아들'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각종 견제와 부러움의 시선이 이정후를 따라다녔다. 차라리 평범한 선수인 것이 맘 편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고교 시절, 그에겐 많은 유혹이 있었다. '이정후'라는 이름값에 더해져 프로행을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정후의 부모는 이런 움직임을 모두 사전에 차단해다. 눈앞의 편안만 생각했다면 결론은 달랐겠지만 더 큰 미래를 위해 눈길을 딴 곳에 두지 않았다.

게다가 '아빠 이종범'은 그런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과 타격 폼이 달라도, 아들이 슬럼프에 빠져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감독, 코치들에게 아들을 온전히 맡겼다. 아들이 쓸데없는 자만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모든 해설 위원들이 '아빠가 치던 것 보다 훨씬 좋은 스윙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스윙이 완성됐다.

이정후가 한국을 결승으로 이끌 수 있는 한 방을 친 순간 '코치 아빠' 이종범이 눈물을 글썽였던 이유다. 자신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방송에서도 감정을 자제했던 이종범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더 냉정히 '야구 선수' 이정후를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지내던 시간 가운데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루키가 해낸 일이다. 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질 수 밖에 없는 한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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