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천의 한 카페에서 문기한을 만났다.
[스포티비뉴스=부천, 유현태 기자] 2017 시즌 K리그 챌린지의 주인공은 경남FC였다. K리그 챌린지 베스트 11에도 무려 8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경남 판'을 깨뜨린 1명은 부천FC의 미드필더 문기한이었다.

부천FC는 이번 시즌 아깝게 챌린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내내 3,4위를 오가며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지켰지만 시즌 마지막 7경기에서 1승 3무 3패로 부진했던 것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강원FC에게 덜미를 잡혔던 부천은 다시 한번 좌절을 맛봐야 했다.

'스포티비뉴스'는 지난 3일 부천FC의 숙소 근처에서 주장으로 한 시즌을 이끈 문기한을 만났다. 결과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한 시즌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후련해 보였다. 그는 이번 시즌 어린 선수들과 보낸 한 시즌에서 부천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시즌 복기: 개인은 80점, 팀은 60점

아깝게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친 문기한도 시즌 막판 부진을 이유로 짚었다. 분기점은 홈에서 열렸던 32라운드 FC안양전. 안양전 무승부 이후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팀이 조급해졌다.

"연승 가도를 달리다가 위기 상황이 왔을 때 대처를 잘하지 못했다. 안양전을 잘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계속 3위를 지키면서 유리한 고지에 있다가 비기고 지고 했다. 아쉬운 것은 없고 내부적으로 준비가 잘 안됐던 것 같다."

사실 부천은 시즌을 시작할 때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약화될 것이란 시선을 받았다. 짠물 수비를 이끌었던 한희훈(대구FC), 강지용(강원FC), 이학민(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 현재 성남FC)이 모두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들로 빈 자리를 메우는 동안 더 공격적인 경기로 리그 3위의 득점 기록을 냈다. 마지막에 무너진 것은 부족한 경험 탓이 컸다.

"(서울이랜드와 마지막 경기에서) 첫 번째 골도 동혁이 발에 굴절이고, 센터백 선수들이 잘하려다가 실수를 했다. 좋은 약이 됐을 것 같다. 경험이 부족하지만 올 시즌에 경기를 많이 뛰었으니까. 수비진에 조금 더 신구 조화가 됐으면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었을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부천다운 경기를 한 것 같다. 계속 할 수 있다고,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격했다. 아쉽지만 후회없는 경기를 한 것 같다."

문기한은 이번 시즌을 점수로 표현해달라고 하자, 매번 받는 질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성실하게 자신과 팀의 점수를 매겼다. 개인적으론 만족, 팀적으론 약간 부족했다는 평가였다.

"작년보다는 많은 경기를 뛰었고, 기회를 더 받았다. 경기력 면에선 수비적으로 열심히 뛴 것 같다. 개인적으론 출전도 늘었다. 체력 문제도 많이 지적하셨는데 좋아진 것 같다. 공격 포인트도 하나 올랐고 80점은 줘도 될 것 같다. 팀은 플레이오프를 진출하지 못했으니 5,60점 정도일 것이다."

◆ 공격적인 축구 가능했던 이유…'사고뭉치' 바그닝요에 대해

부천은 이번 시즌 공격력이 크게 좋아졌다. 지난 시즌 수비에 무게를 뒀다면, 이번엔 역습으로 나가는 과정에 더 공을 들였다. 부천은 이번 시즌 챌린지에서 득점 순위 3위에 올랐다. 경남, 부산과 함께 50골 고지에 올랐다.

"작년에 비해선 수비진이 많이 바뀌었다 뿐이지, 공격은 바그닝요, 진창수가 있어서 색을 유지했다. 공격도 잘하지만 수비적으로도 헌신적이다. 뒷심이 좀 부족했지만, 두 선수가 초중반을 끌고 갔다고 생각한다. 김신까지 합류해 창의적인 패스도 하고 근래에서 부천에서 보기 힘든 개인 돌파도 해서 분산이 됐던 것 같다. 공격수의 공이 컸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외국인선수 바그닝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뛰어난 실력과 함께 충동적인 행동으로 시선을 받는 선수기도 하다. 동료들의 평가는 경기장 밖의 평가와 다르다. 정갑석 감독은 "피치 밖의 바그닝요는 천사"라고 표현할 정도다.

"기사에 잘 좀 써달라. 이미지는 스스로 만들긴 했지만, 사람은 정말 '나이스'한 선수다. 경기장에 갈 때 다른 뇌를 가져오는 건지 완전히 바뀐다. 경기장 밖에선 인성이 정말 좋은데 '미치는' 것 같다."

지난 시즌 바그닝요는 강원FC와 챌린지 플레이오프에서 퇴장을 당했다. 부천은 강원에 후반 추가 시간에 실점해 1-2로 패하고 말았다. 바그닝요는 플레이오프 탈락의 책임감을 느끼며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평소 코칭스태프, 선수들을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할 정도로 사람들을 잘챙긴다.

"부담감이 됐을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힘을 못 줬으니까. 잘하려고 했을텐데 시즌 말에 성적이 나지 않았다. 경기 외적으론 모든 선수들이 좋아하고 유쾌하고 가정적이다. 심판진들한테도 한 번 말해주고 싶다. 심판들이 항상 경기 전에 바그닝요 자제시키라는 말을 듣는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이미 굳어진 것 같다. 심판들께서도 한 경기마다 평가해 주시면 좋겠다."

▲ 부천의 붉은 유니폼을 입은 문기한을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한국프로축구연맹

◆ 성장하는 기회였다…부천의 2017년

"감독님은 갖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최선의 선택을 했다. 안태현, 임동혁, 신인 고명석까지 2,30경기를 꾸준히 치렀다. 조금 더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됐다고 생각한다."

노련미와 경험이 중요한 수비진이 성장하는 한 해였다. 지난 시즌 주로 교체로 8경기에 출전했던 임동혁은 34경기에 출전하면서 든든히 최후방을 지켰다. 신인 고명석도 28경기에 출전했고, 프로에서 두 번째 시즌을 치른 안태현도 오른쪽 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해 36경기에 나섰다.

앳된 얼굴이지만 벌써 프로에서만 10시즌, 175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선수 문기한의 눈엔 부족한 것들이 보였나보다. 그는 팀을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로 꼽은 것은 '책임감'이다. 내가 팀을 이끈다는 주인 의식. 그것이 경기장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태현, 김한빈, 고명석, 임동혁은 모두 배우려는 마음도 있고 성실하다. 하지만 프로 선수라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FC서울 황현수, 전북현대 김민재 같은 선수들은 클래식 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하지 않나. 임동혁, 고명석도 그런 것들을 느끼고 발전시켜야 한다. 책임감을 갖고 했으면 좋겠다. 내 할 것만 하는 느낌이다."

"FC서울에 있을 시절 울산에서 이적한 현영민 선배를 보고 느꼈다. '나는 이 팀의 주장이 아니지만,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는 선수들이 늘어나면 팀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하더라. 제가 팀의 주장이었지만 다른 선수들도 조금 더 책임감을 가졌다면 팀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기한이 다음 시즌도 부천에서 보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는 "거취는 모르겠다. 11월달에 이야기를 구단과 잘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부천의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선수들도 경험을 많이 했다. 내년에는 더 잘하지 않을까. 분명히 감독님이 원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들이 알고 익숙하다. 감독들이 2,3년 정도는 팀 색을 입히려면 필요하다고 하지 않나. 내년엔 박진감 넘치고 공격적인 축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프로 축구 선수의 오프시즌은 어떨까

시즌이 막을 내렸다. 축구 선수들이 본인들의 업인 축구를 하지 않을 땐 무엇을 할까. 무려 8개월 동안 쉼없이 달려야 했다. 주로 주말에 경기가 벌어지니,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주말을 쉬지도 못했을 터. 문기한은 11월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휴식'을 꼽았다.

"시즌 중에 체력을 관리하는 노하우는 딱히 없다. 1주일 단위로 준비하니까, 경기 다음날은 쉬고, 3,4일 동안 훈련하면서 강도 조절하고 경기 전날 쉬고. 패턴은 좀 있다. 시즌 뒤 휴식 기간이 길진 않다. 12월 말부터 훈련을 시작하기 때문에, 11월을 잘 쉬어야 한다. 이제 축구 생각은 안하고 잘 쉬려고 한다. 선수는 그동안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는 게 필요하다."

선수들마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평소에도 유럽 축구를 보며 공부를 한다는 문기한은 직접 유럽으로 날아가 축구를 볼 계획이다. 함께 연령별 대표를 겪으면서 성장한 이청용, 구자철 등이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작년에도 이청용 선수를 보러 가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러 다녀왔다. 넓지 않은 인맥이지만 이번엔 구자철 선수한테 이야기해서 분데스리가를 둘러보고 올 생각이다. 축구를 하는 것에선 멀어지지만, 새로운 것들을 좀 보고 오려고 한다. 선수들도 유럽에 가서 직접 축구도 보고 했으면 좋겠다. 막상 가려니 막막해 하는 것 같다. 직접해보면 느끼는 게 많더라."

◆ K리그 챌린지에서 5년, 한국 축구의 뿌리에서

문기한은 FC서울에서 성장한 선수다. 쟁쟁한 선수들이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치는 곳에서, 자리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2013 시즌 경찰청 입대와 함께 K리그 챌린지 경험을 쌓았다. 이후에도 승격 전의 대구FC, 부천FC에서 활약했다. K리그의 치열한 주전 경쟁을 거쳐, 챌린지 최고의 미드필더로 우뚝 서는 동안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

그는 챌린지 창설로 축구계 자체엔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프로 무대가 넓어지다보니 선수들이 활약할 무대도 넓어지고, 클래식과 챌린지의 차이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례가 지난 3번의 승강 플레이오프다. 클래식 11위 팀들의 기세와 흐름이 좋지 않다곤 하지만, 3번의 승강 플레이오프를 모두 챌린지 팀들이 이기는 '법칙'을 만들 정도였다.

"확실히 클래식에서도 뛰었던 선수들도 오고 외국인 선수들도 오니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크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승격을 위해 싸우다 보니. 스플릿은 어느 정도 나눠지지 않나. 하지만 챌린지는 끝까지 순위 다툼이 끝나지 않는다. 군경 팀이 '쓸고' 다니는 시대가 지났다. 평준화가 됐다."

챌린지의 수준은 점차 높아지는데,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아직 즐기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1등만 바라는 분들이 많다. 축구 뿐 아니라 어디든 최고만 찾지 않나.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찾는 것 같다. 태국, J리그에선 3부 리그 팀들도 인기를 끈다고들 하더라. 아직 한국 축구가 가야할 길이 멀지 않나 싶다. 물론 승격 제도는 정말 잘된 것 같다."

그래서 그는 부천 팬들이 늘 고맙다고 한다. 부천 팬들은 거칠고 열정적이기로 유명하다. 지난 8월 팬들이 경남FC의 버스를 막아서는 일이 벌어져, 구단이 무관중 징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이 있어야 K리그도 존재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다른 팀도 이렇게 열광적일까 생각한다. 팬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힘이 났던 것 같다. 무관중 경기도 치른 뒤엔 팬들이 자제하는 것을 느꼈다. 뭔가 교훈을 느끼시고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스널-PSG를 현장에서 본 적이 있는데, 옆으로만 패스하니까 영국에서도 욕을 엄청나게 하더라. 축구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 팬들이 보기만 해도 아는구나 싶었다. 적극적이지 않고 도전하지 않을 때 야유하더라. 백패스 또는 횡패스할 때.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해야 한다. 팬들의 열정이 죽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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