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연주 ⓒ KOVO 제공

[스포티비뉴스=수원, 조영준 기자] "(5천 점 성공이) 나중에 다른 사람의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나중에는 다른 선수가 저보다 얼마나 빨리했는지가 비교되겠죠. 그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날 뻔했어요."

2005년 여자 배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구단의 주목을 받은 이는 두 명의 왼손잡이 공격수였다. 일신여상의 나혜원(31, 현 배구 교실 강사)은 1순위로 GS칼텍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 뒤를 이어 흥국생명에 입단한 이가 한일전산여고(현 수원전산여고)의 황연주(31, 현대건설)였다. 177cm였던 황연주와 비교해 184cm 왼손잡이 공격수였던 나혜원이 먼저 지명을 받았다.

황연주의 V리그 행보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2006년 1월 여자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 애초 황연주는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할 마음이 없었다. 그는 "저는 뒤늦게 배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했는데 프로에 올 생각도 없었다. 늦게 시작했고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떨어진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계약을 할 때 5년이더라 5년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고 덧붙였다.

▲ V리그 통산 5천 득점 달성에 성공한 황연주 ⓒ KOVO 제공

신인왕에서 기록의 여왕이 되기까지의 여정

황연주는 신인 시즌이었던 2005년 신인선수상과 서브상 그리고 백어택상을 거머쥐었다. 신인으로 최고의 시즌을 보낸 그는 이후 각종 기록을 갈아치웠다. 2010~2011 시즌에는 소속 팀 현대건설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됐다.

그의 약점은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로 작은 177cm의 키였다. 작은 키를 극복하기 위해 점프 체공력을 높였다. 매 경기 수차례 백어택을 시도했고 높은 블로킹을 이겨내기 위해 더 높이 뛰어올랐다. 이러다 보니 결국 무릎에 무리가 왔고 수술대에 올랐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에 위기가 닥쳤다. 그러나 꾸준한 재활과 훈련으로 이를 이겨냈고 어느덧 프로 10년째를 맞이했다. 프로에 입단할 때 5년만 뛰겠다는 생각은 10년으로 이어졌고 13번의 시즌을 치렀다.

황연주는 지난 13년간 V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격수였다. 그러나 늘 '이인자' 혹은 거포를 지원하는 보조 공격수에 그쳤다. 흥국생명 시절에는 김연경(29, 중국 상하이)이 팀 동료였다. 이후에는 외국인 선수들이 주 공격수로 나섰다.

나혜원이 은퇴한 이후 황연주는 국내 선수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은 왼손 아포짓 스파이커가 됐다. 라이트 포지션은 외국인 선수가 점령한 상황에서 꾸준하게 자기 위치를 지켰다.

오랫동안 꾸준하게 활약한 결실은 기록에서 나타난다. 그는 5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7~2018 시즌 프로배구 V리그 IBK기업은행과 경기에서 10점을 기록했다. 이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황연주는 4990점을 기록 중이었다.

1세트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한 그는 2세트에서 첫 득점을 기록했다. 마지막 5세트에서 블로킹 득점을 올리며 5000점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황연주는 "경기할 때 제가 몇 점을 기록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말이 없는 걸 보니 아직 5000점을 올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달성하고 싶었다. 계속 기록이 늦춰지는 점에 신경이 쓰였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녀부 통틀어 처음 5000점 고지를 밟은 원동력은 '꾸준함'이다. 처음에는 5년만 뛰려고 생각했던 여정이 10년을 훌쩍 넘었다. 꾸준하게 주전 공격수로 출전한 황연주는 "그때는(데뷔할 때)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만약 더 열심히 했다면 5천 점을 더 빨리 득점했을 것"이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 IBK기업은행과 경기에서 몸을 던지며 수비하는 황연주 ⓒ KOVO 제공

"개근상을 받은 느낌", '우등상' 아닌 '개근상'이 이뤄낸 5천 점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하던 황연주는 "어느새 팀에서는 제가 언니 축에 속한다. 그런데 이곳(대표 팀)에서는 언니들이 정말 많다"고 밝혔다. 신인 드래프트로 프로에 입문한 많은 유망주 가운데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이들은 적지 않다.

고교 시절 빼어난 활약과 가능성으로 프로 구단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로 무대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능력'이다.

이런 점에서 황연주는 성공했다. 한때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도 들었다. 공격수로서 화려하게 상대 코트를 공략한 시절은 지났다. 현재 현대건설의 득점은 외국인 선수 다니엘라 엘리자베스 캠벨(23, 미국)과 양효진(28)이 책임지고 있다.

IBK기업은행과 경기에서 황연주는 대기록을 의식한 듯 좀처럼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특히 1세트에서는 무득점에 그쳤다. 그러나 몸을 내던지는 수비와 디그로 팀을 지원했다. 국내 선수가 아포짓 스파이커로 10년 넘게 활약한다는 점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황연주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황연주는 "저는 공격적인 선수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들도 들어오고 선수들의 키가 커지면서 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경기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과도기가 있었는데 힘들었다. 그렇다고 주저 않을 수는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스스로 한 단계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의 키가 커졌지만 저는 더 노련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수비나 다른 부분에서도 해줘야 한다고 마음을 바꿨다"고 밝혔다.

몇몇 배구 관계자들은 "국내 여자 선수들의 선수 생명력이 짧은 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선수층이 엷은 상황에서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혹사한다. 이들 가운데 부상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일찍 코트를 떠나는 선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연주의 오랜 선수 생활은 좋은 본보기가 됐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꾸준한 노력은 롱런의 지름길이 된다.

황연주는 현대건설에서만 8년간 몸담았다. 그는 "새로운 기록에 대한 욕심보다 팀 성적에 집중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5천 점 달성을 이룬 그의 눈가는 촉촉했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지만 지나온 여정을 돌아봤을 때 고생한 시절도 있었다.

황연주는 "팀이 이겼다면 더 기뻤을 것 같다. 경기에서 진 뒤 인터뷰실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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