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타니 쇼헤이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98년 탄생한 포스팅 시스템에 따라 2010년 무렵까지 미국행에 성공한 선수들은 대부분 일본인이다. 일본은 1960년대에 무라카미 마사노리(난카이 호크스→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일종의 유학생 자격으로 미국에 갔다가 두 시즌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등 미국과 오래전부터 야구 교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라카미가 두 나라 사이의 불분명한 선수 이적과 관련한 문제로 1966년 시즌 일본 리그로 돌아오면서 두 나라 야구 기구는 이른바 ‘손대지 않기(hands off)'를 기초로 한 협약을 1967년 맺었다.

미·일 협약은 그러나 오랜 기간 사문화돼 있었다. 일본은 자국 야구 수준이 미국 프로 야구 마이너리그 트리플 A 수준 이상이 된다면서도 무라카미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 에나쓰 유타카(투수·선수 생활 대부분을 한신 타이거스에서 했다)가 일본 리그에서 은퇴한 뒤 미국 프로 야구에 도전한 일이 있긴 했지만 이는 에피소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미국 쪽에서는 친선경기 등으로 일본과 교류를 이어 갔지만 1980년 시즌 오 사다하루가 세운 개인 통산 868홈런을 철저히 무시하는 등 일본 야구를 얕잡아 본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일본 리그에서 외국 리그 이적 문제와 관련해 대형 사건이 터졌다. 1993년 긴데쓰 버팔로스의 기둥 투수 노모 히데오가 미국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그때 노모는 입단 5년째로 긴데쓰 현역 선수였다. 자유롭게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5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노모 히데오는 미국 진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긴데쓰로서는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민 카드가 ‘임의탈퇴(任意脫退)’였다. 한국과 일본이 함께 쓰고 있는 야구 규약 용어인 임의탈퇴는 원 소속 구단으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선수 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말한다. 원 소속 구단이 임의탈퇴 해지를 청구하지 않는 한 선수 생활을 재개할 수 없다. 임의탈퇴 신청을 할 때 선수 동의서는 필수다. 따라서 한자의 뜻으로 보면 자퇴(自退) 선수에 가깝다.

1987년 해태 타이거즈가 선동열과 연봉 재계약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을 때 내민 카드도 임의탈퇴였다. 그런데 노모에게 으름장을 놓은 긴데쓰의 임의탈퇴 카드보다 해태의 그것이 더 강력했던 건 선수 생활이 정지되면 당시 병역 특례법에 따라 전문 분야에서 5년(선동열은 1982년 서울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병역 특혜를 받았다) 이상 종사해야 한다는 조항을 어기게 돼 선동열은 곧바로 입대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동열은 극적으로 연봉 재계약을 했고, 노모는 서슴없이 임의탈퇴 동의서에 서명했다. 동의서에 사인하는 순간 노모는 긴데쓰의 현역 선수 신분에서 벗어났다. 물론 복귀할 때는 긴데쓰의 동의 없이는 다른 구단으로 갈 수 없었지만 어쨌든 일시적으로 은퇴 선수가 돼 미국 진출 꿈을 이뤘다.

이 무렵 활약한 인물이 국내 야구 팬들 귀에 익은 에이전트 돈 노무라다. 노무라는 노모에 이어 1997년에는 뉴욕 양키스와 얽혀 있던 문제를 트레이드 방식으로 해결해 이라부 히데키(지바 롯데 마린스→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미국행도 성사했다.

이런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사이에 크고 작은 말썽이 계속되자 1998년 미국과 일본 야구 기구는 기존 협약을 뜯어고쳤다. 이때 도입된 제도가 포스팅 시스템이다.

사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포스팅 시스템에 따라 구단과 선수 모두 대체로 만족할 만한 돈을 받으며 미국행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로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포스팅 금액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미국에 진출하려는 선수로서는 포스팅 비용으로 나가는 돈이 자신의 연봉을 깎아 먹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따라 2013년 12월 새로운 포스팅 시스템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 합의됐다. 가장 큰 내용은 포스팅 비용을 2,000만 달러로 제한한 것이다. 새 방식이 적용된 선수가 뉴욕 양키스의 다나카 마사히로다. 다나카의 원 소속 구단인 라쿠덴 골든 이글스는 적지 않은 돈을 손해 봤지만 다나카의 미국행을 막지 않았다.

포스팅 시스템은 성공 사례에 못지않게 실패 사례도 꽤 있다. 국내 팬들 귀에 익은 미쓰이 고지(투수·세이부 라이온즈)는 2008년 12월과 2009년 1월 잇따라 어느 구단으로부터도 입찰을 받지 못해 세이부와 재계약했다.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은 베테랑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는 2010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1,910만 달러에 낙찰했으나 입단 협상이 불발된 적이 있다. 한국도 비슷한 사례가 여럿 있다.

◇포스팅 시스템 주요 사례

#는 투수, 금액 단위는 달러, 구단은 계약 당시

이 름 연도 포스팅 금액 원 소속 MLB 구단 계약 내용

알레한드로 디아즈 1999년 40만 히로시마 신시내티 마이너리그 계약
스즈키 이치로 2000년 1,312만5,000 오릭스 시애틀 3년 1,400만
#이시이 가즈히사 2002년 1,126만 세이부 LA 다저스 4년 1,230만
#라몬 라미레스 2003년 35만 히로시마 뉴욕 양키스 마이너리그 계약
#오츠카 아키노리 2003년 30만 주니치 샌디에이고 2년 150만
나카무라 노리히로 2005년 비공개 오릭스 LA 다저스 마이너리그 계약
#모리 신지 2005년 75만 세이부 탬파베이 2년 140만
#마쓰자카 다이스케 2006년 5,111만1,111.11 세이부 보스턴 6년 5,200만
이와무라 아키노리 2006년 450만 야쿠르트 탬파베이 3년 770만
#이가와 게이 2006년 2,600만194 한신 뉴욕 양키스 5년 2,000만
니시오카 츠요시 2010년 532만9,000 지바 롯데 미네소타 3년 900만
아오키 노리치카 2011년 250만 야쿠르트 밀워키 2년 250만
#다르빗슈 유 2011년 5,170만3,411 닛폰햄 텍사스 6년 6,000만
#류현진 2012년 2,573만7,377.33 한화 LA 다저스 6년 3,600만
#다나카 마사히로 2013년 2,000만 라쿠텐 뉴욕 양키스 7년 1억5,500만
강정호 2014년 500만2,015 넥센 피츠버그 4년 1,650만
#마에다 겐타 2015년 2,000만 히로시마 LA 다저스 8년 2,500만
박병호 2015년 1,285만 넥센 미네소타 4년 1,200만

#오타니 쇼헤이 2017년 2.000만 닛폰햄 LA 에인절스 ?

*알레한드로 디아즈(외야수)와 라몬 라미레스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지만 일본 리그에서 활동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사례다. 디아즈는 포스팅 시스템이 적용된 첫 번째 케이스.

*LA 다저스는 일반적인 관례를 거부하고 나카무라 노리히로의 입찰 금액을 공개하지 않았다.

*보스턴 레드삭스가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입찰 금액에 1을 9개나 쓴 것은 존 헨리 구단주가 1을 행운의 숫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가와 게이의 입찰 금액 뒤에 붙은 194는 이가와의 2006년 시즌 일본 리그 탈삼진 숫자다.

*다르빗슈 유의 입찰 금액 뒤에 붙은 34는 텍사스 구단 CEO인 놀란 라이언의 현역 시절 등번호, 11은 다르빗슈의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등 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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