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도쿄(일본), 배정호 기자] 취재하면서 이렇게 조심스럽고 떨렸던 적이 있었을까. 

2017 동아시안컵(EAFF E-1 풋볼챔피언십) 남자부 개막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 이어 일본과 북한의 경기 현장. 한국에선 '합법적으로' 볼 수 없는 인공기가 눈앞에 펄럭인다. 북한 선수들 트레이닝 복에 인공기가 유독 크게 보인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겐 한 몸처럼 김일성-김정일 부자 얼굴이 새겨진 배지가 달려 있다. 카메라를 켰다. 조심스럽게 북한 선수단이 있는 곳으로 렌즈 방향을 돌렸다. 몇몇 선수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냈지만, 우려했던 거부 반응은 없었다. 

선수들 뒤 편의 관중석. 북한 응원단의 규모가 상당하다. 어림잡아 1,000여 명. 대형 인공기 여럿이 물결 치고, 궁서체로 새겨진 플래카드가 도열했다. 위압감이 상당하다. 응원이 아니라 선전 같은 느낌. 

북한 선수들도 대규모의 응원단에 화들짝 놀라는 분위기. 선수들이 인사를 하러 다가오자 응원단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필승 조선!”

몸을 풀기 시작한다. 감독은 외국인이지만, 코치는 북한 사람들이 맡고 있다. 코치의 눈매는 군사 훈련을 방불케 한다.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굵은 저음의 목소리는 축구가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집중하라우! 똑바로 하라우!”

북한 선수들이 바짝 긴장한다. 북한의 삼엄한 위계 질서가 확실히 느껴졌다. 

킥오프 휘슬이 울렸다. 홈 팀 일본을 상대로 북한 선수들이 투혼의 플레이를 했다. 북한의 조직력은 단단했다. 빈틈이 없었다. 선수들은 몸을 던졌다. 북 측 응원단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후반전 골대 뒤에서 몸을 푸는 북한 선수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었다. 몇 번의 좋은 찬스가 있었다. 골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도 많았다. 아쉽게 골대를 빗나가자 탄식이 터져 나온다.


“아, 들어갈 수 있었지메.”

잘 버티던 북한은 추가 시간에 실점하고 말았다. 0-1. 골키퍼 리명국이 땅을 쳤다. 화가 가라 않지 않은 듯 미친듯이 점프한다. 

“하자! 하라우! 할 수 있다우!.”

하지만 시간은 이미 지났다. 심판의 휘슬 소리가 울렸다. 첫 경기, 아쉬운 패배였다. 북한 선수들은 아쉬운 듯 한참을 벤치에 앉아서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리명국에게 위로는 필요 없었다. 라커룸으로 들어가기 전 리명국이 소리친다.

“아!!!!”

북한 선수들은 “아쉽습네다”로 짧게 대답했다. 

믹스트 존에서 많은 한국 취재진이 북한 선수들과 인터뷰하러 모여들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리명국만 카메라를 향해 짧게 답했다.

“제가 미안합니다. 막을 수 있었습네다.”

12일은 한국과 북한이 2차전을 갖는다. 이 경기에서는 어떤 장면이 나올까. 벌써부터 기대된다. 골 장면이든 감동 장면이든 더 생생하게 잡아내야 한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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