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지바(일본), 조형애 기자]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지난 4월에", "지난 4월", "4월 경기가". 김광민 북한 여자 축구 감독은 지난 4월을 놓지 못했다. 기쁨은 찰나지만, 슬픔은 오래가는 탓이다. 한국 여자 축구에는 '기적'으로 불리는 8개월 전. 꿈같은 그날은 12월 11번째 날에 현실이 됐다. 그날 치바의 바람은 한국 여자 축구에는 찬 것이었다.

12월 11일. 그러니까 도쿄 출장 6일째. 길치는 1일 1실수담을 추가하며 살아가고 있다. 약 7명에게 물어 물어 어찌어찌 지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한축구협회가 대절해준 버스, 사흘전에도 탔던 그 버스로 여자 축구 '남북전'을 보러 갔다.

지바는 온도부터 달랐다. 바닷바람에 별로 가녀리지 않은 몸뚱이가 흔들릴 지경이었다. 펄럭이는 대형 인공기를 지나 경기장에 들어서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한국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나왔다.

훈련을 하기 전에 뚱그렇게 모였다. 그리곤 파이팅을 외쳤다. 킥오프 직전에도 마찬가지. 선수단 전원이 서로서로 허리를 감고 동그란 원을 만들었다. 대게 현장에서 보면 그렇다. 선발 11명이 둥그렇게 모여 마지막 의지를 불태운 뒤 제 포지션으로 자리를 잡고 킥오프를 기다린다. 사전 훈련에 앞서 선수단 모두가 파이팅? 보기 쉽지 않은 장면이다.

축구 공은 둥글지만, 투지가 승리를 부르진 않는다. 의지도 실력차를 뛰어넘진 못한다. 90분은 참 길고도 가혹했다. 한국 여자 축구는 유효슈팅 1개도 못 때리고 2017 동아시안컵(EAFF E-1 풋볼 챔피언십) 2차전을 마감했다. 북한전 0-1 패배다.

어김없이 찾아온 플래시 인터뷰 시간. 이제는 당연한 듯 그라운드로 내려가 마이크를 잡고 있는 걸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여전히 어렵다. 장점을 꼽자면 감독, 선수들 표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북한 선수들, 1차전보다 좋아하고 있었다. 김광민 감독도 그러하려니 물었다. "4월 되풀이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기셨다. 어느 정도 만족하시나." 그러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다.

"아직 4월의 한이 깨끗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뭔가 명제처럼 되긴 했는데, 지난 4월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난 4월 평양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에서 한국은 북한을 탈락시켰다. 맞대결에서 1-1로 비긴 뒤 골득실에서 조 1위를 차지한 기적과 같은 결과다. 아시안컵이 2019 프랑스 여자 월드컵 예선을 겸하고 있으니, 이건 진짜 큰일. 북한 여자 축구, 아시안컵은 물론 월드컵도 물거품이 됐다.

경기전 '4월 경기' 이야기에 정색을 한 김 감독. "기억하기도 싫다" 더니 이날 기자회견에선 모든 답변에 8개월 전 경기를 들었다. 그 말처럼 한이 덜 풀린 모양. 1-0이라는 스코어에 아쉬워했다.

믹스트존에선 까딱하다 북한 선수들을 못볼뻔했다. 순식간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한 명 한 명 쫓아가며 "소감 한 마디"를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시 또는 회피. 다들 입을 꾹 다물고는 출입구로 향했다. 그렇게 한 번에 다 빠져나가려니 줄이 살짝 정체. 이때다 싶어 다시 "한 마디"를 부탁했지만 답은 없었다. 슬쩍 "인터뷰하기 힘드나"라고 했더니 그제야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이 이럴진대, 한국 선수들은… 참 지고 나오는 선수들 붙잡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날 교체 아웃된 뒤 코칭스태프의 "수고했다"는 말에도 분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며 나오는 한채린을 사실 봤다. 겨우 멘트를 부탁하니 "모든 면에서 밀렸다"면서 힘겨워했다. 이민아는 "죄송한 마음이다. 할 말이 없다"는 말로 말을 다했다.

많은 것을 묻진 못했다. 찰나의 추억에 희망을 가졌던 지난 8개월이 한국이 북한을 이기지 못한 12년 세월에 더해지는 순간. 바닷바람은 차고 12월의 현실은 차디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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