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호주오픈 16강전을 마친 뒤 서로를 격려하는 정현(오른쪽)과 노박 조코비치 ⓒ GettyIimages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현재 정현의 경기력은 세계 10위권 선수들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정현과 (노박) 조코비치의 경기 스타일은 비슷해요. 그런데 호주오픈 16강전에서 정현은 조코비치 전성기 시절의 코트 커버력과 패싱 샷을 보여줬습니다. 이 부분은 조코비치의 장점인데 이번 경기에서는 정현이 조코비치보다 훨씬 좋았어요. 마치 정현의 경기력은 전성기 시절 조코비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SPOTV 테니스 해설위원인 박용국 NH농협 단장의 평이다. 그의 말대로 올해 호주오픈에서 정현의 경기력은 세계 상위권 선수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그라운드 스트로크와 백핸드, 패싱 샷, 여기에 코트 커버력은 세계 정상급 수준이었다.

정현은 22일 호주 멜버른 파크에서 열린 2018년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전 세계 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31, 세르비아, 세계 랭킹 14위)를 세트스코어 3-0(7-6<4> 7-5 7-6<3>)으로 이겼다.

▲ 2018년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득점을 올린 뒤 환호하는 정현 ⓒ GettyIimages

정현이 조코비치의 벽을 넘기는 어렵게 여겨졌다. 그러나 이번 호주오픈 최고의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정현은 2016년 호주오픈 1회전에서 조코비치를 만났다. 당시 조코비치는 세계 랭킹 1위로 톱 시드를 받은 상황이었다. 정현은 나름 선전했지만 조코비치에게 0-3으로 졌다.

2년 뒤 같은 장소인 호주 멜버른파크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 정현은 조코비치와 재회했다. 조코비치는 지난해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하반기 코트에 서지 못했다. 6개월 만에 복귀한 그는 3회전까지 승승장구했다. 2회전에서 조코비치는 가엘 몽피스(프랑스, 세계 랭킹 39위)에게 한 세트를 내줬다. 1회전과 3회전에서 무실세트로 승자가 됐다.

조코비치는 여전히 부상을 털어내지 못한 듯 경기 도중 응급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부상에서 점점 회복하며 자신의 기량을 되찾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정현의 돌풍은 16강에서 끝나는 듯 보였다. 많은 이들은 조코비치의 승리를 점쳤다.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경기가 끝난 뒤 조코비치는 AP 통신을 비롯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정현은 충분히 이길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라며 칭찬했다.

▲ 2018년 호주오픈 16강전에서 경기 도중 응급 치료를 받는 노박 조코비치 ⓒ GettyIimages

매 게임 끈질긴 그라운드 스트로크로 조코비치 괴롭혀…코트 커버력에서도 우위

조코비치는 앤디 머레이(31, 영국)와 세계 최고 수준의 코트 커버 능력을 갖췄다. 포핸드와 백핸드 네트 플레이 발리 등 각종 기술은 흠잡을 데가 없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약점이었던 정신력도 갖췄다. '무결점'이 된 조코비치는 2016년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며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러나 무서울 것이 없었던 조코비치도 '부상의 덫'을 피하지 못했다. 박용국 단장은 "조코비치는 팔꿈치 부상 이후 서브를 넣는 폼이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파워가 약해졌고 서브에 변화를 주는데 맞췄다"고 분석했다.

이 경기에서 조코비치는 서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그는 힘과 정교함이 들어간 서브를 제대로 넣지 못했다. 또한 익숙하지 않은 폼으로 서브를 넣다 보니 실책도 많았다.

실제로 조코비치는 이 경기에서 더블폴트가 무려 9개가 나왔다. 더블폴트는 중요한 승부처에서 조코비치가 치고 올라갈 상승세에 제동을 걸었다.

정현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우상을 조코비치라고 밝혔다. 두 선수의 경기 스타일은 비슷하다. 스트로크 싸움으로 상대 범실을 유도한다. 그물망 같은 코트 커버력에 이은 패싱 샷은 이들의 공통점이다.

박 단장은 "정현과 조코비치의 백핸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포핸드 싸움에서 승패가 가려질 가능성도 있었는데 여기서 정현이 조코비치를 압도하더라"고 평가했다. 이어 "코트 커버 능력도 정현이 더 뛰어났다. 마치 전성기 시절의 조코비치를 보는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탄탄한 수비에 이은 패싱샷도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은 원동력이 됐다. 박 단장은 "이번 경기에서 나온 정현의 패싱 도 조코비치가 전성기 시절 때린 것과 비슷했다. 정말 신들린 패싱샷이었다"고 칭찬했다.

▲ 2018년 정현과 노박 조코비치의 16강전 결과표. 조코비치는 평소 좀처럼 하지 않은 더블폴트가 9개나 나왔다. 정현은 브레이크 기회를 조코비치보다 많이 잡았다. 위너도 조코비치보다 11개나 많았다. ⓒ 호주오픈 공식 홈페이지 캡쳐

베일에 가려진 8강전 상대, '황제' 페더러와 만날 가능성은?

정현은 8강전 상대는 테니스 샌드그렌(26, 미국, 세계 랭킹 97위)이다. 그는 정현과 더불어 이번 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국제 대회에서 베일에 가려진 선수다. 지난해까지 챌린저 투어에서 활약한 그는 남자 프로 테니스(ATP) 챌린저 투어에서 3번 우승했다.

최고 랭킹도 지난해 11월에 오른 85위다. 여러모로 경력에서 샌드그렌은 정현과 비교해 떨어진다. 그러나 오히려 돌풍을 일으키는 무명의 선수가 세계 상위 랭커보다 위협이 될 수 있다.

박 단장은 "샌드그렌은 베일에 가려진 선수다. 챌린저 투어에서 올라와 잘하고 있는 거 같은데 무엇보다 도미니크 티엠을 잡은 것만으로도 만만치 않은 선수"라고 경계했다.

샌드그렌의 키는 정현과 똑같은 188cm다. 그러나 서브의 위력과 공격력은 정현을 압도한다. 그는 16강전에서 도미니크 티엠(24, 오스트리아, 세계 랭킹 5위)을 풀세트 접전 끝에 3-2(6-2 4-6 7-6<4> 6<7>-7 6-3)으로 물리쳤다. 이 경기에서 샌드그렌은 20개의 서브에이스를 기록했다.

정현은 샌드그렌처럼 강한 서브와 공격력을 앞세운 알렉산더 즈베레프(21, 독일, 세계 랭킹 4위)를 3회전에서 눌렀다.

정현은 샌드그렌을 한 번 만나 이긴 경험이 있다. 정현은 지난 9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린 ATP 투어 ASB클래식 1회전에서 샌드그렌을 2-1(6-3, 5-7, 6-3)로 이겼다.

▲ 정현의 8강전 상대인 테니스 샌드그렌 ⓒ GettyIimages

이 고비만 넘기면 '꿈의 4강'이다. 박 단장은 "정현의 컨디션과 집중력은 이번 대회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다"며 "그라운드 스트로크로 상대를 질리게 하면 정현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 8강전도 스트로크 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경기 막판까지 체력을 유지할 경우 정현에게 승산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현이 4강에 오를 경우 이번 대회 2번 시드를 받은 '황제' 로저 페더러(37, 스위스, 세계 랭킹 2위)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페더러는 지난해 재기에 성공했다.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 정상에 오른 그는 '제2의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정현은 즈베레프와 조코비치와 경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펼쳤다. 박 단장의 말대로 그는 '전성기 때의 조코비치'와 흡사한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줬다.

정현은 23일 하루 숨을 돌린 뒤 24일 샌드그렌과 준결승 진출을 다툰다. 문제는 현재의 좋은 흐름을 대회 막판까지 유지하는 점이다. 정현은 "어렸을 때 조코비치는 나의 우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닮고 싶었다(When I'm young, I'm trying to copy Novak because he's my idol)고 말했다.

정현은 그랜드 슬램 대회 8강은 물론 자신의 우상인 조코비치처럼 되어야겠다는 꿈도 동시에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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