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박건우 ⓒ 박건우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그냥 야구가 좋았다. 던지는 공을 치면 멀리 나가는 게 좋아서. 그래서 시작했다."

야구와 함께한 지 올해로 19년이 됐다. 역삼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에서 친한 형과 테니스공으로 재미삼아 야구를 한 게 계기가 됐다. 같이 놀던 형은 어느날 야구부 유니폼을 입고 나타났다. 어린 마음에 형을 보면서 '나도 유니폼을 입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형을 따라 야구부에 들어간 꼬마는 두산 베어스 중견수 박건우(28)로 성장했다. 

박건우는 2009년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10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상위 라운드에 지명을 받으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1군 주전으로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5년 김태형 감독이 부임한 이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박건우의 장타력에 주목하며 꾸준히 기회를 줬다. 박건우는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기량을 뽐내면서 기대에 부응했다.

최근 2시즌 동안 리그 최고 수준의 타격을 펼쳤다. 2016년 132경기 타율 0.335(484타수 162안타) OPS 0.940 20홈런 83타점, 지난해 131경기 타율 0.366(483타수 177안타) OPS 1.006 20홈런 78타점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에는 구단 역대 최초로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연봉은 2016년 7,000만원에서 2년 만에 3억7,000만 원까지 올랐다. 

빛을 보기 전까지 깜깜했던 시간을 박건우는 어떤 생각으로 버텼을까. 지금은 추억하며 웃을 수 있는 시절을 되돌아봤다.

다음은 박건우와 일문일답.

-야구를 시작한 계기가 있다면.

△ 동네에서 함께 야구를 하던 형이 있었다. 둘이서 야구를 하면서 늘 형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형이 안 나오기 시작했다. 공원에 나와도 없고, 기다리면서 혼자 야구를 했다. 그 형이 며칠 뒤에 역삼초 유니폼을 입고 나와서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했다. 집으로 가서 부모님께 '나도 아구하고 싶다. 형을 이겨야 한다'고 졸랐다. 그래서 야구를 시작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동네 형이 은인일 수 있겠다.

△ 형이랑 아직도 연락을 잘하고 지낸다. 형은 중,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하다가 그만뒀다. 

-왜 야구가 좋았나.

△ 던지는 공을 치면 멀리 나가는 게 좋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 형을 이기고 싶었다(웃음).

-어느 포지션에서 시작했나.

△초등학교 때 야구부 들어갔을 때 처음에 포수를 시켰다. 체격은 엄청 작았다. 뛰어다니고 싶은데 포수를 시켜서 투덜댔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초등학교 감독님께서 밥을 한번 사주셨다. 그때 여쭤보니까 포수를 하면서 시야를 넓히라는 의미로 시켰다고 설명하셨다.

-그만큼 재능이 커 보였던 게 아닐까.

△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였으면 좋겠다.

▲ 박건우 ⓒ 곽혜미 기자
-프로에 와서 2군 생활이 길었다. 어떻게 버텼나.

△부모님과 누나들 힘이 컸다. 훈련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부모님께서 야구 보다가 다른 채널로 돌렸다. 부모님이 야구를 좋아하셔서 어릴 때 같이 야구장도 많이 갔다. 늘 보던 야구를 보는 건데 내 눈치를 보는 거 같았다. 솔직히 나는 상관 없었는데, 그런 걸 보면서 많이 느꼈다. 나도 빨리 저기서(1군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좋은 선수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계기가 있다면.

△군대 가기 전이었다. 부모님께서 원래 그런 말 잘 안 하시는데, 이천에서 합숙할 때 전화로 '우리 아들도 1군에서 뛰는 거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실내 훈련장에서 엄청 울면서 스윙을 계속했다. 

훈련장에 불이 켜져 있으니까 당시 룸메이트였던 (국)해성이 형이 왔다. 왜 우냐고 무슨 일 있냐고 걱정했다. 그때 형한테 '나 야구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요즘 한번씩 해성이 형이 그날 이야기를 하면서 놀린다. 울면서 야구 잘하고 싶다고 하면서 '폭풍 스윙'했다고(웃음).

-기록을 세울 때도 보면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거 같다.

△내가 막내 아들이기도 하고, 집이 내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누나들이랑 부모님께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야구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꼽자면.

△ 1군에서 많이 뛰지 못할 때였다. 야구장 안 복도에 선수들 사진이 붙어있다. 큰 누나가 내 사진이 거기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어느날 큰 누나가 야구장 벽에 내 사진이 붙은 걸 발견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부모님 친구들이 사인 요청한 거 부탁 받았을 때도 기분 좋았다. 작은 누나 결혼할 때는 하객들이 부모님께 '건우 잘하더라' 이렇게 인사하고 가셨다. 부모님이 으쓱해 하시는 거 같아서 뿌듯했다. 

-야구하면서 고마웠던 사람이 많았을 텐데, 한 명만 이야기하자면.

△ 김태형 감독님이다. 처음 1군에 자리를 잡고, 1군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감독님이 계속 계셨다. 지금 자리에서 뛸 수 있게 기회 주시고 믿어 주셔서 감사하다. 감독님께 새해 연락을 드렸다. 이번에 골든글러브를 받으면 소감을 말할 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 다음에 받을 수 있게 되면 그때는 꼭 감독님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앞으로도 잘해서 팀 성적에 보탬이 되고 싶고, 감독님과 오래 야구하고 싶다. 

▲ 박건우 ⓒ 한희재 기자
-힘든 시간을 버틴 만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2년 연속 구단 내 유니폼 판매 1위를 기록했는데.

△ 기분 정말 좋다. 경기 전에 몸 풀러 그라운드에 나가면 관중석에 팬분들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게 보인다. 예전에는 최재훈 형(현 한화)이랑 몸 풀 때 같이 관중석을 보면서 우리 유니폼을 찾았다. 그때는 정말 찾기 어려웠다. 2015년 초만 해도 많이 없었다. (최)재훈이 형이랑 그래서 날마다 내기를 했다. 누구 유니폼이 더 많은지.

-내기 결과는 어땠나.

△ 비슷했다. 그때 당시에는 재훈이 형이 더 많이 이겼다. 장원진 코치님 유니폼이 가끔 있다. (장 코치는 OB 베어스 시절 등 번호 37번을 달았다. 지금 박건우의 등 번호다.) 내 유니폼인줄 알고 가서 보면 장원진 코치님 유니폼이었다(웃음).

-응원해 주는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추워도 더워도 늘 경기장 찾아 주시고, 잘해도 못해도 응원을 많이 해주신다. (응원하는 마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마음 깊이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자선 모금 행사도 팬들과 함께하고 싶어서 기획했다. 늘 감사하다. 보답하는 방법은 야구를 더 잘하는 거 밖에 없으니까. 더 발전하겠다.

-두산 선수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 아직 시작 단계라서 멀리까지 생각은 안 해봤다. 가끔가다 생각하는 건, 다른 좋은 선수들도 많았지만 나는 두산 중견수 하면 이종욱 선배님(현 NC)이 많이 떠오른다. 다른 팬분들이 이종욱 선배님만큼 잘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선수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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