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각각 3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안현수(왼쪽)와 진선유 ⓒ대한체육회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평창은 2011년 7월 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23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뮌헨(독일)과 안시(프랑스)를 1차 투표에서 가볍게 제치고 대회 유치에 성공했다. 삼수 끝에 거둔 성과였다. 이제는 대회를 잘 치르고 대회 이후 경기장 시설 등을 활용해 성공한 올림픽으로 남기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동·하계 올림픽과 축구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굵직한 스포츠 이벤트가 지난 30년 사이 한반도 남쪽에서 펼쳐진다. 중·장년 스포츠 팬들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다. 한국 겨울철 스포츠는 그동안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 겨울철 올림픽 출전사로 알아본다.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은 4회 연속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출전한 제19회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로 종합 14위를 기록했다.

2002년 2월 9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이 대회에는 77개국 2,2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한국은 이 대회에 앞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10위(금 2, 은 1, 동 1),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6위(금 4, 은 1, 동 1), 1998년 나가노 대회 9위(금 3, 은 1, 동 2) 등 세계 10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대회에서는 남자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의 부진이 두드러졌다. 남자 쇼트트랙은 알베르빌 대회와 릴레함메르 대회에서 각각 2개, 나가노 대회에서 1개의 금메달을 따 한국의 종합 10위 진입에 견인차가 됐지만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서는 한 개의 메달도 건지지 못했다.

김동성이 1,500m에서 1위로 골인했지만 호주의 제이스 휴이시 심판에 의해 반칙으로 인정돼 실격 처분을 받으면서 미국의 아폴로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뺐긴 것이 부진한 성적의 결정적인 이유였다.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 종목이었던 5,000m 릴레이에서 메달권 진입에 실패한 것도 남자팀에는 불행이었다. 마지막 주자인 민용이 골인 지점을 앞두고 미국의 러스티 스미스에게 밀려 넘어지면서 오히려 실격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남자 선수들의 부진과 달리 여자 선수들은 변함없이 제 몫을 했다. 16살의 중학 3년생 고기현이 1,500m 결승에서 2분31초581의 기록으로 우승한 데 이어 최은경이 0.231초 늦은 2분31초812로 은메달을 안은 것이 무엇보다 값진 소득이었다. 여자 1,500m는 알베르빌 대회와 릴레함메르 대회, 나가노 대회 등 앞선 3차례 동계 올림픽에서 한 개의 메달도 따지 못한 취약 종목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최은경, 박혜원, 주민진, 최민경이 출전한 여자 3,000m 릴레이에서는 완벽한 팀플레이를 과시하며 4분16초145의 세계신기록으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릴레함메르 대회와 나가노 대회에 이어 3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10년 전 알베르빌 대회에서 김윤만이 은메달을 차지해 한국에 동계 올림픽 첫 메달을 안긴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이규혁의 메달 목표가 물거품이 돼 아쉬움을 남겼다. 이규혁은 500m에서 37초43으로 5위로 골인한 데 이어 주 종목인 1,000m에서는 자신의 최고 기록에 훨씬 못 미치는 1분45초82로 8위에 그쳤다.

스키점프 단체전에 출전한 강칠구, 최용직, 김현기, 최흥철 4인조는 노르웨이와 프랑스, 미국 등 이 종목의 강국들을 제치고 8위에 올랐다. 스키점프는 국제 대회에서 두 자릿수 성적이 당연시될 만큼 세계 수준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었는데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1년 전인 2000년 2월 자코파네(폴란드)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최흥철이 85m 점프에서 은메달을 따고 최흥철, 최용직, 김현기, 김흥수가 85m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추가하면서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었다.

이 대회에서는 개최국 미국이 금메달 10개와 은메달 13개, 동메달 11개로 3위를 차지한 가운데 노르웨이(금 13 은 5 동 7)와 독일(금 12 은 16 동 8)이 종합 순위 1, 2위에 올랐다. 2006년 2월 10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제20회 동계 올림픽은 몇 가지 면에서 한국 스포츠사에 뚜렷한 이정표가 세워진 의미 있는 대회였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6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모두 11개의 메달을 따 1948년 생모리츠 대회에 첫 출전한 이후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했고 동·하계 대회를 망라해 올림픽 출전 사상 최초의 3관왕을 2명이나 배출했다. 종합 순위에서는 14위로 밀려났던 4년 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와 비교해 7계단이나 상승한 7위를 마크했다.

쇼트트랙에서 나온 두 명의 3관왕은 남자부 안현수와 여자부 진선유로 안현수는 1,000m와 1,500m에서 잇따라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이호석, 서호진, 송석우와 함께 출전한 5,000m 릴레이에서 2바퀴를 남기고 마지막 주자로 나서 캐나다의 올림픽 3연속 우승을 저지하며 1위로 골인해 3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남자 5,000m 릴레이는 14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았고 게다가 안현수는 취약 종목으로 여겨지던 500m에서 값진 동메달을 추가해 모두 4개의 메달을 일궈 내는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진선유는 당시 17살의 여고 2년생으로 1,000m와 1,500m를 차례로 우승한 다음 변천사, 전다혜, 최은경과 팀을 이뤄 출전한 3,000m 릴레이에서 마지막 주자로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3,000m 릴레이는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1998년 나가노대회,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에 이은 올림픽 4연속 우승이었다.

이밖에 이호석이 남자 1,000m와 1,500m에서 안현수에 이어 각각 2위로 골인해 2개의 은메달을 차지했고 여자 1,500m에서는 최은경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에 남자 500m에서 안현수가 딴 동메달을 더해 쇼트트랙에서만 금 메달 6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쓸어 담았다.

나머지 한 개의 동메달은 이강석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70초43의 기록으로 획득했다. 스피드스케이팅 메달은 알베르빌 대회 1000m 김윤만의 은메달 이후 14년 만에 나왔다.

메달리스트 외에 동계 올림픽에 4번째 출전한 베테랑 이규혁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1분09초32로 4위에 입상한 것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이상화가 5위에 오른 것 정도가 손꼽을 만한 성적이었다.

토리노 대회에 출전한 40명의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16살의 윤채린은 프리스타일 모굴스키에 출전해 국제 대회 경험을 쌓았고 강광배는 스켈레톤, 김민규는 루지에서 각각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는 기회를 얻었다. 이들 셋 모두 성적은 20위권 밖이었다.

85개국에서 5,0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해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아이스하키, 컬링, 봅슬레이, 스켈레톤, 바이애슬론 등 10개 종목에 걸린 84개의 금메달을 놓고 기량을 겨룬 토리노 대회에서 종합 순위 1위는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2개, 동메달 6개를 획득한 독일이 차지했고 미국(금 9 은 9 동 7), 오스트리아(금 9 은 7 동 7)가 각각 2, 3위에 랭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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