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페어 공식 훈련에서 함께 연습하고 있는 남북한 페어스케이팅 팀 왼쪽부터 감강찬 김규은 렴대옥 김주식 ⓒ 연합뉴스 제공

[스포티비뉴스=강릉, 조영준 기자] 이번 2018년 평창 올림픽 최고 화두는 북한 선수단의 참여입니다. 과거 남북 단일팀은 '각본 없는 드라마'로 불리는 스포츠에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했습니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탁구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단일팀의 이야기는 영화 '코리아'로 이어졌죠. 그해 6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도 남북 단일 축구 팀이 출전해 8강에 진출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종목은 여자 아이스하키입니다. 무려 26년 만의 단일팀이기 때문이죠. 개인 종목인 피겨스케이팅에서도 이런 바람이 잔잔히 불고 있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종목이 열리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요즘 가장 시선을 이끄는 이는 렴대옥(19)입니다. 그는 북한 피겨스케이팅 페어에서 김주식(26)과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북한 선수의 이미지는 그동안 밝고 환한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굳은 인상에 취재진을 보면 고개를 돌리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었습니다.

그런데 렴대옥은 연일 환한 미소로 북한 선수의 이미지를 바꿨습니다. 김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선수는 연습 시간 때 실전 경기처럼 표정 연기를 합니다. 믹스트존을 빠져나갈 때 인터뷰는 하지 않지만 한 마디씩 던집니다. 여전히 인터뷰를 안 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한마디라도 던지는 것이 어디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력에서 렴대옥-김주식은 북한 선수단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선수들입니다. 이들은 북한 선수단 가운에 유일하게 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얻었습니다. 와일드카드로 출전하는 선수들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자칫 북한 피겨스케이팅이 올림픽 출전권을 자력으로 얻었다는 점을 의아하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페어스케이팅에서는 북한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훈련하고 있는 렴대옥(위)-김주식 조 ⓒ Gettyimages

구소련 시절부터 경쟁력을 갖춘 북한 페어스케이팅

지난해 2월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출전한 최다빈(18, 수리고)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나온 첫 금메달이었죠. 그런데 북한은 1986년 삿포로에서 열린 1회 대회 페어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남혜영-김혁 조가 중국 팀을 제치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습니다.

전 스피드스케이팅 국가 대표인 이규혁의 어머니이자 피겨스케이팅 원로 이인숙(63) 전국스케이팅연합회장은 이들의 경기를 본 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회장은 "북한에서 페어스케이팅을 한다는 점도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연기도 매우 훌륭하더라. 구소련에서 페어스케이팅을 배웠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팀을 이끄는 이수경 대한빙상경기연맹 이사는 "북한에서는 페어의 인기가 많다고 들었다. 2016년 지난해 김규은과 감강찬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훈련했다. 그곳은 많은 페어 팀들이 모여서 훈련하는 곳인데 북한 선수들도 그곳에 오면서 친분이 생겼다"고 설명했습니다.

80년대부터 페어스케이팅에 장점이 있었던 북한의 저력은 렴대옥-김주식 조까지 이어졌습니다. 북한 선수들에게 국제 대회 출전 기회는 자주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2015년부터 올해까지 총 8번의 국제 대회 무대에 섰습니다. 이 가운데 4번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2016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컵 오브 티롤에서는 금메달까지 땄습니다.

지난해 2월 삿포로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거머쥐었고 9월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네벨혼트로피에서는 6위를 차지하며 평창행을 결정지었습니다. 그러나 ISU가 정한 시한인 지난해 10월 말까지 출전권 사용 여부를 통보하지 않았죠. 이들의 올림픽 출전은 무산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강릉 아이스아레나에 무대에 섰습니다.

이들은 충분히 국제 경쟁력이 있는 팀입니다. 리프트와 스로우 등 기술이 뛰어나고 표현력도 일품입니다. 공식 연습에서 렴대옥-김주식 조는 표정 연기까지 놓치지 않으며 실전 경기처럼 집중했습니다. 이들은 지난달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첫 올림픽 출전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 김규은(오른쪽)-감강찬 조 ⓒ 곽혜미 기자

페어 팀의 목표, 프리스케이팅 진출과 팀 이벤트 선전

한국 페어스케이팅을 대표하는 김규은(19)-감강찬(23) 조는 원래 페어 스케이팅이 아닌 싱글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김주식은 싱글 선수로도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부터 페어스케이팅에 전념했고 렴대옥은 두 번째 파트너입니다. 어릴 때부터 페어스케이팅 선수로 성장한 렴대옥은 김주식이 세 번째 파트너입니다.

이들의 개인 최고 점수는 최근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기록한 총점 184.98점입니다. 이번 평창 올림픽 페어스케이팅의 강력한 우승 후보인 알리오나 사브첸코-브루노 마소(독일)의 최고 점수는 236.68점이죠. 이들 외에 최고 점수가 200점을 훌쩍 넘은 팀은 수두룩합니다. 강자들이 대부분 빠진 4대륙선수권대회와 올림픽은 차원이 다른 대회입니다.

이번 올림픽 페어스케이팅에는 총 22개 팀이 출전합니다. 이들 가운데 프리스케이팅 무대에 설 수 있는 팀은 16개 팀입니다. 현실적으로 남북한 페어스케이팅 팀은 프리스케이팅 진출이 1차 목표입니다. 최근 상승세를 볼 때 렴대옥-김주식 조는 프리스케이팅 무대에 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김규은-감강찬 조의 개인 최고 점수는 149.72점(2017년 어텀 클래식)입니다. 이들은 개인전보다 팀이벤트에 집중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과를 떠나 평생에 이루기 힘든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점의 의의를 두고 있죠.

사실 김규은-감강찬 조가 북한 팀과 비교해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페어스케이팅에 집중한 북한 조와 올림픽 출전을 위해 뒤늦게 페어를 선택한 팀을 동일한 기준에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문적인 페어-아이스댄스 팀을 육성하는 방안은 여전히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과제입니다.

경기 결과를 떠나 남북한 페어 팀은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5일 같은 조에서 공식 훈련을 했습니다. 스케이트를 타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환하게 웃는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 2일은 렴대옥의 생일이었습니다. 김규은은 선물을 준비했지만 아직 주지 못했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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