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강릉, 조영준 기자] 최다빈(18, 수리고)의 꿈의 무대가 마침내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최다빈에게 스케이트는 인생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최다빈의 행보는 김연아(28)와 비슷합니다. 두 선수 모두 언니를 따라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죠. 먼저 스케이트를 탄 언니보다 재능이 뛰어나 선수의 길을 걷게 된 점도 똑같습니다. 최다빈은 김연아의 고등학교 후배입니다. 이제 고등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최다빈은 김연아가 거쳐간 수리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또 최다빈은 김연아가 졸업한 대학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두 선수의 어린 시절 은사는 신혜숙(61) 코치입니다. 신 코치 밑에 있을 때 트리플 5종 점프(토루프 살코 루프 플립 러츠)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죠. 이런 점이 김연아와 최다빈의 공통점입니다.
최다빈은 어린 시절부터 피겨스케이팅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2014년 트리글라프 트로피 주니어부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합니다. 2015에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 2개 대회(라트비아, 오스트리아)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습니다. 당시 최다빈은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연속 시상대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주니어 시절 최다빈은 한국 여자 싱글의 쌍두마차로 활약한 김해진(21, 이화여대)과 박소연(21, 단국대)의 빛에 가려졌습니다. 시니어로 올라올 때는 '피겨스케이팅 신동' 유영(14, 과천중)이 깜짝 등장했죠. 유영과 임은수(15, 한강중) 김예림(15, 도장중) 유망주 트로이카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던 중, 최다빈은 2017년 상반기부터 전성기가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2월 ISU 4대륙선수권대회는 평창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이 열리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렸습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국내 팬들의 갈채를 받으며 5위에 올랐습니다.
이어 출전한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4월 초 핀란드에서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10위에 오르며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에 올림픽 출전권 2장을 안겼습니다.
그런데 최다빈의 거침없는 비상은 뜻하지 않은 먹구름을 만납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일까요. 지난해 6월 최다빈의 모친 김정숙 씨가 갑자기 딸의 곁을 떠났습니다. 사실 최다빈의 어머님은 2016년 암 선고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딸의 뒷바라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1월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을 인터뷰했습니다. 한편에서는 인터뷰하는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앉아계셨죠. 아직도 그때의 얼굴이 아련합니다. 당시에는 지병을 앓고 계시는지 생각하지 못했죠. 뜻밖의 부음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여기에 고질적인 부상과 부츠 문제까지 최다빈을 괴롭혔습니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에게 스케이트 부츠는 또 하나의 '생명'입니다. 발에 꼭 맞는 것은 물론 편해야 제대로 점프를 뛸 수 있습니다. 선수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부츠가 있고 이 제품을 지속해서 구입합니다.
그런데 최다빈이 즐겨 구입한 스케이트의 회사의 제품은 많은 선수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입하기 어려운 고초가 생깁니다. 최다빈 측은 같은 회사에서 새로운 부츠를 주문해 신어봤지만 궁합이 맞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죠. 올림픽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최다빈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예전에 신었던 스케이트를 재활용했습니다. 오른쪽 스케이트는 2년 전, 왼쪽은 1년 전에 신었던 것을 선택했죠. 비록 '짝짝이 부츠'였지만 최다빈은 "그동안 신었던 것 가운데 가장 편하다"고 밝혔습니다.
김연아는 부츠 문제로 선수 생활을 접을 상황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를 뒤져도 발에 적합한 부츠를 찾지 못했죠. 여기에 여러 사연이 겹치며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228.56점을 기록한 경기가 사라질 위기에 몰렸습니다.
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최다빈은 가장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를 이겨냈습니다. 자칫 주저앉아 자신이 따낸 올림픽 출전권을 놓칠 위기도 있었습니다.
최다빈의 동료와 지인들은 그를 '내성적이고 조용한 소녀'로 부릅니다. 어린 시절 최다빈은 인터뷰할 때도 수줍음이 많았고 말수가 적은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큰 시련을 극복하며 올림픽 첫 경기를 멋지게 해냈습니다. 말 그대로 최다빈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입니다.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팀 이벤트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이 펼쳐졌습니다. 이 무대에서 최다빈은 생애 최고의 경기를 보여줬습니다. 최다빈의 경기를 볼 때"100점에서 10점이나 20점이 모자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습니다.
최다빈의 장점은 기술 요소 하나하나에 들이는 집중력입니다. 지난해부터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점이 그의 최고 장점입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때부터는 경기 도중 위기 상황을 스스로 이겨내는 임기응변까지 생겼습니다. 어느새 노련미까지 갖춘 셈이죠.
최다빈은 올림픽을 앞두고 트리플 러츠 +트리플 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 공을 들였습니다. 팀 이벤트 쇼트프로그램에서 그는 이 기술에서 0.5점의 수행점수(GOE)를 챙겼습니다. 트리플 플립과 더블 악셀도 깨끗했고 세 가지 스핀(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 플라잉 카멜 스핀, 레이백 스핀)은 모두 최고 등급인 레벨4를 기록했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은 프로그램 구성요소 점수(PCS)였습니다. 최다빈의 PCS 점수는 28.57점입니다. 기술점수(TES)만 따지면 출전 선수 가운데 3위입니다. 그러나 유독 짠 PCS 점수로 최다빈은 6위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사실 최다빈은 주니어 시절부터 PCS가 약점으로 꼽혔습니다. 김연아와 유영에게서 나타나는 '타고난 끼'가 최다빈에게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 점은 많이 향상됐습니다. 최다빈의 경기를 보면 실수는 좀처럼 하지 않지만 경기가 어딘지 밋밋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2위에 오른 '백전노장' 캐롤리나 코스트너(30, 이탈리아)는 TES가 36.96점에 불과했지만 PCS는 무려 38.14점이었습니다. 미야하라 사토코(20, 일본) 트리플 + 트리플 점프에서 흔들렸지만 PCS에서 34.62점을 받으며 점프의 실수를 만회했습니다.
PCS는 선수의 표현력과 스케이팅, 안무 소화력 등 뿐만이 아닌 '경력'이 중요합니다. 서른이 된 코스트너는 산전수전 다 겪은 스케이터입니다.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고 그해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미야하라 역시 인지도에서는 무시 못 할 존재입니다.
최다빈은 이제 겨우 첫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표현력이 발전해도 위에서 언급한 선수와 비교해 PCS가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심 PCS 점수가 아쉬웠다는 느낌도 듭니다.
분명한 점은 최다빈은 이 경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이 경기를 링크 밖에서 지켜본 신혜숙 코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신 코치는 과거 선수들에게 '호랑이 코치님'으로 유명했습니다. 어느덧 환갑을 넘은 신 코치는 제자의 경기를 보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여자 싱글 개인전은 오는 21일부터 시작합니다. 동계 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늘 아이스하키 준, 결승과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죠. 최다빈은 강릉을 떠나 자신에게 친숙한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아이스링크와 한체대에서 훈련할 예정입니다.
최다빈은 "지금의 컨디션을 계속 끌어올리고 유지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최다빈이 평창 올림픽에서 할 수 있는 최고 목표는 10위권 진입입니다. 팀 이벤트처럼 깨끗한 경기를 할 경우 최다빈은 김연아에 이어 올림픽에서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는 최초의 선수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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