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도쿄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출전한 체조 대표 팀. 가슴에는 태극기를 달고 있는데 국가 표지판에는 ‘KOREA가 아닌 ‘KUSB(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로 돼 있다. 남북한이 각종 국제 대회에서 호칭 문제로 첨예하게 맞설 때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서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체조는 차츰 지방까지 보급의 물결이 미치기 시작해 1909년 여름에 평양공립보통학교에서 체조 강습회가 열렸다. 이 무렵 병식체조가 성장 과정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지나친 신체적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으며 휘문의숙의 체조 교사인 조원희가 이런 주장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한성고등학교의 체조 교사인 일본인 요코지 스테지로는 1910년 우리나라 최초로 곤봉 체조 시범을 보였고 체조 시간에 풍금 연주로 신체 동작을 매끄럽게 하도록 시도했다. <1편에서 계속>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철봉과 평행봉, 안마, 링, 뜀틀 그리고 요즘은 실시하지 않는 줄타기 등 6개 개인 종목과 철봉과 평행봉 단체전이 벌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첫 기계체조대회는 1927년 중앙기독청년회 주최 현상(懸賞)철봉대회다. 현상은 상을 주는 대회라는 뜻이다. 1931년 10월 제1회 전조선기계체조 대회가 중앙기독교청년회 체육관에서 개최됐는데 이때 처음으로 기계체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930년대에 활발하게 펼쳐진 종목별 각종 대회와 전조선종합경기대회(오늘날의 전국체육대회) 종목을 보면 기계체조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도 기계체조는 1974년 테헤란 대회 때 처음 아시아경기대회 정식 종목이 됐을 정도로 보급이 늦었다.

그런데 해방과 함께 활발하게 펼쳐진 종목별 경기 단체 창립에서 체조는 선두 그룹이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27일 조선송구협회(회장 이선근)가 창립된 이후 두 번째로 조선체조협회가 그해 9월 1일 서상천을 회장으로 출범했다.

서상천은 일제 강점기에 활약한 역도인이기도 하다. 조선육상경기연맹(9월 24일 회장 김승식), 조선탁구협회(9월 28일 회장 조동식), 조선아마추어권투연맹(11월 10일 회장 안동원), 조선빙상경기연맹(11월 24일 회장 이일), 조선유도연맹(11월 28일 회장 이범석), 조선축구협회(12월 3일 회장 하경덕), 조선농구협회(12월 19일 회장 이성구)가 체조의 뒤를 이어 결성됐다.

일제 강점기에서 벗어나고 4년 뒤인 1949년 서울에서 열린 제30회 대회에서 기계체조는 처음으로 전국체육대회 종목으로 열리게 된다. 남중부에서는 한양공업이 남대부에서는 부산 동아대가 각각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고 여중부 단체전에서는 부산 동래여중이 정상에 올랐다. 이후 한국전쟁 와중에 열린 제32회, 제33회 대회를 비롯해 1950년대에 개최된 전국체육대회를 거치며 기계체조는 착실하게 경기력을 높여 간다.

한국은 1959년 FIG(국제체조연맹)에 가입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 김상국(남자) 유명자(여자)가 기계체조 종목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두 선수는 모든 세부 종목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했으나 한국 기계체조의 씨앗을 국제 무대에서 틔웠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는 김충태 정이광 강수일 이광재 서재규 한수희 김광덕(이상 남자) 정봉순 이덕분 최영숙(이상 여자) 등 꽤 많은 선수가 출전했으나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1932년 로스앤젤레스 대회부터 올림픽 기계체조 종목에 출전한 일본은 도쿄 대회 때 이미 세계적인 기계체조 강국에 올라 금메달 5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차지해 소련(금 4 은 10 동 5)을 제치고 이 종목 1위에 올랐다.

조금씩 경험을 쌓아 가던 한국 기계체조는 1967년 도쿄에서 열린 여름철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국제 대회 첫 메달을 기록했다. 이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는 김충태가 출전했으나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거듭되는 부진과 세계 수준과 격차, 그리고 '소수 정예주의’ 선발 방침에 따라 1972년 뮌헨,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에 남승구 주영삼 박종훈 이정식 한충식 장태은 채광석(이상 남자) 이정희 심재영(이상 여자)가 출전하기까지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대회를 포함해 한국 기계체조는 16년 동안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사이 기계체조가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74년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김국환(링), 이영택(평행봉)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영택은 개인 종합에서 동메달을 보탰다. 김휘철은 안마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기계체조는 이후 1986년 서울 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4개를 딸 때까지 이 대회 성적이 가장 좋았다. 아시아경기대회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것이다. <3편에 계속>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