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는 경기를 마치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관중들의 함성이) 뭐랄까, 저에 대한 선물이라는 그런 느낌을 받아서 눈물을 흘렸다. 또 올림픽을 위해 달려 왔는데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하루 뒤 눈물 아닌 웃음으로 기자회견장에 앉은 이상화를 만났다. 이상화는 "4년을 기다려 평창까지 왔다. 비록 은메달이지만 지금은 홀가분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19일 강릉 올림픽파크에 마련된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이상화와 일문일답이다. 기자회견에는 이석규 코치, 김지용 선수단장도 함께했다.
-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선수는 연장 의사를 보였는데, 베이징 도전 가능한가.
"아직 확답을 드릴 수는 없다. 어제(18일) 경기가 끝났기 때문에 쉬고, 내려놓고 싶다. 베이징은 먼 얘기다. 나중에 다시 답하겠다."
- 경기 끝나고 나서와 지금의 감정이 다른가.
"똑같다. 경기 전부터 올림픽이 끝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경기가 끝나고 그 상황을 다시 되돌려 보면 지금도 울컥하다. 똑같이 눈물이 날 것 같다."
- 고다이라와 올림픽 전 나눈 대화가 있나.
"저도 고다이라도 올림픽을 향해 왔다. 그렇게 얘기할 시간은 없었다. 저도 예민해 있었다. 지금은 다 끝났으니 축하를 주고 받았다."
- 어떤 의미의 눈물이었나.
"끝났구나 싶었다. 소치 대회 끝나고 힘든 시간이 흘렀다. 이렇게 평창 올림픽이 순식간에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동안의 압박감, 부담감이 없어져서 눈물이 났다."
-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낼 생각인지.
"알람이 7개 정도 맞춰져 있다. 이제 다 끄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거다.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쉬고 싶다."
- 임원이 방문해서 컨디션 조절에 지장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이미 깨어 있었다. 그런 일 때문에 컨디션 조절이 안됐다는 건 아니다. 이른 시간은 아니었고 일어나 있는 시간이었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 알람이 많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알람인가.
"새벽 오전 오후 야간 . 아침에 일어나고 운동 나가고 낮잠 자고 다시 운동 나가는 시간이다."
- 어떤 것들이 힘들었나.
"소치 금메달 뒤 기자회견할 때 '4년 뒤에도 금메달 따실 거죠'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할 수 있을까요 라고 답했다. 소치 때는 제가 정상이었고 몸상태가 워낙 좋았다. 스케이트 타는 게 너무 쉬웠다. 그 뒤로 부상으로 감을 잃었다. 감을 찾기까지 오래 걸렸다.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여기까지 컨디션을 올린 것 자체가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 가장 감동적이었던 응원이 있다면.
"작년부터 은메달로 시작해서 은메달로 끝났다. 은메달을 따면 약간 죄인이 된 기분을 많이 받았다. 힘들었다. 어느날 친구가 댓글 캡처를 보내줬다. 그 댓글에 힘을 받았다. 경기장에도 응원 문구가 많았다. 그런 말 한마디가 저에게 큰 힘이 됐다."
- 인스타그램에 적은 해시태그의 의미는.
"#난나야 라는 해시태그는, 그동안 고다이라와 비교가 많이 됐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제 갈 길을 가려는 주문이었다."
- 가족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경기 전 부모님 오신 곳을 봤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부모님과 함께 해서 행복하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 밴쿠버 삼총사(모태범 이승훈 이상화)가 다 나왔는데. 격려를 받았나.
"이승훈은 힘내라는 말 했고, 모태범은 떨지 말라고 했다. 저는 떨린다고 답했다."
- 가족 여행은 어디로 갈 생각인가. 이번 메달은 누구에게 선물할 생각인지.
"은메달도 색깔이 예뻐서 소장가치가 있을 것 같고, 저에게 굉장히 값진 은메달이라 금메달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한다. 캐나다에서 3년 동안 살았는데 이사를 위해 가야한다. 여름에 어머니와 함께 갈 계획이다."
- 세계 신기록에 대한 애착이 있을텐데.
"올림픽 신기록은 깨질 거라고 생각했다. 소치보다 강릉의 빙질이 좋다. 고다이라의 기록이 놀랍지는 않았다. 제 세계 신기록 역시 먼 훗날 깨질 거라 미련은 없다. 갖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 김연아와 친분이 두터운데, 메시지가 왔었나.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 편히 쉬고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 은퇴 결심을 유보한 배경은.
"능력이 있다면 올림픽까지는 아니더라도 1~2년은 더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은퇴에 대해 생각해 본 게 없어서 더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미래를 먼저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장 경기는 끝났다. 은퇴 문제는 나중에 결정할 일이다."
- 메시지는 몇 개나 받았나. 경기 영상은 다시 봤나.
"문제는 천 개 정도 왔고 영상은 보지 않았다. 아쉬울 것 같았다. 나중에 보려고 한다."
- 고다이라를 칭찬한다면.
"누가 이기건 상관 없이 격려해주는 마인드가 대인배스럽다고 느꼈다."
-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많다. 케빈 크로켓 코치님, 이석규 코치님이 있다. 캐나다와 한국을 오갔는데 옆에서 많이 챙겨주셨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금메달이 아니어서 속상하지만 은메달에 칭찬해주셨으면 좋겠다."
- 이번 올림픽 어떻게 보낼 계획인지. 고다이라 선수와 즐길 생각이 있는지.
"고다이라 선수는 올림픽 뒤에 경기가 있다. 저는 쇼트트랙 계주와 아이스하키를 보고 싶다. 갈 예정이다."
- 압박감을 어떻게 이겨냈나.
"저에 대한 자부심을 떠올렸다. 두 개의 금메달과 세계 신기록. 그런 자부심으로 버텼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평창 올림픽도 노련하게 이겨냈다고 생각한다."
- 조 배정 받았을 때 기분은.
"마지막 조에서 타지 않기를 바랐다. 15조에 걸려서 좋았다. 인코스 아웃코스 상관 없이 훈련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단, 앞에 고다이라가 있다는 게 신경은 쓰였다. 기록을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모르고 들어가서 초반에 좋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생각으로 동기 부여를 하는 선수도 있었다. 이상화 선수의 경우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나태해질 수 있다. 끝나도 경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 같다."
- 올림픽 전 스케이터로 몇 점 줄 수 있냐고 했을 때 100점이라고 했다.
"지금도 100점이다. 포기하고 싶었는데 재활 후 좋아지는 걸 보면서 건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월드컵 아닌 올림픽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올라가는 그래프를 보면서(만족했다). 100점을 주고 싶다."
- 앞으로 1~2년이라도 더 뛴다면 즐겁게 탈 수 있을 것 같은지.
"그럴 것 같다. 소치 끝나고 나서는 4년 뒤 평창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 있었다. 그래서 준비가 힘들고 부담도 컸다. 1~2년 더 한다면 순위에 상관 없이 재미있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 경기 후 부모님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
"더 울컥했다. 올림픽 현장을 같이 할 수 있어서 그랬다. 경기 전 부모님이 앉아 계신 좌석이 어딘지 알았다. 그래서 손인사 하고 그랬다."
-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재미있는 스케이팅은 무엇인지.
"성적의 압박을 받았던 전과 달리 제가 즐길 수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 올림픽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전설적인 선수로 남고 싶다. 남았죠 뭐."
-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은 어떻게 달랐나.
"올림픽이라는 느낌을 못 받았다. 아파트에서 지냈고, 저희가 사는 집 같았다. 밖에 나가도 외국인이 별로 없고. 오히려 그게 부담이 덜 됐다. 밴쿠버와 소치 도착했을 때는 올림픽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이번에는 그 전보다는 덜했다. 경기 준비 하기에 수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