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스하키 남자 대표팀
[스포티비뉴스=평창특별취재팀 신명철 기자]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과 ‘코리아’ 아이스하키 남녀 대표 팀이 멋진 마지막 경기를 펼쳤다.

남자는 20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핀란드와 8강 플레이오프에서 2-5로 졌다. 핀란드는 세계 랭킹 4위이자 직전 대회인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미국을 5-0으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한 강호다.

3골 차였지만 2, 3 피리어드에서 강력하게 따라붙는 한국에 핀란드가 몰리는 경기 양상이 이어졌다. 체코와 조별 리그 첫 경기에서 올림픽 1호 골을 터뜨린데 이어 남자는 이번 대회에서 3득점 19실점을 기록했다.

1936년 가르미시-파르텐키르헨(독일) 대회에서 아이스하키에 첫 출전한 일본은 이후 1960년 스쿼밸리(미국) 대회, 1964년 그르노블(프랑스) 대회, 1972년 삿포로(일본) 대회, 1976년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 대회,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미국) 대회, 1998년 나가노(일본) 등에 출전하는 등 꽤 많은 올림픽 경험을 쌓았다. 마지막으로 나선 나가노 대회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독일에 1-3, 프랑스에 2-5로 지고 벨라루스와 2-2로 비겼고 13위 결정전에서는 오스트리아와 3-3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해 슛오프에서 1-0으로 이겼다.

이에 반해 한국은 평창 대회가 올림픽 데뷔 무대였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한국이 올림픽에서 대패할 수 있다는 우려에 자동 출전권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2014년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선수 출신인 백지선 감독을 영입하고 골리 맷 달튼을 비롯한 여러 명의 귀화 선수를 받아들이며 경기력을 끌어올렸고 2017년 4월 우크라이나와 영국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Ⅰ그룹 A(2부 리그)에서 오스트리아에 이어 2위에 오르며 톱 디비전에 진출했다. 16개 팀이 참가하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 올랐고 올림픽에 나서도 될 만한 경기력을 갖춘 것이다.

한국은 오는 5월 덴마크에서 열리는 2018년 IIHF 세계선수권대회 조별 리그 B조에서 캐나다 핀란드 미국 독일 노르웨이 라트비아 덴마크 등 아이스하키 강국들과 평창 동계 올림픽에 이어 또다시 겨룬다.

일본은 오는 4월 헝가리와 리투아니아가 공동 개최하는 2018년 IIHF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Ⅰ 그룹 B(3부 리그)에 출전한다. 올림픽 첫 출전을 기준으로 80여년 앞선 일본이 한국에 따라잡히고 뒤진 것이다.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IIHF 랭킹 또는 세계 예선을 거쳐 2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만하다.

▲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는 20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7위 결정 스웨덴과 경기에서 1-6으로 졌다.

‘코리아’는 조별 리그에서 스웨덴과 스위스에 0-8, 일본에 1-4로 진데 이어 5~8위 결정 1차전에서 스위스에 0-2로 패해 5경기 2득점 28실점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아직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일본은 아이스하키 여자부가 정식 세부 종목을 채택된 1998년 나가노 대회에 출전해 캐나다에 0-13, 핀란드에 1-11, 중국에 1-6, 미국에 0-10, 스웨덴에 0-5로 졌다. 5경기 2득점 45실점이었다. 그랬던 일본이 이번 대회에서는 5~8위 결정 1차전에서 스웨덴을 2-1로 잡고 6위를 차지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머지않은 어느 날 일본을 따라잡고 올림픽에 자력으로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건다.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등 경기력이 크게 발전한 여자 축구의 경우 첫 출전한 국제 대회인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북한과 대만에 0-7, 일본에 1-8, 중국에 0-8로 졌고 홍콩에만 1-0으로 이겨 출전 6개 나라 가운데 5위를 했다.

여자 아이스하키는 결코 미미하지 않은 출발을 했다.

1960년대 국내에 달랑 하나뿐인 동대문 실내 링크에서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물론 스케이팅 동호인들과 뒤섞여 시간을 쪼개 밤 늦은 시간 연습해야 했던 때를 떠올리면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런 내용도 있다.

조선체육회(오늘날의 대한체육회)는 1946년 10월 서울운동장에서 ‘조선올림픽대회’를 열었다. 아직 전국체육대회라는 명칭이 정착되지 않았던 때인데다 2년 뒤인 1948년 런던 올림픽 출전에 대한 열망이 조선올림픽대회라는 대회 명칭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회가 제27회 전국체육대회다.

이 대회의 동계 대회는 다음 해인 1947년 1월 열렸는데 스피드스케이팅은 한강에서, 아이스하키는 ‘창경원 특설 링크’에서 각각 치러졌다. 1946년에는 창경원 특설 링크에서 경평(京平) 아이스하키대회가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제국주의 일본이 동물원 등을 설치해 공원으로 만든 창경궁에는 춘당지(春塘池)라는 예쁜 이름의 꽤 큰 연못이 있는데 서울 시민들이 여름에는 뱃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팅을 즐기곤 했다. 연못 위로는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그런 곳에서 나무로 펜스를 치고 아이스하키를 했던 것이다.

창경궁에서 출발한 한국 아이스하키가 70여년 만에 세계적인 강국들과 겨루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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