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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시아경기대회 출전사…(1)아시아인의 스포츠 잔치 태동

신명철 smc@spotvnews.co.kr 2018년 03월 05일 월요일

▲ 개최 연도가 확인 되지 않는 극동선수권대회 개회식 장면.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지난달 25일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기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 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18일부터 9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아시아인의 스포츠 잔치인 아시아경기대회(아시안게임)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1951년 제1회 하계 대회(인도 뉴델리)가 열리기 훨씬 전인 1913년 마닐라에서는 제1회 극동선수권대회(Far Eastern Champioship Games)가 개최국 필리핀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영국령 동인도(말레이시아), 태국, 홍콩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이 대회는 이후 상하이,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2년 또는 3, 4년 주기로 1934년 제10회 대회(마닐라)까지 벌어졌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1938년 예정됐던 제11회 대회(오사카)가 취소되면서 이 대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시아 스포츠 관계자들은 이 대회를 오늘날 아시안게임의 뿌리로 보고 있다

이 대회에 우리나라 선수가 참가했는지 여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대한체육회 90년사19207월 출범한 조선체육회 창립 배경에 관해 설명하는 가운데 백낙준의 수기(手記)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 글 마지막에 극동선수권대회가 등장한다.

1917년 도쿄에서 열린 제3회 대회를 참관하고 돌아온 방두환이 왜 우리는 극동선수권대회 같은 국제 경기 대회에 못 나가느냐라고 한탄했다는 내용을 백낙준은 수기에 적고 있다.

1회 대회에서는 육상과 야구, 농구, 다이빙, 수영, 축구, 테니스, 배구 종목이 펼쳐졌고 1934년 마닐라가 개최한 제10회 대회에는 중국과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이 제1회 대회와 같은 종목에서 기량을 겨뤘다.

1925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7회 대회에 현정주 주요섭 김영호 등 그 무렵 중국에 유학하고 있던 조선인 선수들이 육상경기에 출전했다는 내용이 대한체육회 70년사에 실려 있다. 다만 이들이 세운 기록과 순위에 대해서는 특정인의 기억이라는 사실 때문에 정확성을 신뢰하지 않는 듯한 평가를 했다. 이 대회 축구에서는 중국이 일본과 필리핀을 각각 2-0, 5-1로 꺾고 우승했는데 필리핀이 일본을 4-0으로 크게 물리치고 준우승한 게 눈길을 끈다.

한국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기간에 열린 AGF[아시아경기연맹,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전신] 임시 총회에서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1949년 뉴델리에서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9개국이 모여 AGF를 창립할 때 한국은 참가하지 않아 가입하지 못했다.

당시 아시아 스포츠계에 넓은 안면을 갖고 있던 이상백은 AGF 창립 총회에 참석하려 했으나 그를 친일파로 몰아 배척했던 쪽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두 번째 가입 기회였던 1951년 제1회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는 한국전쟁 때문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전쟁 와중인데도 제1회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 13명이나 되는 대표단을 보내 대회 기간에 열린 제2AGF 총회에 참석했다. 만약 북한이 먼저 AGF 회원국이 됐다면 한국의 AGF 가입은 가망이 없었다. 그러나 북한이 아직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은 가운데 이상백은 헬싱키 현지에서 한국을 AGF 회원국으로 가입시켜야겠다고 마음먹고 계획을 세웠다.

먼저 국제육상경기연맹 부회장인 일본의 아사노에게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2AGF 총회 기록을 찾아 북한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는지 여부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상백의 친구인 아사노는 기록을 살펴보고 북한이 제2AGF 총회에 참석하기는 했으나 아직 회원국 자격을 얻은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상백은 일제 강점기 일본체육협회 전무이사를 지내면서 아시아의 각종 국제 경기 대회, 특히 극동선수권대회를 발판으로 아시아 스포츠계의 많은 유력 인사들과 친분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필리핀 스포츠계의 거물이며 AGF 회장인 이라난 박사도 이상백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필리핀 선수단과 함께 헬싱키에 와 있었다. 헬싱키 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이 AGF에 가입하려고 하면 북한이 방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상백은 이라난에게 헬싱키에서 AGF 임시총회를 열어 한국의 가입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1951724일 이라난은 AGF 회장으로서 헬싱키 올림픽에 와 있는 AGF 평의원들을 점심에 초대하고 이렇게 모이기도 쉽지 않으니 이 자리에서 AGF 임시총회를 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 만장일치 동의를 받아 냈다.

이 임시총회에서 한국과 대만이 AGF 회원국으로 가입이 승인됐고 한국은 2년 뒤인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아경기대회부터 아시아인의 스포츠 제전에 참석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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