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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시아경기대회 출전사…(2) 역도의 분발-이창훈 마라톤 금메달

신명철 smc@spotvnews.co.kr 2018년 03월 12일 월요일
▲ 1954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 육상 1,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최윤칠은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가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 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54년 5월 1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 한국은 이상백 단장 인솔 아래 6개 종목에 걸쳐 8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대회 사상 첫 출전이었지만 금메달 8개로 종합 순위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금메달 38개의 일본, 2위는 금메달 14개를 딴 개최국 필리핀이 차지했다.

한국은 불모지나 다름없는 육상에서 최윤칠이 1500m, 최충식이 1만m에서 귀중한 금메달을 획득했고 그 무렵 국제 대회 메달 효자 종목인 역도에서는 밴텀급 유인호, 라이트급 조봉목, 미들급 김창희(1956년 멜버른 올림픽 동메달), 라이트미들급 김성집(1948년 런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 미들헤비급 고종구가 5개의 금을 수확하며 한국이 종합 3위를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복싱에서는 페더급의 박규현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외에도 육상에서 은 1, 동 1, 레슬링에서 은 1, 동 2, 역도에서 은 1, 복싱에서 은 2, 동 1, 축구에서 은 1개 등 합계 금메달 8개와 은메달 6개, 동메달 5개를 획득하며 전쟁에 지쳐 있던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1958년 5월 24일부터 6월 1일까지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 한국은 143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한국이 일찍이 없었던 대규모 선수단을 보낸 것은 일본에 살고 있는 많은 동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창훈의 마라톤 우승은 동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6개국 9명의 선수가 출전한 마라톤 우승은 한국의 이창훈과 임종우, 일본의 사다나가와 하마무라의 대결로 예상하고 있었다. 메인스타디움을 출발해 도쿄 서북방의 나리마스를 왕복하는 코스에서 치러진 마라톤 경기에서는 도쿄 시내 연도에 나온 많은 동포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한국 선수들에게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1위, 남승용이 3위를 차지했던 때 벅찬 감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동포들은 다른 어느 종목보다 한국 선수의 우승을 열망하고 있었다. 2년 전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마라톤에서 4위에 올랐던 이창훈은 무더위를 이겨 내며 힘껏 달려 8만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메인스타디움으로 들어와 2시간32분55초를 기록하며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이창훈은 “무더위 탓에 달리면서 정신이 아련해지려고 했던 순간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연도에서 응원하는 동포들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달릴 수 있었다. 결승점에 들어섰을 때는 거의 의식이 없어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때까지가 한국 마라톤의 제2 황금기에 해당한다. 제1 황금기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이 1위, 남승용이 3위를 각각 차지했던 1930년대 후반이다. 제2 황금기는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서윤복의 우승, 1950년 보스턴 마라톤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의 1, 2, 3위 싹쓸이,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최윤칠의 4위 그리고 1956년 멜버른 올림픽 이창훈의 4위와 1958년 도쿄 아시아경기대회 이창훈의 우승이 이뤄진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라고 볼 수 있다.

▲ 1958년 도쿄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 복싱 웰터급에서 우승한 김기수(오른쪽) 2년 뒤인 1960년 로마 올림픽 2회전에서 탈락한 김기수는 이후 프로로 전향해 1966년 6월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WBA 주니어 미들급 타이틀매치에서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판정으로 누르고 한국인 첫 프로 복싱 세계 챔피언이 됐다. ⓒ대한체육회
한국은 이창훈 외에 남자 멀리뛰기 서영주, 복싱 라이트급 정동훈과 웰터급 김기수(뒷날 프로 복싱 WBA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 역도 52kg급 이장우와 60kg급 이태영 등 금메달 8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12개로 일본(금 67 은 41 동 30)과 필리핀(금 8 은 19 동 21)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4년 전 마닐라 대회 결승에서 자유중국(오늘날의 대만)에 2-5로 져 금메달을 놓쳤던 축구는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 우승 기세를 몰아 대회 첫 정상에 도전했으나 연장 접전 끝에 또다시 자유중국에 2-3으로 져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농구는 필리핀과 자유중국, 일본에 이어 4위에 그쳤고 배구는 6인제(국제식)에는 출전하지 않았고 9인제(극동식)에서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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