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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시아경기대회 출전사…(3) 반세기 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인의 스포츠 잔치

신명철 smc@spotvnews.co.kr 2018년 03월 19일 월요일
▲ 1962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경기대회 복싱 플라이급에서 우승한 정신조(왼쪽)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가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 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대회는 개최국인 인도네시아가 정치적인 문제로 이스라엘과 자유중국(오늘날 대만)에 ID 카드 발급을 거부하는 등 소란 속에 8월 24일 개막해 9월 24일까지 17개국 1,460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졌다.

개최국이 특정 국가의 출전을 가로막자 국제육상경기연맹과 국제역도연맹은 각각 이 대회의 해당 종목에 출전하는 나라는 제명 또는 각종 국제 대회에 출전을 금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아시아경기연맹(AGF)에서도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자 한국 선수단은 신중한 검토 끝에 육상과 역도 종목에는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앞선 대회인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와 1958년 제3회 도쿄 대회에서 연속으로 종합 3위에 올랐던 한국이 종합 6위(금메달 4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로 밀려난 까닭이기도 하다. 출전 종목 성적만으로 계산하면 한국은 일본에 이어 종합 2위였다.

이 대회의 종합 1위는 금메달 73개(은 56 동 23)를 쓸어 담은 일본이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일본 외 나라들이 얻은 금메달은 47개였다. 중국이 아직 국제 스포츠 무대에 얼굴을 내밀지 않던 시절 일본은 아시아에서 절대 강자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일본에 이어 인도가 금메달 10개와 은메달 13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2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개최국인 인도네시아(금 9, 은 12, 동 17)와 필리핀(금 7, 은 4, 동 16)이 이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의 금메달은 복싱과 사격에서 나왔다. 한국은 복싱 10개 체급 가운데 8개 체급에 출전해 라이트 웰터급 김득봉과 플라이급 정신조(1964년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그리고 미들급 김덕팔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라이트미들급의 신양일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사격에서는 남상완이 자유소총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서강욱은 자유권총 은메달, 배병기는 소구경소총3자세 동메달을 각각 차지했다. 사격이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딴 것은 1955년 대한사격협회(1965년 대한사격연맹으로 개칭)가 창설된 이후 처음이었다.

5명의 선수가 출전한 레슬링에서는 자유형 플라이급 장창선(1964년 도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 은메달, 자유형 밴텀급 최영길과 그레코로만형 웰터급 오재영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김원기가 62kg급에서 우승하는 등 그레코로만형은 1980년대 이후 주요 국제 종합 경기 대회에서 한국의 메달 전략 종목으로 한몫을 하지만 이때만 해도 국내에 보급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국 선수단은 자카르타 현지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그레코로만형은 출전하지 않기로 했지만 현지에서 방침을 바꿔 오재영을 내보내 뜻밖의 성과를 거뒀다.

이 대회에서 눈길을 끄는 종목은 배구다. 당시만 해도 배구는 9인제(극동식)와 6인제(국제식)가 함께 치러지고 있었다. 남녀 모두 6인제 경기는 한국으로서는 국제 대회 첫 출전이었다. 그렇지만 여자가 6인제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뒷날 세계 무대에서 선전을 기약했다. 9인제에서도 남녀 모두 은메달을 차지했다.

축구는 이스라엘과 자유중국이 불참하면서 출전국이 8개로 줄었지만 정상적으로 경기가 진행된 가운데 한국은 결승전에서 인도에 1-2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은 조별 리그에서 인도를 2-0으로 완파했다. 이때까지 한국은 아시아경기대회 구기 종목에서 금메달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1956년과 1960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며 아시아 정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던 한국 선수들의 실력과 페어플레이 정신에 축구를 무척 좋아하는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이 무렵만 해도 한국보다는 북한과 가까웠던 인도네시아와 축구로 어느 정도 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으니 적지 않은 스포츠 외교 성과였다.

탁구에서는 남자 단체전과 이정희-황율자 조의 여자 복식에서 은메달, 여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남자 단체전은 국제 대회 출전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사이클에서는 100km 도로 단체전에서 은메달, 159.23km 도로 개인전에서 원장호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사이클은 직전 대회인 1958년 도쿄 대회 도로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아시아경기대회 초창기부터 도로 종목에서 강세를 보였다. 농구는 당시 아시아 최강 필리핀과 일본에 이어 동메달을 기록했다. 수영에서는 평영 남자 100m에서 진장림, 다이빙 프리스타일에서 조창제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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