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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시아경기대회 출전사…(4) 탁구 선전에 힘입어 종합 2위에 오르다

신명철 smc@spotvnews.co.kr 2018년 03월 26일 월요일

▲ ▲1966년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 농구 준결승에서 한국과 태국 선수는 물론 관중까지 가세한 난투극이 벌어져 대회에 오점을 남겼다.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가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 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66년 한국 스포츠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그해 12월 9일부터 20일까지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주최국 태국을 간발의 차이로 따돌리고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일본에 이어 종합 순위 2위에 오른 것이다.

한국은 제5회 아시아경기대회에 14개 종목에 18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여기에 조사단과 예술단, 유치 업무단까지 300여 명의 많은 인원이 방콕에서 활동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제 종합 경기대회에서 효자 종목으로는 복싱이 첫손가락에 꼽혔다. 이 대회에서 복싱은 금메달 5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의 좋은 성적을 올렸다. 플라이급 손영모, 페더급 김성은, 웰터급 박구일, 미들급 이홍만, 라이트헤비급 김덕팔이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라이트플라이급 서상영과 라이트급 이문웅, 미들급 이금택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헤비급 이춘인은 동메달을 더했다.

사격은 직전 대회인 자카르타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센터파이어 권총 단체전과 자유권총 단체전에서 금메달 시상대에 올랐고 추화일은 소구경복사에서 금과녁을 명중했다. 사격에서는 은메달 4개와 동메달 1개를 더했다. 경기용 총를 구하기 어려워 주한 미군에 빌어 쓰고 탄알이 모자라 훈련량이 절대 부족한 가운데 얻은 성과이기에 큰 의미가 있었다.

탁구는 뜻밖의 대어를 낚았다. 아직 중국이 아시아 스포츠 무대에 얼굴을 내밀기 전 탁구는 일본의 독무대였다. 그런데 남자 단식에서 김충용이 금메달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은메달 3개, 동메달 5개로 한국이 종합 2위를 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

김충용은 금메달 숫자에서 태국에 11-12로 뒤져 있는 가운데 극적으로 금메달을 한국 선수단에 안겼다. 한국은 태국과 금메달은 12개로 같았으나 은메달에서 18-14, 동메달에서 21-11로 앞섰다. 마지막 순간에 종합 2위를 탁구 때문에 한국에 넘겨 준 태국은 얼마나 화가 났던지 한국에서 떠안은 1970년 제7회 대회 때 탁구를 정식 종목에서 뺐다는 뒷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역도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가운데 라이트헤비급 이종섭과 미들헤비급 이형우가 금메달을 손에 쥔 것을 비롯해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보탰다. 그러나 메달 유망 종목이었던 레슬링은 동메달 2개에 그쳤다. 사이클에서 도로경기의 강세는 계속됐다. 이는 그때까지만 해도 벨로드롬이 없었던 국내 실정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결과로 볼 수도 있다. 200km 도로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비롯해 은메달과 동메달을 2개씩 보탰다.

기본 종목인 육상과 수영의 부진은 여전했다. 육상은 출전 14개 종목 가운데 가장 많은 40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나 필드와 트랙 전 종목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3개를 따는 데 그쳤다. 마라톤에서는 이상훈이 2시간40분56초의 기록으로 동메달을 땄지만 기록은 좋지 않았다. 방콕의 무더운 날씨 탓이기도 했다. 수영은 육상보다도 부진해 경영에서는 모든 출전 선수가 예선에서 탈락했다. 남녀 하이다이빙에서 송재웅과 김영채가 동메달을 건졌을 뿐이다.

레슬링은 자유형 페더급 장경무, 웰터급 서용석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단체 구기 종목은 대체로 부진했다. 축구는 조별 리그에서 태국에 0-3, 버마(오늘날 미얀마)에 0-1로 져 탈락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 팀을 꾸렸다고는 하나 조별 리그조차 통과하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게다가 이해에는 6월 벌어진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북한이 8강에 올라 국내 축구계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선수가 선수촌을 무단 이탈하고 코칭스태프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축구계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끄러웠다.

배구는 애초 예상대로 남녀 모두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일본과 실력 차를 실감해야 했다.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남자부 동메달, 여자부 금메달에 이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도 남자부 은메달, 여자부 은메달을 차지한 그 무렵 세계 정상권의 배구 강국이었다.

농구는 홈 코트의 태국과 벌인 준결승에서 선수들끼리 시비가 붙자 일부 관중은 물론 경찰까지 가세한 난투극에 휘말리는 불상사 끝에 경기 중단 당시 스코어로 승패를 가려 52-67로 져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3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72-60으로 꺾었다. 그 무렵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던 농구는 이후 1969년 아시아선수권대회와 1970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하는가 하면 1969년 세계농구선수권대회에서 11위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일본은 금메달 78개와 은메달 53개, 동메달 33개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5회 연속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한국과 태국이 대회 마지막 날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2, 3위에 올랐고 말레이시아(금 7 은 5 동 6), 인도(금 7 은 4 동 11), 인도네시아(금 7 은 4 동 10)는 은메달과 동메달 숫자 차이로 4위부터 6위까지 순위가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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