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마라톤 애호가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식이 평양에서 전해졌다.

8일 열린 ‘만경대상국제마라손경기대회(약칭 평양 마라톤)’ 남자부에서 북한의 리강범이 2시간12분53초로 골인해 1위를 차지했다.

국내 팬들에게 비교적 낯익은 쌍둥이 자매의 언니 김혜경이 2시간27분24초로 여자부 1위를 차지했고 동생 김혜성이 2위를 기록했다. 김혜경-혜성 자매는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7위와 9위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는 각각 케냐와 에티오피아 귀화 선수인 바레인의 유니스 키르와와 리샨 둘라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한 가운데 한국의 김성은은 8위에 랭크됐다.

남녀부 모두 북한 선수가 우승했지만 기록은 신통치 않다. 1981년 시작한 이 대회 남자부에서는 한 차례도 2시간10분 안쪽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 대회 우승 기록은 2014년 대회에서 박철(2015년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1위)이 세운 2시간12분26초에 미치지 못했다. 1996년 대회에서 김중원(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부 금메달리스트 정성옥과 2001년 결혼)이 작성한 대회 최고 기록인 2시간10분50초에는 2분 정도 뒤진다.

여자부에서는 1996년 대회에서 김창옥(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20위)이 2시간27분2초로 우승한 뒤 꾸준히 2시간20분대 기록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 대회 우승 기록은 2007년 정영옥(2007년 방콕 유니버시아드대회 하프 마라톤 동메달리스트)이 세운 대회 최고 기록인 2시간26분2초에 1분 이상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올림픽 마라톤 남자부에서 1936년 베를린 대회(손기정 선생)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황영조) 두 차례 금메달을 차지했고 북한은 위에 소개한 대로 정성옥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 차례 정상에 올랐다.

손기정 선생은 고향이 평안북도 신의주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남북 개념이 없었지만, 아무튼 달리기의 시작은 북쪽에서 했고 20살 이후 본격적인 선수 생활은 남쪽인 서울 양정고보에서 했으니 올림픽 금메달은 남북에 절반씩 걸쳐 있는 셈이다.

1960년대 세계적인 여자 중거리 선수인 신금단을 비롯해 북한은 나름대로 육상경기에서 자랑거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 ‘평양 마라톤’에서 나타났듯이 북한은 국제 대회에서 마라톤을 비롯해 육상경기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마라톤 남자부에서 북한은 박철이 27위를 기록했다. 여자부에서는 김혜성이 10위, 김혜경이 11위를 마크했다. 남녀부 모두 한국보다 높은 순위로 나름대로 선전했지만, 그렇다고 자랑할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스포츠 팬들이 잘 알고 있듯이 마라톤 기록의 정체 현상은 북한이나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이 오히려 더 지체하고 있다고 봐도 크게 무리하지 않다.

오랜 기간 한국 마라톤 발전의 밑바탕이 됐고 한때 ‘신기록의 산실’로도 불렸던 올해 서울국제마라톤대회(3월 18일·광화문광장~잠실종합운동장) 남자부 국내 선수 1위 기록은 2시간13분24초다. 이 기록은 1980년대 중·후반 수준이다.

이 대회에서는 여자부에서 김도연이 2시간25분41초를 기록해 권은주가 1997년 수립한 종전 한국 기록(2시간26분12초)을 31초 앞당긴 한국 최고 기록을 세워 한 줄기 희망을 빛을 안겼다. 물론 세계 최고 기록에는 여전히 10여분 뒤져 있다.

지난 1일 열린 대구국제마라톤대회 남자부 국내 선수 1위 기록은 2시간19분3초다. 이 기록은 1960년대 중·후반 수준이다. 여자부 1위 기록은 2시간28분17초로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

이어 지난 8일 펼쳐진 새만금국제마라톤대회 남자부 1위 기록은 2시간18분25초다. 이 기록은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박봉근이 작성한 당시 기준 한국 최고 기록 2시간18분18초에 7초 뒤진다.

잠시, 이 대회가 열린 50여년 전 서울로 돌아가 본다. 이 대회는 전국체전 치곤 비교적 경기력 수준이 높았다. 육상 종목에서는 한국 신기록 5개와 한국 타이기록 1개가 수립됐고 역도 종목에서는 세계 주니어 신기록 1개과 한국 신기록 8개, 한국 타이기록 1개가 나왔다.

육상에서 나온 기록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마라톤에서 박봉근이 기록한 2시간18초18의 한국 최고 기록이었다. 한국 마라톤은 1966년 3월 제37회 동아마라톤대회(서울국제마라톤대회 전신)에서 김복래가 2시간19분7초를 기록한 뒤 3년 넘게 19분 벽을 깨지 못하고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봉근의 기록은 주목을 받았고 기록 경신보다는 순위 싸움에 치중하는 전국체육대회에서 한국 최고 기록이 나왔다는 점에서 육상 관계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위를 한 김차환은 이듬해인 1970년 3월 제41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2시간17분34초로 박봉근의 기록을 깬 데 이어 1973년 3월 제44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는 2시간17분1초로 다시 한번 한국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여기서 반세기 전에 오갔던 이야기 내용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 마라톤의 정체 현상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전국체전 시도간 경쟁이 하나의 요인은 아닌지.

2010년 광저우 대회 남자부 지영준 우승 이후 한국 마라톤은 당장 2018년 자카르타-팔레방 아시아경기대회에서 2014년 인천 대회에 이어 또다시 ‘노메달’에 그칠 수 있는 위기에 몰렸다. 한국 마라톤은 정녕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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