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라운드를 응시하는 정정용 감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수원, 유현태 기자] 한 골씩 나눠갖고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 쪽에선 "정신력이 우리의 축구를 설명한다"고 말했고, 반대쪽에선 "정신력만으로 해결되는 시기는 지났다"고 말했다. 한 해가 다르게 아시아와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지금, 한국 축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국 19세 이하(U-19) 대표 팀은 2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트남과 3차전에서 1-1로 비기면서 대회를 마감했다. 

베트남전을 두고 두 가지 시선이 존재했다. 베트남 황아잉뚜언 감독은 정신력이 무승부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정정용 감독은 정신력만으론 부족하다면서 반대 의견을 내놨다. 황 감독의 인터뷰가 먼저 진행되고, 곧장 정 감독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정 감독이 내용을 파악할 시간은 충분치 않았을 것. '정신력'을 두고 두 감독의 온도 차가 뚜렷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를 모로코에 1-0으로 승리하며 기분좋게 시작했지만, 2차전에서 멕시코에 0-4로 완패했다. 마지막 경기에선 베트남과 비기면서 마쳤다. 찜찜한 승리보다도 오히려 문제점을 곱씹을 수 있는 결과였다.


◆ 베트남이 말하는 '뜨거운' 정신력

한 수 아래라고 봤던 베트남은 만만치 않았다. 경기력이 끈끈했다. 한국 내에 거주하는 베트남 팬들이 한국 팬들보다 훨씬 많이 경기장을 찾았고, 그들의 응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다. 경기를 마친 뒤 황아잉뚜언 감독은 "기술은 부족하지만 우리의 강점은 정신력이다. U-19 대표 팀이나 박항서 감독이 중국에서 보여준 장점은 정신력으로 하나로 뭉친 뒤에 좋은 결과를 냈다"면서 정신력을 베트남 축구의 중요 요소로 꼽았다.

박항서 감독의 부임 뒤 베트남 축구엔 단단한 힘이 생겼다. 견고한 수비 조직력이 생겼고, 역습으로 골을 넣을 줄도 안다. 일단 강력한 수비를 위해 많이 뛰어야 하고, 또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도 필요하다. 베트남 선수들은 한국의 공격에 그렇게 투지있게 맞서 무승부를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이 약점으로 꼽히지만, 볼을 다루는 기술이 좋아 역습에서 한국을 괴롭혔다.

황 감독은 "베트남 U-19 대표 팀, 중국에서 박항서 감독이 이끈 팀도 정신력으로 하나로 뭉친 뒤에 좋은 결과를 냈다. U-23 대표 팀이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의 장점이라고 꼽혔던 '투지'는 베트남에서도 유효하다는 뜻이다.

베트남 A 대표 팀을 이끄는 박항서 감독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하프타임 취재진과 만나 "베트남은 정신력은 굉장히 강하다.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팀이다. 부상자도 많이 있었지만 정신력으로 극복하고 있다. 후반전엔 어찌 될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흐뭇하다"고 밝혔다.

▲ 경기 전 모여 투지를 불태우는 한국 U-19 대표 팀 ⓒ임창만 기자

◆ 한국에 필요한 것은 '차가운' 정신력

정 감독도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열심히 뛰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정 감독은 흔히 말하는 투지를 의미하는 정신력이 아니었다. 심리 상태, 또는 경기 자세를 의미한다. 그는 "심리적, 기술적 압박 속에서 냉철하게 경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체력, 조직력만으론 부족하다"면서 차갑게 한국의 경기력을 되짚었다.

한국이 투지부터 밀린 것일까. '선장'의 생각은 다르다. 정정용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잘된 점과 못된 점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생각보다 더 근본적인 대답을 내놨다. 정 감독은 "대회를 나가려면 체력과 조직력만으로 되진 않는다.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U-18 대표 팀을 처음 소집했을 때 1대1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1대1엔 공격 뿐 아니라 수비도 포함한다"며 개인 기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축구 팬들 사이엔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이 유행어처럼 돈다. 최선을 다했지만 승리하지 못했을 때 상투적으로 나오는 표현이다. 정 감독이 지적한 바는 열심히 하는 '투지'만 강조해선 결국 '졌잘싸'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사실 여러 차례 월드컵에서 이미 입증된 결과다. 투지만으로 결과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뼈저리게 겪었다. 2차전에서 각각 네덜란드(0-5 패), 알제리(2-4 패)에 완패한 뒤, 정신 무장을 새롭게 하고 3차전을 치렀지만 승리는 없었다. 공교롭게도 1998년엔 벨기에와 1-1로 비겼고, 16년 뒤엔 0-1로 석패했다. 다만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 위안을 삼으면서 실력 차이를 인정해야 했다.

▲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 팀은 어떤 결과를 낼까. ⓒ한희재 기자

◆ 시선은 세계로, 발걸음은 그대로인 한국 축구

한국과 베트남. '정신력' 그리고 '투지'를 보는 온도 차는 뚜렷했다.

베트남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03위. 객관적으로 축구 강국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높은 수준의 팀과 차이를 절감하고 조금씩 극복해야 하는 위치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이 강한 팀을 만나면 주눅드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황 감독 역시 "이번 대회가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베트남은 당장의 결과보다도, 위축되지 않고 강하게 맞서 싸우는 법을 배워야 했다.

반대로 한국의 눈은 이미 아시아 무대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월드컵 진출은 9회 연속 진출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당연한 일이 됐다. 본선에서 성적을 내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 '열심히 하는 것'은 이제 당연하다.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선 다른 것들을 보완해야 한다. 베트남과 '정신력'을 보는 온도 차이가 나는 것은 목표와 지향점의 차이다.

문제는 한국 축구가 투지 외에 어떤 것을 내세울 수 있냐는 것. 정 감독은 개인 기량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동남아 축구는 공을 많이 다루고 논다"며 "어떻게 보면, 개인 능력에선…"이라고 말을 줄였다. 아마도 한국 선수들과 동남아 선수들이 개인 능력에선 큰 차이가 나지 않다는 뜻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정 감독은 "8인제 축구나 풋살 등을 적극 도입해 개인 능력을 높여야 한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더이상 정신력으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입엔 쓰지만 약이 될' 분석을 내놓으면서 시스템부터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축구의 발걸음은 제자리를 하는데 눈은 위를 바라보고만 있다. 한국이 늘 유럽과 남미를 상대로 강조했던 '정신력의 축구'를 베트남이 한다. 베트남을 꺾는 것이 목표라면 당장은 '투지'와 '정신력'으로 맞서는 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르지만, 더 높은 곳에 가려면 그리고 쫓아오는 이들을 뿌리치려면 보다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영상] [U-19] 정정용 감독 "대회 통해 배운 점은…" (JS컵) ⓒ임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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