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2년 뮌헨 올림픽 3위 결정전에서 북한에 세트스코어 0-3(7-15 9-15 9-15)으로 진 여자 배구는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세트스코어 3-0(15-5 15-5 15-9)으로 완승해 2년 전 패배를 설욕했다.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가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탁구는 전 대회인 제6회 대회에서 빠졌다가 이 대회에서 다시 정식 종목이 됐다한국은 1973년 제32회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이 대회에서 중국의 벽을 다시금 실감했다한국은 1년 전 세계선수권대회와 거의 같은 멤버로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과 만났으나 이번에는 1-3으로 졌다남자 단체전에서는 중국일본북한홍콩에 이어 5위에 머물렀다.


여자 단식에서는 에이스 이에리사가 1회전에서 중국의 후앙시핑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져 탈락한 가운데 정현숙이 준결승에서 1973년 세계선수권자인 후유란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하며 금메달의 꿈을 키웠으나 결승에서 중국의 또 다른 강자인 장리에게 세트스코어 1-3으로 져 은메달에 만족했다강문수-김순옥 조가 혼합복식에서 은메달을 보태 탁구에서는 은메달 3개가 나왔다.


남자 농구는 준결승에서 아시아경기대회에 첫 출전한 중국을 119-114로 잡았으나 결승에서 당시 지역 라이벌이었던 이스라엘에 85-98로 져 대회 2연속 우승에 실패했다세부 종목으로 추가된 여자 농구는 5개국이 돌려 붙기를 해 중국을 84-71로 꺾었으나 일본에 70-71로 져 31패로 2위를 기록했다배구는 남자는 결승에서 세트스코어 1-3, 여자는 풀리그에서 세트스코어 1-3으로 각각 일본에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축구에서는 스포츠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한국 축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를 때 지역 예선 출전을 포기해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벌금 5,000 달러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그 무렵 한국 축구는 제5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등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었다잉글랜드 월드컵 지역 예선 출전을 포기한 이유는 북한의 전력을 의식한 점도 있지만 국가 대표 팀 경기력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성적이 좋지 않은 데다 국외 원정에 나선 일부 선수들의 불미스러운 행위가 잇따르자 문교부는 1967년 4월 태국에서 열릴 제9회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대한축구협회의 파견 재심 요청을 받은 문교부는 출전을 허가하면서 *선수 전원은 필승의 신념으로 싸울 것과 어떠한 추문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쓸 것 *대회가 끝난 뒤 홍콩 또는 제3국에서 친선경기를 갖지 말 것 그리고 이상의 조건을 어길 때는 앞으로 어떤 국제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다문교부가 이런 조치까지 했지만 한국은 이 대회에서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1960년대 후반 한국 축구는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한국 축구는 19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버마(오늘날 미얀마)와 공동 우승하는 등 서서히 경기력을 끌어올렸지만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다시 한번 창피스런 일을 겪게 된다.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종목에는 15개 나라가 출전한 가운데 한국은 쿠웨이트태국과 1차 조별 리그 B조에 들었다한국은 첫 경기에서 태국을 1-0으로 이겼다태국이 쿠웨이트에 2-3으로 져 한국과 쿠웨이트는 2차 조별 리그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조 1, 2위를 가리는 경기를 갖게 됐다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B조에 속한 북한이 첫 경기에서 중국을 2-0으로 이겼으나 2차전에서 이라크에 0-1로 지는 바람에 조 2위가 될 것이 확실해졌다한국이 쿠웨이트를 이기면 조 1위가 돼 2차 조별 리그에서 북한과 같은 조가 될 것이 틀림없게 됐다.


쿠웨이트와 경기가 있던 날 한국 선수단에는 북한과 경기를 피하기 위해 쿠웨이트에 지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쿠웨이트에 0-4로 크게 졌다이 경기 전까지 한국은 쿠웨이트와 1972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 차례 만나 1-2로 진 적이 있었지만 그 뒤 2000년대까지 역대 전적에서 8승 3무 8패를 기록할 정도로 팽팽하게 맞섰다. 0-4로 대패할 전력 차가 아니었다한국 축구는 그 무렵 1971년 2월 남미 원정에서 페루에 0-4로 진 적이 있지만 아시아권 나라에는 단 한번도 4골 차로 진 일이 없었다.


2차 조별 리그에서 북한과 마주치지 않은 한국은 첫 경기에서 이라크와 1-1로 비기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이란에 0-2로 지면서 우승권에서 멀어졌다한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말레이시아를 이기면 3위 결정전에서 북한과 만나게 되는 상황이 됐다그러나 말레이시아에 2-3으로 져 한국과 북한의 경기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2차 조별 리그 B조에서 2위를 한 북한은 3위 결정전에서 A조 2위 말레이시아에 2-3으로 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결승에서는 이란이 이스라엘을 1-0으로 물리치고 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이란은 이후 1990년 베이징 대회와 1998년 방콕 대회, 2002년 부산 대회에서 정상에 올라 한국(970년 방콕 대회 1978년 방콕 대회 1986년 서울 대회 2014년 인천 대회)과 최다 우승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축구는 테헤란 아시아경기대회 직후인 9월 28일 도쿄에서 열린 제3회 한일 정기전에서 1-4로 대패했다. 1974년은 한국 축구가 잊고 싶은 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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