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영수가 24일 대전 두산전서 역투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 24일 대전 두산전 0-2로 뒤진 6회, 프로 18년차 투수에게 찾아온 첫 경험이었다. 공을 던지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공에 쓸리며 피부가 찢어졌고 손가락에선 피가 나기 시작했다.

한화 선발투수 배영수는 순간 잠시 당황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송진우 한화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하지만 이미 배영수는 더 던지기로 마음을 먹은 상황이었다. 피가 난 부분도 보기가 안 좋았을 뿐 투구에 별반 지장을 주지 않았다.

타자는 김재환이었다. 배영수의 공을 담장 밖으로 곧잘 날리는 선수였다. 연속 안타를 맞으며 흔들렸던 배영수는 김재환에게 좌월 스리런 홈런을 맞으며 치명타를 안았다.

이기적으로만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가 끝이었을 수도 있다. 상대 선발투수 이용찬의 구위를 봤을 때 5점 차를 뒤집는 건 쉬운 일은 아닌 듯 느껴졌다.

게다가 물집이라는 좋은 핑계도 있었다. 그냥 마음을 놓아 버리고 교체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배영수는 그러지 않았다. 6회를 끝까지 책임졌고 7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1사까지 잡았다. 승리에선 거리가 멀어져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부상도 있었고 상황도 넘어갔다. 얼마든지 교체를 원할 수 있었다. 불펜에선 이미 이태양이 예열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배영수는 왜 끝까지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을까.

▲ 배영수(가운데)가 마운드에서 손진우 코치(왼쪽), 최재훈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한희재 기자

배영수는 우선 "미안해서"라고 했다. 포수 최재훈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었다. 최재훈은 전날 헤드샷 부상으로 이날 정상 컨디션은 아니었다. 쉬는 것이 좋았을 수도 있는 경기였다.

그러나 최재훈은 출장을 강행했다. 배영수를 위해서였다. 최재훈은 출장을 결정한 뒤 "선배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공부 많이 하고 준비 많이 했습니다. 꼭 승리하시도록 돕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배영수의 마음을 움직인 말이었다.

배영수는 "5회까진 나쁘지 않았는데 6회에 실투가 나왔다. 김재환에게 던진 공은 바깥쪽 낮게 사인이 나온 공이었다. 내가 가운데로 던지다 홈런을 맞은 것이다. 물집은 중요하지 않았다. 재훈이 사인대로 됐다면 안 맞을 수 있었는데 순전히 내 탓이었다. 힘든 상황에서 마스크를 쓴 재훈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내가 내려가겠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다. 나 혼자 생각하고 고생하는 재훈이만 두고 내려가 버릴 수 없었다. 늘 재훈이에게 큰 도움을 받는다. 언제나 투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기 때문에 마음 든든하다. 꼭 승리로 그 고마움을 갚고 싶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팀 내 불펜 상황이었다. 한화는 최근 접전 승부가 많다 보니 불펜 소모가 그만큼 많았다. 무리하는 수준까진 아니지만 아껴 줄 필요는 있었다. 배영수는 승리가 요원해진 상황에서도 최대한 자기가 던질 수 있는 상황까지는 던지고 싶었다.

배영수는 "우리 불펜 투수들이 고생이 많다. 오늘은 나와 (이)태양이 만으로 경기를 끝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최선을 다해 더 던져야 했다. 7회까지 막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했다. 다행히 태양이로 경기를 끝날 수 있게 됐다. 주말 SK 3연전이 중요한데 우리 투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배영수는 이날 경기의 패전투수가 됐다. 최근 6경기 연속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등판 때마다 내용이 나쁜 편은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더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배영수는 '미안한 마음'을 먼저 떠올렸다. 물집이 터져 피가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책임을 다하려 애썼다. 승리는 얻지 못했지만 보이지 않게 팀에 힘을 보탰던 배영수의 등판이었다. 또한 최근 한화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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