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에서 열린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평가전을 마친 선수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신세대 팬을 비롯해 축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 20세 이하 월드컵 전신)에서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8강에 오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6월에 열린 이 대회 직전 탁구 단일팀 ‘코리아’가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게임 스코어 3-2로 물리치고 우승했기에 청소년 축구 단일팀 8강 소식 기쁨이 더욱 컸다.

글쓴이는 청소년 축구 단일팀 구성 과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판문점에 갔고 그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대회를 마무리할 때 장면부터 소개한다.

브라질과 8강전에서 수비 라인을 내리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친 끝에 1-5로 져 4강에 오르지 못한 ‘코리아‘ 남북 선수들은 포르투갈에서 헤어지지 않고 평양으로 함께 갔다. 탁구 단일팀 남북 선수들은 대회 장소인 지바에서 헤어져 각기 서울과 평양으로 향했다.

평양에서 환영 행사를 마친 남 측 선수들은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이때 글쓴이는 이태홍 이임생 강철 박철 서동원 조진호(작고) 등 귀환하는 한국 선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판문점으로 갔다. 탁구 단일팀 취재 때문에, 그 이전에는 군 생활을 JSA 인근에서 한 인연으로 낯설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날은 아직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글쓴이는 흔히 T3로 불리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북쪽 문 앞에서 선수들을 기다렸다. 일시적으로 월경(越境)한 것이다. 판문점 북쪽 통일각 옆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어 한국 선수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20살 청년들 눈이 한결 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잠시 뒤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제는 40대 후반의 중년 신사가 된 이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단일팀 구성 합의 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치른 평가전과 합숙 훈련 그리고 대회 출전 등 3개월 여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통일각까지 마중 나온 북 측 선수들과 헤어졌다. “서로 여자 친구 사진도 보여 주고, 꼭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포르투갈로 가기 전 서울에서 치른 평가전에서 ‘코리아’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에서 프로 축구 팀 유공과 맞붙었다. 외국인 선수가 포함된 유공과는 체격 조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경기 내내 밀리는 가운데 스탠드를 가득 채운 관중들은 남북한 청소년 선수들을 목청껏 응원했다.

서울 훈련 때 ‘코리아’ 팀 환영 행사가 서울 시내 S호텔에서 열렸다. 북 측의 윤철은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기량으로 행사장에서 단연 인기였다. 윤철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유공과 평가전 때도 ‘코리아’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때 김형직사범대학에 재학하고 있던 윤철에게 글쓴이가 넌지시 물었다. “남쪽 직업 축구단에서 뛰어 볼 생각 없습니까.” 시원한 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불러만 주시라요.”

윤철은 그때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고 본선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포르투갈 대회에 남북은 당당하게 단일팀 ‘코리아’를 보냈다. 당당하다는 표현을 쓴 까닭이 있다. 한국 축구사에 빛나고 있는 1983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4강은 곡절이 있었다.

한국은 1982년 8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동부 지역 예선 준결승에서 북한에 3-5로 진 뒤 3위 결정전에서 태국을 4-1로 물리쳤다. 북한은 그해 11월 뉴델리에서 벌어진 아시아경기대회 쿠웨이트와 준결승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고 주심을 폭행해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2년 동안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 그해 12월 열린 멕시코 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에 북한을 대신해 중국과 함께 동부 지역 대표로 출전해 2승1무로 1위에 올라 본선에 나가게 됐다. 한국에는 행운이, 북한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스스로 걷어차는 미스플레이가 ‘멕시코 4강 신화’ 이면에 있었다.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이런 일이 없이 깔끔하게 본선에 나섰다. 1990년 11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은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 한국이 승부차기 끝에 북한에 4-3으로 이겨 남북이 우승, 준우승을 나눠 가졌다. 그리고 3개월 뒤 단일팀을 꾸렸다.

27년 전 청소년 축구 단일팀 ‘코리아’에는 ‘철’이 들어가는 이름이 유난히 많았다. 조별 리그 아르헨티나전 결승 골의 주인공 조인철과 아일랜드전에서 동점 골을 넣은 최철 그리고 윤철(이상 북 측)과 박철 강철 한연철(남 측) 등 ‘철 자 형제들’이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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