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북한은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축구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0-0으로 비겨 공동 우승했다. 시상대에 나란히 선 남북 주장 김호곤(오른쪽)과 김정만. 한국 우승 멤버는 GK 김황호 조병득 FB 조영증 박성화 최종덕 김희태 MF 조광래 신현호 이강조 박상인 이영무 김성남·강남 쌍둥이 형제(김정남 전 월드컵 대표 팀 감독 동생) FW 차범근 허정무 등이다. 김황호와 조영증은 뒷날 메이저리그 사커(MLS)의 전신인 NASL에 진출했다.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가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 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은 구기 종목에서도 선전했다. 축구는 4년 전 테헤란 대회의 창피한 기억을 씻는 우승을 일궈 냈다. 결승전 상대는 껄끄럽게 여기던 북한이었다.

한국은 조별 리그 C조에서 바레인을 5-1로 크게 이기고 첫 판을 승리로 장식한 데 이어 쿠웨이트와 일본을 2-0, 3-1로 꺾고 조 1위로 준결승 리그에 올랐다. 한국은 중국과 말레이시아를 각각 1-0으로 물리친 여세를 몰아 홈그라운드의 태국을 3-1로 완파하고 조별 리그를 포함해 6전 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한국 축구는 이 대회에 앞서 7월에 열린 제22회 메르데카배대회와 9월에 벌어진 제8회 박대통령컵대회에서 우승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한국과 북한은 1945년 이후 처음으로 국가 대표 팀간 경기를 갖게 됐다. 국가 대표 팀간 경기는 아니지만 분단 이후인 1946년 3월 서울운동장에서 경평전이 벌어져 경성이 2-1, 평양이 3-1로 사이좋게 1승씩 나눠 가진 적은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남북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왕래가 가능했다.

대회 마지막 날인 12월 20일 방콕 스타디움에서 맞붙은 한국과 북한은 전·후반 90분을 득점 없이 비긴 뒤 연장전까지 치렀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하고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축구는 1970년 제6회 방콕 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공동 우승을 했다.

여자 농구는 풀리그로 진행됐다. 1960년대 박신자 뒤를 이어 1970년대에 샛별처럼 등장한 센터 박찬숙과 가드 강현숙, 홍혜란 그리고 포워드 정미라, 조영란 등을 앞세운 한국은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를 108-20으로 꺾은 데 이어 라이벌 일본을 63-48, 태국을 97-49로 물리치고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을 77-68로 잡고 4전 전승으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남자 농구에서는 1966년 제5회 방콕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이번 상대는 북한이었다. 김동광과 박수교, 이충희, 신선우 등으로 짜인 한국은 예선 리그 B조에서 필리핀을 95-76으로 물리치는 등 4전 전승의 기록으로 결승 리그에 올랐다. 한국은 결승 리그 1차전에서 일본을 85-76으로 누르고 북한과 2차전에서 맞붙었다.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줄곧 리드를 잡아 나가다 경기 종료 15분 33초를 남기고 51-37로 크게 앞섰다. 이때 북한은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해 버렸다. 한국은 북한에 거둔 기권승을 포함해 4연승한 뒤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과 맞섰으나 장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71-91로 져 은메달을 차지했다.

강만수와 이인, 김호철 등으로 구성된 남자 배구는 예선 리그 C조에서 인도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을 세트스코어 3-0으로 물리쳤으나 중국에 1-3으로 져 조 2위로 6강이 겨루는 결승 리그에 진출했다. 한국은 결승 리그 첫 경기에서 예선 리그에 이어 다시 만난 중국을 3-0으로 잡았다. 이어 버마(오늘날 미얀마)를 3-0으로 물리쳤으나 일본에 1-3으로 졌고 마지막 경기에서 이라크를 3-0으로 물리쳤다. 그런데 일본이 중국에 물리면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4승1패로 타이가 됐고 세트 득실 차에서 한국이 앞서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여자 배구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6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풀리그로 진행됐다. 한국은 약체인 홍콩과 태국을 세트스코어 3-0으로 눌렀으나 일본에 1-3으로 역전패한 뒤 북한과 마주쳤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북한은 주포 김정복이 은퇴하는 등 전력이 약화돼 한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한국은 북한을 3-0(15-6 15-10 15-4)으로 가볍게 물리쳤으나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에 0-3으로 완패해 동메달에 만족했다.

탁구 여자 단체전에서는 일본을 3-0으로 꺾었으나 중국의 벽을 넘지 못하고 5승1패로 은메달을 차지했고 여자 단식 김순옥, 혼합복식 윤길중-김순옥 조와 이상국-이기원 조, 남자 복식 윤길중-박이희 조가 동메달을 보탰다.

이 대회 육상과 수영에서 한국은 '노골드'에 그치며 기초 종목의 열세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1970년 제6회 방콕 대회와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 백옥자와 조오련의 활약에 힘입어 잠시 반짝했으나 전반적으로 약한 경기력과 얇은 선수층으로는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육상은 여자 200m에서 이은자가 은메달, 남자 100m에서 서말구가 동메달을 딴 게 메달의 전부였다. 수영에서는 12살의 어린 나이로 출전한 최윤정이 배영 100m와 200m, 조오련이 남자 접영 200m에서 획득한 동메달 3개로 대회를 끝냈다.

체조에서는 여자 단체전과 여자 뜀틀의 정진애가 은메달을, 남자 단체전과 남자 마루운동의 김휘철이 동메달을 획득했다.

북한은 종합 순위에서 한국에 밀리기는 했지만 개최국 태국을 밀어내고 두 번째 출전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4위에 오르는 등 선전했다. 북한은 강세를 보인 사격 외에 육상에서 여자 1500m와 3000m에서 금메달, 마라톤에서 일본에 이어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는 등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로 수준급 성적을 올렸다. 또 역도와 체조에서 각각 3개와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개인 종목에서 비교적 좋은 성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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