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현대 야구에선 장기 레이스를 효과적으로 치르기 위해 투수들의 보직을 세분화한다. 먼저 선발투수와 불펜 투수를 나눈다. 다음으로는 불펜을 세분화한다. 가장 먼저 마무리를 정하고, 셋업맨을 포함한 필승조를 두어 명 뽑는다. 필요에 따라선 왼손, 오른손 스페셜리스트를 두기도 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남는 투수는 팀이 뒤지고 있거나 많이 넘어간 경기에서 남은 이닝을 책임진다. 지금은 추격조로 불린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비교적 약한 선발 전력을 보완하기 위해 불펜에 비중을 뒀다. 송은범, 이태양, 안영명 등 6선발 후보로 꼽혔던 투수들을 모두 불펜으로 넣었다. 마무리 투수 정우람 앞을 송은범과 안영명이 지킨다. 왼손 투수로는 박주홍과 김범수 오른손 투수로는 박상원을 활용했다. 사이드암스로 서균 역시 필승조로 배치됐다. 남아 있는 장민재와 이태양가 한화의 추격조였다.
그러나 한용덕 한화 감독은 추격조라는 말을 조심스러워했다. 장민재와 이태양이 굳을 일을 맡아 줘 고맙다고 하면서도 이들을 추격조로 못 박지는 않았다. 그리고 조금씩 활용도를 바꾸고 있다.
8일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SK와 경기가 한 감독이 구상한 그 순간이었다. 6회 1점 차, 득점권 위기에서 등판한 소방수는 송은범 안영명이 아닌 장민재와 이태양이었다.
한화는 6-3으로 앞서 있던 6회 선발 김재영이 정진기에게 솔로 홈런, 나주환에게 2루타를 맞으면서 흔들렸다.
장민재가 김재영을 대신했다. 하지만 노수광에게 1타점 3루타를 맞고 한 점 차로 쫓겼다. 한동민을 볼넷으로 내보내 2사 1, 3루 위기에 몰렸다. 타석엔 홈런 1위 최정이 들어섰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렸던 그였다.
송진우 투수 코치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단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이었다. 안영명은 지난 2경기에서 연투를 했기 때문에 잠정적인 휴식조였다. 송은범은 7일 잠실 LG전에서 1.2이닝을 책임지며 공 25개를 던졌다. 6회 2아웃에서 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송 코치에게 공을 받은 선수는 이태양이었다. 피홈런이 많은 투수라는 이미지가 있었기에 한화 벤치의 선택은 의외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초구 시속 146km 꽉 찬 패스트볼을 최정의 몸쪽에 찔러 넣어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두 번째 공도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볼 카운트 0-2에서 이태양은 곧바로 승부했다. 146km 패스트볼을 던져 최정을 우익수 뜬공으로 잡았다.
이태양은 7회도 실점하지 않고 6-5 리드를 이어 갔다. 8회도 책임졌다. 2.1이닝 무실점. 리그에서 가장 잘 친다는 SK 타자들 9명 가운데 8명을 상대로 해냈다.
이태양은 지난달 말부터 조금씩 이기는 상황에서도 마운드에 서고 있다. 지난 6일엔 4점 차 리드에서 정우람을 대신해 9회 마지막 이닝을 책임졌다. 장민재도 마찬가지다. 지난 2일 2-1로 앞선 7회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첫 홀드를 거머쥐었다. 이날 등판도 같은 맥락이었다. 한화가 지난해까지 선발과 불펜의 보직을 허물었다면 올 시즌엔 추격조와 필승조의 경계를 없애고 모두를 필승 계투로 만들었다.
한화 불펜의 평균자책점은 3.22로 리그에서 굳건한 1위다. 2위 삼성 불펜(4.73)과 차이가 현격하다. 우리 불펜이 가장 좋다는 자부심과 모두가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마음가짐이 선수들에게 심어져 있다.
이태양은 “우리 불펜 투수들은 서로 나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다들 잘하고 있으니 선의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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