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 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한체육회
한국에서 30년 만에 열린 올림픽인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4년마다 돌아오는 ‘메가 스포츠 이벤트’ 해인 올해 또 하나의 국제 종합 경가 대회는 제18회 하계 아시아경기대회다. 이번 대회는 1962년 제4회 대회(자카르타) 이후 56년 만에 인도네시아에서 열린다.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자카르타와 팔렘방에서 개최되는 이번 대회에서는 40개 종목에서 462개의 금메달을 놓고 우정의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한국은 1951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대회는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했지만 1954년 제2회 마닐라 대회부터 꾸준히 출전하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한국의 아시안게임 출전사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86년 국내 스포츠계 최대 행사는 제10회 서울 아시아경기대회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한민족이 한반도에 자리를 잡고 산 지 5천여 년 만에 연 가장 큰 규모의 국제 잔치였다.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36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회원국 가운데 27개 나라 4,839명의 선수단이 서울에 왔다. 한국 선수단은 본부 임원 38명, 경기 임원 및 코치 106명, 남자 선수 343명, 여자 선수 152명 등 638명의 대규모였다.

대회 막바지까지 중국(금 94 은 82 동 46)과 치열한 접전을 벌인 메달 레이스에서 한국은 금메달 93개와 은메달 55개, 동메달 76개로 일본(금 58 은 76 동 77)을 여유 있게 따돌리고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종합 순위 2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3강이 치열한 메달 레이스를 펼친 가운데 이란(금 6 은 6 동 10)과 인도(금 5 은 9 동 23)가 각각 4위와 5위에 올랐다.

한국은 금메달 숫자에서는 중국에 1개 차로 밀렸으나 전체 메달 수에서는 2개 앞서며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이 대회에서 수립된 11개의 세계신기록 가운데 9개, 140개의 아시아 신기록 가운데 27개, 224개의 대회 신기록 가운데 18개를 한국 선수들이 세웠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1982년 뉴델리 대회 최윤희(수영)에 이어 두 번째로 3관왕이 된 임춘애(육상)를 비롯해 15명의 다관왕이 나왔다. 다관왕은 *4관왕=양창훈(양궁) 유진선(테니스) *3관왕=임춘애(육상) 김진호 박정아(이상 양궁) 박주봉(배드민턴) *2관왕=고낙춘 이일희(이상 펜싱) 차영철 박정아(이상 사격) 유남규(탁구) 김봉수(테니스) 최윤희(수영) 서정균(승마) 김문수(배드민턴) 등이다. 양궁의 박정아와 사격의 박정아는 한자(朴貞娥)도 같은 동명이인이다.

많은 다관왕의 탄생과 함께 한국은 25개 종목 가운데 농구 배구 조정에서만 금메달을 얻지 못한 가운데 22개 종목에서 고르게 메달을 획득했다. 중국과 일본은 육상 수영 사격 체조 등 몇몇 종목에 메달이 몰려 한국과 대조를 이뤘다.

[육상]42개 세부 종목 가운데 7개의 금메달을 차지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이는 여자 800m 1500m 3000m에서 1위를 차지한 임춘애의 활약이 큰 도움이 됐다. 임춘애는 800m에서 인도의 쿠리신칼 아브라함이 주로를 벗어나 실격하는 바람에 금메달을 이어받는 행운도 따랐지만 3000m에서 9분11초92로 대회 신기록을 세우는 등 이 대회 육상 최고의 스타가 됐다. 남자 200m의 장재근, 남자 800m의 김복주, 남자 5000m의 김종윤, 남자 멀리뛰기의 김종일이 잠실벌에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했다.

▲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양궁 종목에서 다관왕에 오른 박정아 양창훈 김진호(왼쪽부터) .ⓒ대한체육회
[양궁]세계적인 양궁 강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맞이한 이 대회에서 한국은 남자부 개인 종합과 90m 더블에서 일본에, 여자부 70m 더블에서 중국에 1위를 내줬을 뿐 12개 세부 종목 가운데 9개 종목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양창훈은 남자 30m, 50m, 70m 더블과 단체전 등 4관왕에 올랐고 박정아는 여자 50m 더블과 개인종합 그리고 단체전 등 3관왕이 됐다. 김진호도 30m 더블과 50m 더블 그리고 단체전 등 3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체조]한국이 이 대회 전까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획득한 체조 금메달은 단 두 개로 1974년 테헤란 대회 남자 링 김국환, 평행봉 이영택 이후 금메달리스트가 없었다. 일본과 중국은 시대는 엇갈리지만 세계적인 체조 강국으로 아시아에서는 따라올 나라가 없었다. 그러나 이 대회에서 한국은 남자 평행봉 권순성, 여자 평균대 서선앵, 이단평행봉 서연희가 금메달 연기를 펼쳤고 남녀 단체전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오르는 작은 이변을 일으켰다.

[수영]전 대회인 1982년 뉴델리 대회 3관왕인 최윤희가 수영 선수단의 체면을 살렸다. 최윤희는 여자 배영 100m에서 1분04초90, 200m에서 2분18초33의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1위로 터치 패드를 찍었다. 이 종목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일본의 오노 가오루와 세키도 나오미, 세키도 나오미와 하라다 히로요가 모두 아시아 신기록을 세웠을 정도로 한일간 경쟁이 치열했다.

[사격]애초 목표였던 금메달 4개를 뛰어넘는 7개의 금메달을 차지해 이후 있을 국제 대회의 선전을 예고했다. 윤덕하 차영철 곽정환이 남자 소구경소총복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차영철은 이 종목 개인전에서 금 과녁을 명중해 2관왕이 됐다. 여자 공기소총 단체전에서는 박정아 이홍기 강혜자가 우승했고 이 종목 개인전에서 박정아가 금메달을 차지해 역시 2관왕이 됐다. 여자 공기 소총은 이 대회를 계기로 국제 종합 경기 대회에서 경쟁력이 있는 사격 세부 종목으로 떠올랐다.

[역도]전 대회인 1982년 뉴델리 대회에 이어 또다시 중(重)량급에서 선전했다. 90kg급 전병국은 용상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보다 7.5kg이나 더 나가는 192.5kg을 들어 올려 합계

337.5kg으로 이라크의 압둘라 아랄라에 2.5kg 차로 역전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100kg급 황우원은 역시 인상에서는 은메달리스트인 중국의 구이닝에게 17.5kg이나 뒤졌으나 용상에서 구이닝보다 20kg을 더 드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합계 360kg으로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110kg급 이민우는 합계 382.5kg으로 이라크의 라임 압둘라를 32.5kg 차로 여유 있게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펜싱]남자부에서만 4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최정식과 김봉만, 이일희, 이상기, 윤남진이 나선 에페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8-1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고 이 종목 개인전에서는 이일희가 우승해 2관왕이 됐다. 고낙춘과 조재봉, 이영록, 홍영승 그리고 김승균이 출전한 플러레 단체전 결승에서는 중국을 8-6으로 누르고 1위에 올랐고 이 종목 개인전에서 한국은 고낙춘과 조재봉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눠 가졌다.

▲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 사이클 여자 도로경기 64km에서 우승한 김경숙. ⓒ대한체육회
[사이클]역시 한국은 도로경기에 강했다. 남자 179.2km 도로경기 개인전에서 신대철, 여자 64km 도로경기 개인전에서 김경숙이 각각 금메달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도로경기 단체전을 비롯해 다른 세부 종목에서는 애초 기대했던 성적에 다소 못 미쳤다.

[요트]대회 최연소(13살) 우승자가 이 종목에서 나왔다. 대천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박종우는 요트를 탄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데다 국제 대회 경험도 없었지만 옵티미스트급에서 금메달 레이스를 펼쳤다. 레이저급 박길철이 금메달을 더했다.

[승마]6개의 세부 종목 가운데 3개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신창무와 서인교, 서정균이 나선 마장마술 단체전에서 한국은 일본을 2,367점-2,123점으로 제치고 금메달을 달렸고 이 종목 개인전에서 서정균이 금메달을 차지해 2관왕이 됐다. 종합마술 개인전에서는 최명진이 마필명 고구려를 타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조정]농구, 배구와 함께 금메달이 나오지 않은 종목이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미사리 조정경기장은 양대 대회 이후 경정 경기장으로 이용되는 한편 서울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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