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 독일과 조별 리그 F조 1차전에서 1-0으로 이긴 멕시코 선수들이 승리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 로스앤젤레스 거주 한인 동포들이 1932년 여름철 올림픽에 출전한 권태하 김은배(이상 마라톤) 황을수(복싱)를 위한 환영회를 열고 있는 장면. 행사장 벽에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과 멕시코는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여서 오랜 기간 교류할 일이 없었다. 20세기 초 노동 이민이 이뤄지면서 墨西哥[묵서가, 멕시코]라는 나라로 알려지긴 했지만.

축구도 마찬가지다.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대회를 빼고는 활동 대륙이 다르기 때문에 만날 까닭이 특별히 없었다.

그런데 나라별 상대 전적을 살펴보면 한국과 멕시코는 비교적 자주 만났다. 오는 24일 열리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 리그 2차전이 13번째 만남인데 이 경기 전까지 12번이나 겨뤘다. 4승2무6패로 한국이 열세다.

이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일본(41승23무14패), 1970년대까지 축구를 비롯한 한국 스포츠 주요 교류 상대였던 동남아시아 나라들인 말레이시아(26승12무8패) 월남(남베트남, 통일 베트남 포함 17승6무2패) 버마(미얀마, 15승7무5패) 태국(30승7무8패) 인도네시아(31승4무2패)만큼은 아니지만 한국과 멕시코는 꽤 많은 경기를 치렀다.

한국-멕시코 경기와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을 앞두고 한국 축구 대표 팀은 그해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이때 평가전 상대가 멕시코였고 한국이 김강남의 결승 골로 1-0으로 이겼다. 1948년 런던 올림픽 1회전에서 한국이 멕시코를 5-3으로 꺾은 이후 32년 만에 이뤄진 두 나라의 축구 경기였다.

이 전지훈련에 글쓴이 선배인 A 아무개 기자가 ‘동행 취재’했다. 예전에는, 해외 원정 선수단과 기자가 같은 편이라는 냄새가 나는 이런 표현을 썼다.

전지훈련 기간 미국 동부 지역인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는 겨울철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미국 동부와 서부는 3시간 시차에 비행기로 5~6시간 정도 걸리는데 글쓴이가 일하던 매체는 서부 지역으로 출장 간 기자 이름으로 올림픽 소식을 보도했다. 기사는 글쓴이가 서울에서 작성했고. 한국 스포츠가 동계 올림픽 메달을 꿈꾸지도 못하던 때이니 관심을 가질 이도 거의 없긴 했다.

한국은 전지훈련의 보람도 없이 그 무렵 천적이었던 말레이시아에 또다시 발목을 잡혀 올림픽 출전 꿈을 접어야 했다. 예선을 통과했어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구실로 올림픽 보이콧 운동을 펼친 미국과 함께해 모스크바에 가지 못하는 결과는 다르지 않았겠지만.

1981년 2월 한국은 멕시코시티에서 멕시코와 1년여 만에 다시 만나 이번에는 0-4로 졌다. 한국은 그해 4월 쿠웨이트에서 열릴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 대비해 전지훈련에 나선 참이었다. 한국은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1차 예선 3조에서 쿠웨이트의 ‘강력한 홈 텃세’에 밀려 조기 탈락했다.

1985년 12월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멕시코와 다시 만나 1-2로 졌다. 이어 곧바로 과달라하라로 이동해 멕시코 4개국 친선 대회에서 일주일 만에 다시 겨뤄 1-2로 패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 대비한 전지훈련에서 이뤄진 경기들이었다. 축구 팬들이 잘 알고 있듯이 한국은 이 전지훈련의 효험으로 일본을 따돌리고,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에 나섰다.

이후에도 한국과 멕시코는 말보로컵(1989년 로스앤젤레스), 프랑스 월드컵(1998년 리옹) 코리아컵(1999년 잠실) 컨페더레이션스컵(2001년 울산) 북중미 골드컵(200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잇따라 만났다. 친선경기가 아닌 이 5차례 만남에서 한국은 1승2무2패로 멕시코에 뒤졌다. 이어 2006년과 2014년 로스앤젤레스와 샌앤토니오에서 두 차례 친선경기를 가져 1승1패를 기록했다.

두 나라가 치른 12경기 가운데 5경기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렸으니 한국~멕시코~로스앤젤레스~축구가 연관 검색어로 묶일 수도 있겠다.

나성(羅城)으로 불리는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한국 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 이 대회에 출전한 권태하 김은배(이상 마라톤) 황을수(복싱)를 환영하는 행사를 열었을 정도로 한국과 로스앤젤레스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각별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는 한국 동포보다 훨씬 많은 멕시코인들이 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는 스포츠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에서도 다른 어느 도시보다 스포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국내 팬들에게 매우 익숙한 다저스(야구) 레이커스·클리퍼스(농구) 킹스(아이스하키) 등 프로 스포츠 구단을 안고 있고 UCLA USC 등 스포츠 명문교가 소재한 곳인데다 1932년과 1984년 두 차례 여름철 올림픽을 개최했고 2028년 세 번째로 열릴 정도인 스포츠 도시다. UCLA와 USC는 가을 학기가 시작할 때 수강 신청 줄보다 두 학교 미식축구 경기 입장권 예매 줄이 더 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이런 조건이니 한국 축구 대표 팀의 전지훈련지로 적합하고 전훈 기간 상대로 멕시코가 꼽힐 만하다.

또 하나 친선경기이지만 흥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또한 최고의 카드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나라 경기가 열리면 일정 수준의 관중이 확보되는 데다 국내 중계권료가 상당해 ‘장사가 되는 매치’였던 것이다. 게다가 1980년대 축구 현장 기자들에 따르면 멕시코는 어떤 나라 대표 팀 또는 어느 클럽보다 성실하게 스파링 파트너로서 임무를 해냈다고 한다.

먼 나라지만 축구로는 왠지 가깝게 느껴지는 그 나라, 멕시코와 일전이 나흘 뒤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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