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로 1992(스웨덴) 우승국으로 이번 대회로 월드컵에 다섯 번째 출전한 덴마크는 호주와 일진일퇴 공방전을 펼친 끝에 1-1로 비겼다. 1-2로 진 프랑스와 1차전에 이어 또다시 선전한 호주 선수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국내 지상파 중계 외면에도 ‘사커루’ 호주는 잘 싸웠다.

호주는 21일 밤(이하 한국 시간) 사마라 아레나에서 열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덴마크와 조별 리그 C조 2차전에서 1-1로 비겼다. 호주는 1무1패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었던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12년 만의 16강 진출 꿈을 이어 갔다.

호주는 26일 C조 마지막 경기에서 2승으로 16강 진출이 확정된 프랑스가 덴마크를 꺾는다는 전제 아래 2패로 탈락이 결정된 페루와 경기에서 이기면 골 득실 차나 다득점 등으로 1라운드 통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호주는 보는 이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지만 덴마크에 다소 앞서는 경기를 했다. 1-2로 진 프랑스와 1차전에서도 호주는 선전했다. 현실적으로 16강에 오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지만 호주는 2000년대 중반 OFC(오세아니아축구연맹)를 떠나 AFC(아시아축구연맹)로 이사 온 뒤 이번 대회까지 4연속 월드컵 본선에 나서며 축구 실력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알렸다.

월드컵 티켓 0.5장이 배분되는 OFC에서 1위를 하지만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는 스코틀랜드, 1994년 미국 대회에서는 아르헨티나,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이란, 2002년 한일 대회에서는 우루과이와 치른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밀려 본선 출전 꿈이 좌절됐던 호주에 OFC→AFC 이적은 ‘신의 한 수’였다.

한국은 호주가 아시아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 월드컵 예선에서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호주에서 열린 2015년 아시안컵 조별 리그와 결승전에서 만나 1-0 승리와 1-2 패배를 주고받은 게 가장 큰 대회 대결 성적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꽤 자주 만났고 그 시절 호주는 한국에 애물단지 같았다.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보자.
 
한국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 1974년 서독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잇따라 호주와 만나 계속 발목이 잡혔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에서는 차범근의 활약으로 호주를 넘어섰으나 이번에는 이란에 밀려 또다시 본선 진출 꿈이 물거품이 됐다.

1970년대 이전에 한국보다 좋은 체격에 유럽형 축구를 구사하는 나라와 겨룰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호주와 경기는 그래서 늘 버거웠다.

호주 외에는 1970년대까지 축구를 비롯한 모든 종목 활동을 아시아 무대에서 한 이스라엘과 만나는 정도였다. 이스라엘과는 아시안컵과 월드컵 예선에서 주로 만났다. 아시안컵에서는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대회, 1960년 서울(효창운동장)에서 벌어진 제2회 대회에서 연이어 마주쳐 2-1 3-0으로 이겼다.

그러나 1964년 텔아비브에서 개최된 제3회 대회에서는 1-2로 졌다. 1957년에는 이스라엘 하포엘 클럽이 한국을 찾아 1승2패의 전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스라엘 외에 1960년대까지 한국과 경기한 유럽형 축구를 하는 나라로는 1962년 칠레 월드컵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옛 유고슬라비아 정도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북한에 1-6, 1-3으로 진 호주가 3년 뒤인 1969년 10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 나타났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1차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이 예선은 한국과 일본(주 공격수 가마모토 구니시게가 빠진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동메달 멤버) 그리고 호주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그런데 북한에 대패한 호주가 3년 사이에 급성장한 것인지 경기력이 만만치 않았다.

이 예선 조에는 이스라엘과 로디지아(오늘날의 짐바브웨), 북한 등이 들어 있었는데 북한은 이스라엘과 경기를 거부하면서 출전을 포기했다. 로디지아는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밀려나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으로 배정됐지만 한국 역시 아프리카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의식해 로디지아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남북한은 UN 가입과 가입 저지 등을 놓고 치열한 외교전을 하고 있었는데 주요 공략 대상이 아프리카 나라들이었다.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진행된 예선에서 한국은 일본에는 1승 1무(2-0 2-2)로 앞섰으나 호주와 1차전에서 1-2로 진 데 이어 2차전에서 1-1로 비겨 2차 예선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호주는 2차 예선에서 로디지아를 따돌렸으나 최종 예선에서 뉴질랜드를 물리친 이스라엘에 1무1패(1-1 0-1)로 밀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974년 서독 월드컵 예선에서는 호주가 한국에 더 센 아픔을 안겼다.

서독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은 1970년에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방콕), 메르데카배(쿠알라룸프르), 킹스컵(방콕)을 휩쓸며 기세를 올렸고 그해 포르투갈 명문 클럽 벤피카, 1972년 펠레가 이끄는 산토스 클럽과 친선경기를 갖는 등 실력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1973년 11월 1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서독 월드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최종 예선 호주와 경기에서 고재욱이 2-0으로 앞서가는 골을 넣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이 골을 지켰으면 이후 한국 월드컵 출전사는 크게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1973년 10월 28일과 11월 11일 시드니와 서울을 오가며 벌어진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호주와 0-0, 2-2로 비긴 뒤 11월 13일 홍콩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0-1로 져 본선 문턱에서 좌절했다. 서울운동장에서 벌어진 홈경기에서는 전반 15분 김재한, 27분 고재욱의 연속 골로 2-0으로 앞서며 월드컵 본선에 바짝 다가서는 듯했지만 전반 29분 블랑코 불제비치에게 추격 골, 후반 3분 레이 바르츠에게 동점 골을 내줘 땅을 쳤다. 11월 11일 그날 서울에는 진눈깨비가 내리는 등 궂은 날씨였다. 나쁜 날씨만큼이나 가슴 아픈 패전이었다.

3차전 장소인 홍콩행 항공기에 한국과 호주 선수단이 함께 탔는데 비행하는 동안 승패가 결정돼 있었다고 느낄 만큼 두 나라 선수단 분위기가 달랐다는 게 당시 선수단과 동행한 원로 축구인의 회상이다. 

한국과 적지 않은 인연으로 묶여 있는 ‘사커루’에 대해 잠시 추억해 봤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