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상 다국적 군단인 프랑스가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12년 만에 결승에 올라 1998년 자국 대회에 이어 통산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을 노린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아트 사커' 프랑스가 중앙 수비수 사무엘 움티티의 방향을 살짝 바꾸는 절묘한 헤더 한 방으로 '황금 세대' 벨기에를 무너뜨렸다.

프랑스는 11일 새벽(이하 한국 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년 FIFA(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에서 벨기에를 1-0으로 꺾고 2006년 독일 대회 이후 12년 만에 결승에 올랐다. 프랑스는 12일 새벽 벌어지는 잉글랜드-크로아티아 경기 승자와 FIFA 컵을 놓고 겨룬다.

11일 경기는 물론 이번 대회에서 프랑스 경기를 본 초보 축구 팬 가운데에는 순수 프랑스인과는 피부색이 다른 선수들이 여럿 뛴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했을 수 있다. 벨기에와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움티티, 떠오르는 별 킬리안 음바페 그리고 폴 포그바, 은골로 캉테, 오스만 뎀벨레, 스티븐 은존지 등은 이름만 봐도 대번에 순수 프랑스인이 아니고 아프리카계 선수라는 걸 알 수 있다. 23명의 프랑스 대표 팀은 순수 프랑스 선수를 찾는 게 훨씬 빠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민혁명을 일으켜 성공한 나라,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는 나라 프랑스도 영국만큼은 아니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꽤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고 북미 대륙 여러 지역도 점령했다.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어 프랑스 식민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오늘날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을 뿌리로 하는 몇 개의 나라로 분할돼 있을 수도 있었다.

식민지 쟁탈 시대에 프랑스와 연을 맺게 된 나라 출신 선수들이 프랑스 축구 대표 팀의 주력으로 뛰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이 경기할 나라들 전력을 분석하는 가운데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이마누엘 올리사데베였다. ‘~스키’ ‘~크’ 등으로 끝나는 폴란드 선수들 가운데 분명히 순수 폴란드인 아닌 선수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폴란드 주전 공격수였다.

조별 리그 1차전 필승 각오를 다지고 있던 한국에는 '올리사데베의 발을 묶어야 한다'는 지상 과제가 떨어졌다. 한국은 '진공청소기' 김남일이 올리사데베를 꽁꽁 묶었고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2-0으로 이겼다.

그때 그리스 리그 파나시나이코스 소속이었던 올리사데베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폴란드로 귀화했다. 올리사데베는 한일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8경기에서 7골을 넣으며 폴란드를 본선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부진해 미국과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1골 넣은 게 전부였다.

그 무렵 축구 팬들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한국과 경기에 브라질 출신 공격수 와그너 로페스가 ‘삼족오’가 붙어 있는 유니폼을 입고 뛰는 걸 봤고 국내 리그에 신의손(발레리 사리체프, 타지키스탄 출신) 같은 귀화 선수가 활동하고 있었기에 올리사데베가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상당수 축구 팬들 생각은 "프랑스가 아닌, 동유럽 나라에 아프리카계 선수라니"라는 것이었다. 199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자국 사상 처음으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어서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공동 개최한 유로 2000에서 프랑스를 대회 두 번째 정상에 올려놓은 지네딘 지단이 알제리 출신 이민자 집안인 것을 비롯해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 프랑스 대표 선수 가운데 패트릭 비에이라(세네갈), 클라우드 마켈레레(자이르), 마르셀 데잘리(가나), 다비드 트레제게(아르헨티나) 등 순수 프랑스인이 아닌 선수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축구 대표 팀 구성은 으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수 구성을 한 디펜딩 챔피언 프랑스가 개막전에서 식민 국가였던 세네갈에 0-1로 졌고 이후 우루과이와 0-0으로 비기고 덴마크에 0-2로 져 일찌감치 귀국길에 올랐다.

러시아 월드컵에 나선 프랑스 대표 팀의 아프리카계 비율은 한일 월드컵 때보다 높아졌다. 비율의 고저와 관계없이 프랑스 축구는 유럽+아프리카 축구라고 봐도 크게 무리하지 않다. 축구는 프랑스에서 배웠지만 뿌리는 말리, 콩고, 카메룬, 기니, 세네갈, 모리셔스, 자이르 등 상당수가 아프리카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귀화 또는 혼혈 선수를 얘기하는 게 시대에 동떨어지는 일이긴 하지만 프랑스 대표 팀은 ‘세계화’ 정도가 다른 나라에 견줘 좀 높긴 하다.

국내로 눈길을 돌려 봐도 혼혈 선수, 귀화 선수는 이제 화제의 대상이 아니다. 다음 달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는 남자 농구 대표 팀에는 라건아(리카르도 라틀리프, 미국 출신)가 골 밑을 든든히 지키고 있다. 한국의 취약 포지션인 센터가 강화돼 선전이 기대된다.

농구는 1970년대에 이미 혼혈 선수가 국가 대표로 활약했고 탁구는 요즘 꽤 많은 귀화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혼혈 선수, 귀화 선수를 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한국전쟁과 맞물린 혼혈인에 대한 편파적인 시각은 뼈아픈 과거다. 물론 이런 시각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지만.

혼혈 선수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귀화 선수에 대한 불합리한 대우와 편견도 분명히 있다. 축구의 경우 아직까지 귀화 선수가 태극 마크를 단 사례가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 팀 전략 강화 방안 가운데 하나로 공격수 샤샤와 수비수 마시엘 등 K리그에서 뛰고 있는 우수 외국인 선수의 귀화 문제가 잠시 거론됐으나 곧바로 물밑으로 내려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탁구계에서는 잠시 논란이 있었다. 중국 출신 귀화 선수 당예서가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대한탁구협회는 ITTF(국제탁구연맹) 랭킹에 따라 자동 출전권을 확보한 김경아와 박미영 외에 1명의 선수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이은희를 아시아 예선에 내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실질적으로 국내 랭킹 1위인 당예서를 비롯한 우수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게 돼 결국 선발전을 열게 됐고 당예서는 7전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예선은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수준이니 가볍게 통과했다.

당예서는 여자 단체전 조별 리그와 3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잇따라 3-0으로 꺾는 데 힘을 보태 첫 귀화 한국인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2014년 소치 겨울철 올림픽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릴레이에서 공상정(대만 출신)이 금메달 멤버가 되면서 당예서의 뒤를 이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혈통은 매우 복잡하다. 아버지에게는 흑인과 아메리칸 인디언, 중국인의 피가 섞여 있다. 어머니는 태국인과 중국인, 코커서스 백인의 혼혈이다. 미국의 주류 사회를 이루는 인종의 피가 한 방울도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우즈는 골프로 성공했고 2009년 불륜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반듯한 청년, 모범적인 가장의 본보기였다. 혈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성공 스토리에 재미를 더하는 얘깃거리가 됐을 뿐이다.

러시아 월드컵 프랑스 대표 팀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스포츠 무대를 누비는 혼혈·귀화 선수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제 조건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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