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종목 첫 경기에 등판이 확실시되는 왕웨이중을 넘어야 한국의 3회 연속이자 통산 5번째 금메달 길이 열린다.ⓒ NC 다이노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라운드 첫 판에서 만나는 대만, 꼭 잡아야 3회 연속이자 통산 5번째 금메달을 딸 수 있다.

아시아야구연맹(BFA)이 최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야구 종목 조 편성을 실시해 대회조직위원회에 전달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홍콩,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등 역대 최다인 10개국이 출전한다.

BFA는 하위 랭킹인 태국과 라오스, 스리랑카 3개국이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1라운드를 펼쳐 1위 팀이 2라운드에 진출하도록 했다.

한국은 8개국이 참가하는 2라운드에서 대만과 홍콩, 인도네시아와 B조에 들었다. 한국은 26일 오후 6시 30분(현지 시간) 플레이볼 하는 1차전에서 난적 대만과 맞붙는다. 메달 색깔을 가리는 슈퍼 라운드에는 2라운드 성적을 안고 올라간다. 대만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놓고 한국과 여러 차례 경쟁했다.

한국은 2002년 부산 대회와 2010년 광저우 대회, 2014년 인천 대회 결승전에서 대만과 만나 4-3, 9-3, 6-3으로 이겨 금메달을 차지했다. 2006년 도하 대회에서 한국은 6개국이 라운드 로빈으로 겨룬 가운데 3차전에서 대만에 2-4로 졌고 이어 4차전에서 일본에 7-10으로 패해 이번 대회 전까지 가장 나쁜 성적인 동메달에 그쳤다. 대만전에서는 손민한, 일본전에서는 오승환이 패전투수였다.

야구가 아시아경기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처음으로 열린 1994년 히로시마 대회에는 임선동 손민한 진갑용 이병규 박재홍 김재걸 등 대학 선발 팀이 출전해 결승전에서 일본에 5-6으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1998년 방콕 대회에는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임창용 조인성 홍성흔 진갑용 김동주 이병규 박한이 박재홍 신명철 등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프로-아마추어 선수를 망라해 대표 팀을 꾸렸고 결승전에서 일본을 13-1 7회 콜드게임으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대만은 이번 대회에서도 사회인 야구 선수 위주로 구성된 일본보다 전력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만은 KBO 리그 왕웨이중(NC 다이노스)을 비롯해 일본 리그와 자국 리그 프로 선수 10명, 대만 야구 전통의 명문인 합작금고 소속 등 아마추어 선수 14명으로 대표 팀을 꾸렸다.

그런데 해외파는 왕웨이중과 랴오젠레이(요미우리 자이언츠) 둘뿐이다. 마이너리그 현역 선수와 일본 리그 우수 선수들이 여럿 포함된 이전 대만 대표 팀과는 비교된다. 2006년 도하 대회 금메달 멤버이자 한국전 승리투수인 궈훙치 같은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도하 대회 대만 대표 팀에는 궈훙치 외에도 창첸밍 후친룽 양다이캉 린웨이추 천친펑 등 일본 리그 또는 마이너리그 경력이 있는, 국내 팬들 귀에 꽤 익숙한 선수들이 있었다.

왕웨이중은 올 시즌 전반기에 6승 6패 평균자책점 3.68을 기록했다. 국내 리그 선수이니 투구 내용 분석은 돼 있겠지만 야구가 통계 자료만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왕웨이중에 앞서 오래전 국내 무대에서 뛴 대만 출신 투수가 있다.

1985년 삼성은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 1위를 차지해 1984년 롯데를 파트너로 골라 우승에 실패했던 악몽을 씻고 정상에 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실업 야구는 그해 김정택 감독이 이끄는 상무가 5개 단일 대회 우승을 독식하며 기세를 올렸다.

한국화장품도 연맹전(프로 야구로 치면 정규 시즌) 4년 연속 우승으로 강호의 면모를 이어 갔다. 그해 한국화장품은 연맹전에서 10승1무2패를 기록해 8승2무3패의 상무를 따돌렸는데 10승 가운데 8승(1패)을 서생명이 거뒀다.쉬성밍[徐生明]은 야구 올드 팬들 기억에 생생한 대만 출신 외국인 투수다. 1983년과 1984년 각각 삼미 슈퍼스타즈와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한 장명부와 김일융은 일본 여권을 지닌 외국인 선수였지만 재일 동포이기에 우리 핏줄이었고 KBO는 이들이 국내 리그에서 뛰는 걸 허용했다.

그러나 1984년 한국화장품에 입단한 쉬성밍은 가오슝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외국인이었다. 쉬성밍은 입단 첫해인 1984년 왼손 투수 양상문과 함께 한국화장품이 연맹전에서 17승1무3패로 우승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쉬성밍은 그때가 20대 후반으로 국내에서 프로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당시 KBO 리그에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없었기에 그는 대만으로 돌아갔다. 2003년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따돌리고 일본과 함께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차지한 대만 대표 팀 감독이 쉬성밍이다.

왕웨이중 외에 또 한 명 프로 선수인 랴오젠레이는 2016년 10월 일본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의 7순위 지명을 받았다. 201cm 120kg의 거구로 오른손 투수다. 2014년과 2015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활동했고 2015년 9월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마이너리그 2년간 성적은 2승3패 평균자책점 4.54이다. 2015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과 경기에 등판한 적이 있는데 인상적인 투구 내용은 아니었다.

대만은 1954년 출범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도 껄끄러운 상대다. 2017년 대만 대회까지 27차례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이 18차례 우승으로 최다인 가운데 한국이 7차례 대만이 2차례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2위, 3위 기록을 보면 한국이 10차례와 8차례, 대만이 13차례와 10차례다. 두 나라가 2, 3위를 놓고 승패를 주고받는 접전을 펼친 결과다.

이번 대회에 나서는 대만 대표 선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마추어 선수다. 모두가 프로 선수인 한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갖춘 아마추어는 프로와 종이 한 장 차이다.

리틀 야구로 대표되는 대만 야구는 그동안 많은 우수 선수를 배출했다. 야구 팬들이 기억하는 대만의 유명 야구 선수는 미국 프로 야구 신시내티 레즈에 스카우트 됐으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1980년대 초 일본 프로 야구 난카이 호크스에서 뛴 가오잉제와 리라이파를 시작으로 2000년대 이전에도 궈타이유안(세이부 라이온즈, 1985년~1997년), 궈위안즈(주니치 드래곤즈, 1981년~1989년) 등 꽤 많다.

2000년대 이후 미국 프로 야구에 진출한 대만 선수는 뉴욕 양키스에서 동양인 한 시즌 최다(19) 승리 기록을 세운 왕첸밍을 비롯해 천웨이인 등 10명을 훌쩍 넘긴다. 아주 우수한 선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단판 승부에서 한 경기를 잡을 수 있는 정도의 선수층을 대만은 늘 유지하고 있다.

대만은 1970년대 이후 중국에 정치, 외교적으로 밀리면서 스포츠를 내세워서라도 국제 무대에서 살아남으려 했다. 리틀 야구는 그 대표적인 수단이었고 리틀 야구를 기반으로 대만 야구 대표 팀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는 성과를 올렸다.

한국 야구가 결코 쉽지 않은 상대인 대만과 또다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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