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또 경우의 수이지만 이번에는 세계 규모 대회가 아니고 아시아 지역 대회, 게다가 종목별 선수권대회가 아닌 종합 경기 대회 일부 종목으로 급이 떨어지니 한국 축구에 대해 참담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글쓴이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은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E조 말레이시아와 2차전에서 1-2로 졌다. 바레인과 1차전에 6-0 대승을 거두며 순조롭게 출발한 한국은 이날 패배로 조 2위로 밀려났다.
1차전에서 키르기스스탄을 3-1로 꺾은 말레이시아는 20일 바레인과 마지막 경기에서 지고, 한국이 키르기스스탄과 경기에서 이겨도 승자승으로 조 1위를 지킨다.
한국은 조 1위가 무산된 가운데 조 2위로 16강 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키르기스스탄과 비기기만 해도 조 2위가 된다. 1승 1무 1패로 2무 1패가 되는 키르기스스탄을 제치고, 바레인이 말레이시아를 잡고 1승 1무 1패가 되더라도 승자승에서 바레인에 앞선다.
25개국이 참가한 이번 대회 남자 축구는 6개조 3위 가운데 상위 4위 성적을 낸 나라도 16강에 오를 수 있다. 한국은 키르기스스탄에 지더라도 바레인이 말레이시아를 이기지 못하면 조 3위로 16강에 진출한다.
그러나 키르기스스탄에 패해 1승 2패가 된 상황에서 바레인이 2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한 말레이시아를 꺾으면 조 4위로 떨어질 수 있다. 조별 예선에서 탈락할 경우의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스포츠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모른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한국에 0-2로 질 것이라고 예상한 이가 있었을까?
한국전쟁 와중에 불참한 1951년 제1회 뉴델리 대회를 빼고 한국은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종목에 빠짐없이 출전했다.
2014년 인천 대회까지 한국은 우승 4차례(1970년과 1978년 방콕 대회 1986년 서울 대회 2014년 인천 대회) 준우승 3차례(1954년 마닐라 대회 1958년 도쿄 대회 1962년 자카르타 대회) 3위 3차례(1990년 베이징 대회 2002년 부산 대회 2010년 광저우 대회) 4위 2차례(1994년 히로시마 대회 2006년 도하 대회)로 이란과 최다 우승 공동 1위에 올라 있는 한편 은메달과 동메달에서 앞서 남자 축구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한국이 4강에 들지 못한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는 창피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 축구 상황을 살펴본다.
한국 축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를 때 지역 예선 출전을 포기해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벌금 5,000달러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무렵 한국 축구는 제5회 방콕 아시안게임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최악의 경기력을 보이고 있었다. 2014년 인천 대회까지 역대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축구가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한 유일한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A조에 편성된 한국은 태국에 0-3, 우승국 버마(오늘날 미얀마)에 0-1로 져 조 꼴찌를 기록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 팀을 꾸렸다고는 하나 조별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데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게다가 그해는 6월에 열린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올라 국내 축구계에 비상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선수가 태릉선수촌을 무단으로 이탈하고 코칭 스태프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축구계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끄러웠다.
잉글랜드 월드컵 지역 예선 출전을 포기한 이유는 북한의 전력을 의식한 점도 있지만 그 무렵 국가 대표 팀 경기력이 워낙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전하는 대회마다 성적이 좋지 않은 데다 해외 원정에 나선 일부 선수들의 불미스러운 행위가 잇따르자 당시 스포츠 소관 부처인 문교부는 1967년 4월 태국에서 열릴 제9회 아시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대한축구협회의 파견 재심 요청을 받은 문교부는 출전을 허가하면서 *선수 전원은 필승의 신념으로 싸울 것과 어떠한 추문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쓸 것 *대회가 끝난 뒤 홍콩 또는 제3국에서 친선경기를 갖지 말 것 그리고 이상의 조건을 어길 때는 앞으로 어떤 국제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다.
문교부가 이런 조치까지 했지만 한국은 이 대회에서도 월남(통일 전 남베트남)과 1-1로 비긴데 이어 인도네시아에 0-3으로 졌고 홍콩을 7-3으로 눌렀지만 조 3위로 탈락했다. 1960년대 후반 한국 축구는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한국 축구는 19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버마와 공동 우승하는 등 서서히 경기력을 끌어올렸지만 테헤란 대회에서 4강에 오르지 못했는데 경기력 외 변수가 있었다.
테헤란 대회 축구 종목에는 15개 나라가 출전한 가운데 한국은 쿠웨이트, 태국과 1차 조별 예선 B조에 들었다. 한국은 첫 경기에서 태국을 1-0으로 이겼다. 태국이 1차전에서 쿠웨이트에 2-3으로 져 한국과 쿠웨이트는 2차 조별 예선 진출을 확정한 가운데 조 1, 2위를 가리는 경기를 갖게 됐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B조에 속한 북한이 첫 경기에서 중국을 2-0으로 이겼으나 2차전에서 이라크에 0-1로 지는 바람에 조 2위가 될 것이 확실해졌다. 한국이 쿠웨이트를 이기면 조 1위가 돼 2차 조별 예선에서 북한과 같은 조가 될 것이 틀림없게 됐다.
쿠웨이트와 경기가 있던 날 한국 선수단에는 북한과 경기를 피하기 위해 쿠웨이트에 지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쿠웨이트에 0-4로 크게 졌다. 이 경기 전까지 한국은 쿠웨이트와 1972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 차례 만나 1-2로 진 적이 있었지만 그 뒤 2000년대까지 역대 전적에서 8승 3무 8패를 기록할 정도로 팽팽하게 맞섰다. 0-4로 대패할 전력 차가 아니었다. 한국 축구는 그 무렵 1971년 2월 남미 원정에서 페루에 0-4로 진 적이 있지만 아시아권 나라에는 단 한번도 4골 차로 진 일이 없었다.
2차 조별 예선에서 북한과 만나지 않은 한국은 A조 첫 경기에서 이라크와 1-1로 비기고 두 번째 경기에서는 이란에 0-2로 지면서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한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말레이시아를 이기면 3위 결정전에서 북한과 만나게 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에 2-3으로 져 한국과 북한의 경기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이란에 이어 A조 2위가 된 말레이시아는 B조 2위 북한을 2-1로 물리치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란은 그때까지만 해도 아시아 지역에서 스포츠 활동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1-0으로 누르고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아시안게임 축구 종목에서 처음 우승했다.
기우에 불과하겠지만 한국이 키르기스탄에 질 수도 있는 종목이 축구다. 한순간의 방심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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