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마라톤 경기 장면.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한국 기자인가?" "그런데, 무슨 일로." "(승용차) 홀짝제가 제대로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나." "확신은 못하겠지만 (서울) 시민들의 협조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핀란드 기자는 따져 묻듯 글쓴이에게 질문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을 며칠 앞두고, 오늘날 코엑스 자리에 있던 메인프레스센터에서 벌어진 일이다. 핀란드 기자는 서울의 대기 오염 수준이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고, 특히 마라톤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핀란드 기자의 공격적인 질문은 모두 허사가 됐다. 승용차 홀짝제는 훌륭하게 이뤄졌고 서울 올림픽 기간 서울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대회 마지막 날인 10월 2일 오후 2시 30분 출발 총성과 함께 70개국 118명의 건각이 한강을 끼고 도는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발전하는 한국, 그리고 서울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한강변을 달리는 코스만한 게 없었다.

이 코스에서 98명의 선수가 완주했고 겔린도 보르딘(이탈리아)이 2시간10분32초로 금메달, 더글러스 와키후리(케냐)가 2시간10분47초로 은메달, 후세인 아메드 살라(지부티)가 2시간10분59초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같은 코스에서 열린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에서 2시간8분21초의 대회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던 일본의 나카야마 다케유키는 6초 차이로 메달 놓쳤다.

순위 싸움을 하느라 2시간10분대 안쪽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레이스 후반 한강의 맞바람도 기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성화 점화자인 김원탁이 2시간15분44초로 15위, 유재성이 2시간20분11초로 31위를 했다.

이때로부터 딱 10년 뒤인 1998년 12월 20일, 제13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마지막 날 이봉주의 역주를 기대하며 TV 앞에 모인 스포츠 팬들은 순간적으로 눈을 의심했다. 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TV 화면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방콕의 교통 체증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나 있다. 그래서 대회를 앞두고 교통 문제와 함께 대기 오염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날 TV 화면에 비친 거무스름한 방콕의 하늘은 우려 이상이었다. 이런 좋지 않은 조건에서도 이봉주는 역주를 거듭한 끝에 2시간12분32초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방콕과 자카르타는 교통 체증이나 대기 오염 등이 오십보백보다.

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 주 경기장을 출발해 시내를 돈 뒤 돌아오는 42.195㎞ 풀코스에서 벌어진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마라톤부에서 일본의 이노우에 히로토는 2시간18분22초로 골인해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노우에와 거의 동시에 들어온 엘 하산 엘아바시(바레인)가 은메달을 차지했고 중국의 둬부제는 2시간18분48초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때 세계적인 마라톤 강국이었던 일본은 1986년 서울 대회 나카야마 다케유키 이후 32년 만에 아시안게임 마라톤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 레이스에는 12개국 21명의 마라토너가 출전한 가운데 15명의 선수가 완주했다. 그런데 기록이 좋지 않았다. 마라톤 기록의 산실로 불리는 베를린 로테르담 런던 대회 같은 전문 대회가 아닌, 올림픽 아시아게임 같은 대회에서는 기록보다는 순위 경쟁에 치중하는 편이고 기후 조건도 썩 좋지 않았지만.

나카야마 다케유키가 갖고 있는 대회 최고 기록 2시간8분21초에는 10분1초나 뒤졌다. 고속화한 요즘 마라톤 스피드를 기준해 거리로 따지면 3.5km 정도 차이다. 앞서 달리는 선수가 보이지 않아 레이스를 포기할 수준의 거리 차다. 직전 대회인 2014년 인천 대회에서 하산 마붑(바레인)이 기록한 2시간12분38초에도 5분 넘게 밀렸다.

이번 대회 은메달리스트 엘 하산 엘이바시와 인천 대회 금메달리스트 하산 마붑은 각각 모로코와 케냐 출신 귀화 선수다. 이제 막 시작한 이번 대회 육상경기에서도 바레인 카타르 등 서아시아 나라 아프리카 귀화 선수들의 돌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대회에 나선 한국의 김재훈과 신광식은 12위와 15위를 마크했다. 어려운 코스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특히 김재훈은 다리 통증까지 있었지만 기록은 저조했다. 김재훈은 2시간36분22초, 신광식은 2시간56분16초를 기록했다.

엘리트 선수가 세운 것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처지는 기록이다. 김재훈의 기록은 56년 전인 1962년 같은 곳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자 나가타 마사유키(일본)의 2시간34분54초에도 뒤진다. 그 무렵 마라톤 세계 최고 기록은 1960년 로마 올림픽과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연속 우승한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가 세운 2시간15분16초, 2시간12분11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 나서는 달리기 애호가들은 ‘서브 3’를 목표로 한다. ‘서브 3’와 관련한 기사를 소개한다.

제임스 최 주한 호주 대사는 지난해 11월 5일 열린 중앙서울마라톤대회에서 42.195㎞ 풀코스를 2시간58분39초로 완주했다. 이 대회에 앞서 10월 22일 대전에서 열린 충청마라톤대회 풀코스에서는 이준재 씨가 2시간42분57초, 이승규 씨가 2시간44분26초, 함찬일 씨가 2시간45분41초로 1~3위를 기록했다.

이들 모두 마라톤 애호가들이 꿈꾸는 3시간 이내 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지영준(2시간11분11초) 우승 이후 한국 마라톤은 계속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한국 마라톤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인도 북한 중국 스리랑카 키르기스스탄 대만 카자흐스탄 이란에 뒤진 131위(2시간36분21초)와 138위(2시간42분42초)에 그친데 이어 이번 대회에서는 몽골 중국 북한 태국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 뒤졌다.

한국 마라톤은 정녕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대한육상경기연맹과 마라톤 지도자들에게 묻는다. 1980년대 중반 이후 2시간10분 벽을 깨기 위해 혼신을 다해 노력했던 고 정봉수 감독과 고 이동찬 코오롱 그룹 회장도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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