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절하게 택시를 잡아준 게마군.
[스포티비뉴스=자카르타(인도네시아), 유현태 기자] 벌써 인도네시아에 머문지 19일째. 고맙다는 뜻의 '떼리마까시(Terima kasih)'를 연방 말하다보니, 그때 돌아오는 '사마사마(sama-sama)'가 '천만에요'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될 정도의 시간이다.

대회 시작부터 운영이 허술하다는 걸 알았다. 우리가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것은 8일. 개막식은 지난 18일에 열렸으니 10일이나 먼저 인도네시아에 도착했다.

남자 축구 종목 취재를 위해서였다. 애초에 한국을 비롯해 바레인, 말레이시아, 키르기스스탄이 E조에 편성됐다가, 항공권 발권 당시 E조는 5개 팀으로 편성됐다. 팔레스타인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빼고 조 추첨을 하는 바람에 2개 조가 5개 팀으로 꾸려지게 됐던 것. 첫 경기는 12일이었다. 일찍 인도네시아에 들어오려고 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라크가 불참을 선언하면서 한국과 같은 조였던 UAE가 C조로 떠났다. 다시 4개 조로 꾸려진 한국 대표 팀은 여유가 생겨 인도네시아 도착을 11일로 조정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운영상 실수는 곳곳에 있다. 사격 황제 진종오도 피해자다. 시사 마지막발 결과가 스크린에 표시되지 않았지만 심판은 단 한 발만 다시 사격하게 한 뒤 경기를 진행했다. 보통 무제한 시사를 하는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심리 상태가 중요한 사격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메달 색을 가르는 결선에서도 미숙한 운영이 나온다. 꼭 금메달을 따지 못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준비한 경기력을 펼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사소하게는 경기장이 비었는데 현장에서 입장권을 구매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우리는 개회식 준비를 별다른 제재 없이 봤고,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직접 경기장 잔디를 밟아보기도 했다. 축구에서는 당연하게 경기 전날 경기장에서 진행되는 '공식 훈련'도 '공식 기자 회견'은 없었다.

이 미숙한 '체계'에도 대회가 운영되는 것은 '사람' 때문이다. 취재 현장을 돌 때마다 느끼는 사람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문제가 발생할 때 찾는 사람은 빨간 티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다. 대체로 경기장 주변에 무리를 지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도움을 요청하면 4,5명이 다함께 도움을 준다. 솔직히 빠르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일을 마칠 때까지 옆을 지킨다.

대표적인 예는 택시 잡기다. 영어로 소통할 수 없는 택시 기사들에게 위치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자원봉사자들이 기꺼이 택시 기사와 연락을 취해준다. 그리고 택시 기사와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 데려가 타는 것까지 확인하고 배웅한다. 

▲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한 아드리안(오른쪽)

반둥에서 만났던 자원봉사자 게마 알리프 드위 타마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왜 우릴 이렇게까지 항상 도와줘요?" 게마는 "아시안게임은 진짜 큰 대회에요. 우리는 이번 대회가 성공적인 대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평소 보지 못하는 외국인 취재진이나 선수들을 돕는 것은 또한 영광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답변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친절이 부담스럽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 대회를 잘 운영하기 위해 쏟는 마음이라고 헤아리게 됐다.

깊은 인상을 남긴 자원봉사자 한 명을 더 소개하고 싶다. 아드리안 레나르디는 반둥에서 처음 만난 '친구'다. 지난 14일 아르카마닉스타디움에서 대표 팀이 훈련하던 날 처음 만났다. 손흥민을 보러온 토트넘 팬들이 'Nice one, Sonny'라는 응원가를 부르던 그날이다. 아드리안은 우리를 택시에 친절하게 태워보냈다. 인연은 계속됐는데 18일 GBLA 스타디움에서 훈련할 때 또 만났다. 우리를 보며 반갑게 인사하는 아드리안은 "말레이시아에 패배한 것을 봤다. 잘할 거라고 믿는다"며 우리를 위로했다. 아드리안은 20일 키르기스스탄과 치른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 우리를 찾아 미디어센터에 나타났다. 손에는 작은 기념품을 들고. 한국이 반둥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자카르타로 이동하기 때문에, 우리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손흥민의 인터뷰를 정리하느라 바빴지만 "정말 고맙다"는 말과 함께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작별의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실 이번 대회는 인도네시아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런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를 여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자카르타 시내에서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하는 교민은 "이번 아시안게임은 체계가 아니라 사람이 운영하는 대회"라고 평가했다. 아직 노하우도, 체계를 만드는 것도 부족하지만 의욕만큼은 높이 사야한다는 것. 대한체육회 관계자도 "대회 운영이 엉성하지만, 경제 규모 등을 고려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리론 대회의 문제를 알고 있으나, 가슴으론 마냥 인도네시아가 나쁘다고 말은 하지 못하겠다. 사실 모든 것이 그런지 아니한가.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직접 해봐야 문제를 찾고 또 발전할 수 있다. 미숙하더라도 자꾸 부딪혀봐야 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내가 반찬을 흘리더라도 젓가락 쓰는 것을 격려해주셨다. 지금은 콩알도 집을 만큼 젓가락질에 능숙한 어른이 됐다. 대회 운영에 답답하지만, 한 발 물러서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의욕을 보며 응원하게 되는 대회다.

부족한 점도 많은 대회지만 그래도 더 큰 문제 없이 대회가 잘 막을 내리길 기도한다. 오늘(26일)은 드디어 우즈베키스탄전에 앞서 진행될 남자 축구 대표 팀의 훈련에 다녀올 참이다. 장소는 버카시 패트리어트 스타디움이다. 대회가 절반 정도 지나 8강에 들어오니 공식 훈련이 생겼다. 이제 대회가 막을 내릴 때까지 1주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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