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커 이상혁 ⓒ한국e스포츠협회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김건일 기자] 지난해 롤드컵 결승. 삼성이 SKT T1을 꺾고 우승했다. SKT T1 '페이커'는 한참 동안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지 못하고 울었다. 3번째 경기에서 저지른 실수 때문이었을까.

지난 3일 게임 방송사 OGN이 공개한 다큐멘터리에서 페이커는 심리 상담사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눈물을 흘렸다. 게임할 때 누구보다 냉철한 그였기에 두 번의 눈물은 이례적이었다.

페이커는 게임할 때 동물적인 감각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을 제거하고 유유히 빠져나오는 장면을 수 없이 보여 주는 게이머다. 그가 보여 주는 '슈퍼 플레이'에 상대는 벌벌 떨고, 지켜보는 이들은 열광한다.

SKT T1 미드라이너 이상혁. 이름보단 'Faker'라는 아이디로 더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 17살에 데뷔한 페이커는 SK텔레콤 T1에 입단하고 국내 리그 '롤챔스'를 시작으로 '롤드컵', 'MSI' 등 세계 대회를 휩쓸었다.

지난해 5월까지 데뷔하고 35개 대회를 거치며 상금 104만 7606달러(약 11억7천만 원)을 벌어 한국 롤 선수 중 최초로 누적 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했다. 2013년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최우수 선수에 올랐고 2015년과 2016년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을 휩쓸었다. 이룰 건 다 이뤘다.

하지만 전성기가 영원히 가지 않는다. 페이커는 올해 23세다. 프로게이머를 한 지 6년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프로게이머들은 24세가 넘어가면 반응 속도가 떨어지고 이것이 기량 하락으로 이어진다. 번뜩이는 감각은 줄어들었고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허무하게 죽는 장면이 많아졌다. 부동의 주전, SK의 상징이었던 그도 벤치를 지키는 날이 많아졌다. 한때 세계무대를 제패했던 SKT T1도 리그에서 하위권에 처져 있다.

게다가 SKT T1은 그동안 사실상 페이커 '원맨팀'이었다. 지난 6년 동안 페이커는 최고를 지켜야 한다는 기대와 압박을 홀로 짊어졌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칠 수밖에 없었다. 입대설, 은퇴설이 페이커를 맴돌았다. 어쩌면 보여 줘야 한다는 기대와 압박이 그의 눈물샘을 자극했을 수 있다.

▲ 리그 오브 레전드 국가 대표 팀. 네 개 팀 선수들이 모여 한 팀이 됐다. ⓒ한국e스포츠협회

그러나 페이커는 여전히 슈퍼스타다. 페이커가 경기할 때면 현장에 수많은 인파가 모이고 심지어 중국 일본에서 팬들이 비행기를 타고 온다. 페이커의 개인 방송엔 전 세계 수만 명의 팬이 운집한다.

e스포츠가 처음으로 국제 무대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단연 중심이다. 한국 선수단을 대표해 로이터, AP 등 세계적인 통신사가 페이커를 찾아 인터뷰했다.

비록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롤은 시범 종목이기 때문에 금메달을 따더라도 한국 메달로 집계가 되지 않고, 다른 선수들이 받는 병역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페이커는 10대부터 도전을 해왔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다. 즐긴다. "금메달과 리그에서 경쟁했던 선수들과 친해지는 것"이라고 목표를 정했다. 데뷔하고 줄곧 썼던 SKT 페이커가 아니라 KOR 페이커라는 아이디도 색다르다.

경기력도 살아나고 있다. 페이커는 한국이 치른 8경기에 모두 출전해 중심을 단단히 지켰다. 중국과 준결승전에선 총 대미지가 출전 선수 10명을 통틀어 1위였다. 전성기 시절 기민한 움직임이 살아났다. '스코어' '기인' 등 처음으로 손발을 맞추는 선수들과 합도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여유 있는 웃음도 이제 돌아왔다.

29일 페이커는 중국과 역사적인 결승에 나선다. 페이커 스스로나 한국 e스포츠 역사, 그리고 아시안게임 한 페이지에 남을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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