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지수(오른쪽)와 로숙영(가운데)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여자 농구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남과 북이 서로의 전력을 잘 보완하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례를 증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아시안게임 특별취재단 신명철 기자]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이 폐막을 이틀 앞둔 31일 현재, 다른 국제 종합 경기 대회와 마찬가지로 단체 구기 종목에 스포츠 팬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는 대표 선수 선발 과정에서부터 말이 많았던 야구와 남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경기력 외 문제까지 이어지면서 이상 과열 현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가 됐다.

두 종목을 빼고 실질적으로 경기력과 관련해 단연 화제가 되는 종목은 남북 단일팀인 여자 농구일 것이다.

박지수가 WNBA(미국 여자 프로 농구)에서 뛰고 있는 동안 꾸려진 여자 농구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지난 17일 열린 조별 예선 대만과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85-87로 졌다. 코리아는 로숙영(북측)이 35득점, 김한별이 9리바운드, 임영희(이상 남측)가 10어시스트 등 힘을 모아 분전했지만 2%가 모자란 느낌이었다.

그런데 코리아는 30일 준결승에서 다시 만난 대만과 경기에서 완전히 다른 경기 내용을 보였다. 89-66 스코어는 박지수의 합류가 빚어낸 결과였다. 센터 박지수와 파워 포워드 로숙영 콤비는 코리아에 최상의 경기력을 안겼다.

박지수가 골 밑을 지키고 로숙영이 가운데 왼쪽을 맡은 코리아의 1-3-1 지역 방어를 대만은 뚫을 방책이 없었다. 패스가 인사이드로 들어가지 못하고 외곽에서 돌다 보니 점수 차는 계속 벌어졌다.

이 정도는 어지간한 농구 팬이라면 아는 내용이기에 여자 농구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했다. 빠이롯드[1990년대 표기]~대웅제약~삼성생명~국민은행~우리은행 감독을 역임한 정태균 전 SBS 해설 위원은 “180cm대 키를 가진 파워포워드로 로숙영 수준의 득점력을 갖춘 선수를 WKBL(한국 여자 프로 농구)에서는 찾기 힘들다. 특히 페인트 존에서 득점력은 발군이다. ‘기브 앤드 고’ 플레이 등 남측 선수들과 팀워크는 짧은 훈련 기간이었는데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기초가 잘 다져진 선수다”라고 설명했다.

정태균 전 감독 스스로 인천 송도고 시절 기초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고 전규삼 감독 밑에서 농구를 배운 지도자이기에 로숙영에 대한 평가는 신뢰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정태균 전 감독은 “(로숙영은) 수비력에서도 매우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1일 열리는 중국과 결승전 결과와 관계없이 로숙영은 한국 농구 팬들에게 A+ 평점을 받고 있다. ‘로브론’이라는 별명과 함께 WKBL에서 뛰면 억대 연봉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

30년여 전에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신세대 팬을 비롯해 축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19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FIFA(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 전신)에서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8강에 오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6월에 열린 이 대회 직전 탁구 단일팀 코리아가 지바(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게임 스코어 3-2로 물리치고 우승했기에 청소년 축구 단일팀 8강 소식 기쁨이 더욱 컸다.

글쓴이는 청소년 축구 단일팀 구성 과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판문점에 갔고 그때마다 감회가 새로웠다.

대회를 마무리할 때 장면부터 소개한다.

브라질과 8강전에서 수비 라인을 내리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친 끝에 1-5로 져 4강에 오르지 못한 코리아 남북 선수들은 포르투갈에서 헤어지지 않고 평양으로 함께 갔다. 탁구 단일팀 남북 선수들은 대회 장소인 지바에서 헤어져 각기 서울과 평양으로 향했다.

평양에서 환영 행사를 마친 남측 선수들은 판문점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이때 글쓴이는 이태홍 이임생 강철 박철 서동원 조진호(작고) 등 귀환하는 한국 선수들을 취재하기 위해 판문점으로 갔다. 탁구 단일팀 취재 때문에, 그 이전에는 군 생활을 JSA  인근에서 한 인연으로 낯설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날은 아직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글쓴이는 흔히 T3로 불리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건물 북쪽 문 앞에서 선수들을 기다렸다. 일시적으로 월경(越境)한 것이다. 판문점 북쪽 통일각 옆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어 한국 선수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다가오는 20살 청년들 눈이 한결같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잠시 뒤 판문점 남쪽 평화의 집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제는 40대 후반의 중년 신사가 된 이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단일팀 구성 합의 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치른 평가전과 합숙 훈련 그리고 대회 출전 등 3개월 여 일정을 마무리하고 통일각까지 마중 나온 북측 선수들과 헤어졌다. “서로 여자 친구 사진도 보여 주고, 꼭 다시 만나자고 했습니다.”

포르투갈로 가기 전 서울에서 치른 평가전에서 코리아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 운동장에서 프로 축구 팀 유공과 맞붙었다. 외국인 선수가 포함된 유공과는 체격 조건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경기 내내 밀리는 가운데 스탠드를 가득 채운 관중들은 남북한 청소년 선수들을 목청껏 응원했다.

서울 훈련 때 코리아 팀 환영 행사가 서울 시내 S호텔에서 열렸다. 북측 윤철은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기량으로 행사장에서 단연 인기였다. 윤철은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유공과 평가전 때도 코리아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때 김형직사범대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윤철에게 글쓴이가 넌지시 물었다. “남쪽 직업 축구단에서 뛰어 볼 생각 없습니까.” 시원한 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불러만 주시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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