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기말고사, 고등학교 1학년생인 이예지(16·제이킥)는 로드FC 데뷔전만큼 중대한 '일전(?)'을 과감히 포기했다.

경기를 앞둔 지난 23일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예지는 "저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예요. 시험기간 마지막 날(지난 21일) 수학시험을 봤는데요. 채점도 안 했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과목 시험은 잘 봤는가' 물어도, 대답 없이 '히히히' 웃기만 했다.

이예지는 기말고사 성적에 마음을 비운 대신, 지난 25일 '로드FC 24 일본대회(ROAD FC 024 In JAPAN)' 시나시 사토코(38·일본) 전에 집중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매주 서울로 올라와 압구정짐에서 특훈을 받았다.

벼락치기였다. 박지혜의 부상으로 대회 한 달 전 긴급 투입돼 최소한의 기술과 기본 전략만 익혔다. 시나시의 그라운드 기술을 대비해 탈출 훈련을 반복해왔다.

지난해 8월 이윤준의 스승이자 형부인 전찬준 관장의 체육관에 갔다가 운명처럼 이끌려 처음 종합격투기를 수련하기 시작한 이예지는 킥복싱 전적 1승만 가지고 있었다. 시나시는 32승 2무 2패의 정상급 파이터. 이예지가 만 4살 때부터 종합격투기 프로 전적을 쌓아온 베테랑이다. 나이도 22살 차이. 명백한 미스매치였다.

이예지도 "그라운드로 가면 상대가 안 되니까 최대한 타격전에서 최선을 다할래요"라며 절대열세를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근성이 빛났다. 25번의 서브미션 승리가 있는 시나시의 연속된 암바, 힐훅 등 기술을 빠져나오고 오히려 레슬링 태클을 거는 등 공격 적극성으로 눈길을 모았다. 2라운드 종료 7초를 남기고 파운딩 TKO패 당했지만 데뷔전치곤 박수를 받을 만한 경기내용이었다.

이예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장거리 육상선수로 활동했다. 체력과 근성은 트랙을 수백 바퀴 돌면서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됐다. 유도를 배워 몇 차례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한 운동능력이 뛰어난 유망주. 수학은 포기했어도, 경기는 끝내 포기하지 않는 악바리였다.

얼굴이 퉁퉁 부은 채 대회 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예지는 악바리에서 여고생로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토끼눈이 돼 소감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아빠뻘의 대선배 최무배가 옆자리에서 응원하자 그때야 말을 이었다.

"경기 준비한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5분 2라운드까지 뛸 줄 몰랐어요. (겨우)버틴 거라서…. 훈련할 때 많이 도와주신 오빠, 언니께 감사합니다."

이예지는 경기 다음 날 26일 발랄한 소녀의 모습으로 "하라주쿠에서 보낸 자유시간에, 유명하다는 크레페를 먹었어요.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 해외를 나오게 됐는데 기분이 좋습니다"고 말했다.

이예지는 쏟아지는 관심이 어리둥절하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SNS를 보면 사람들이 많이 친구 신청을 해오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여전히 해맑게 웃는다.

"다음 경기는 더 준비해서 나오고 싶어요"라는 이예지, 가야할 길이 먼 나이니 급할 건 없다. 이제 운동능력·체력·근성에 기술을 하나둘 입혀나갈 시간이다.

[사진] 이예지 ⓒ 정성욱 랭크5 기자 mr.sungc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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