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너 맥그리거는 '옷'을 도구로 이미지 포지셔닝을 꾸준히 시도하는 파이터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셰익스피어는 옷을 중히 여겼다. "옷은 한 젊은이의 재능을 테두리 짓는 도구"라고 했다.

인간이 보이는 자극에 생각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걸 대문호는 일찍이 꿰뚫어봤다.

시각은 그만큼 자극적이다. 선택과 판단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 패션 스타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3초도 안 돼 우리는 처음 보는 인물의 사회성과 능력, 직업에서 성공 정도를 감지한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옷 입는 방식은 그 사람을 '이미'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 맥그리거식 말걸기…모두가 설득 당했다

맥그리거는 '옷'으로 말을 건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맥그리거 말에 꼬마 팬부터 남유럽 의류 브랜드 종사자까지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설득 당했기 때문이다.

오마주로 시작했다. 더블린 촌놈은 격투 스포츠 전설이 입었던 옷을 똑같이 따라입었다. 은연중에, 전설과 자기를 나란히 놓았다.

▲ 콤플렉스 유케이(Complex UK) 트위터 캡처
시선을 확 끌었다. 2016년 11월 맥그리거는 하얀 밍크 코트와 붉은 터틀넥을 매치시켰다. 에디 알바레즈와 라이트급 타이틀전을 앞두고 열린 프레스 콘퍼런스에서였다.

팬들은 환호했다. 리바이스 청바지와 그레이 티만 착용하는 여느 격투가와 달랐기 때문이다.

철저히 계산된 연출이었다. 맥그리거는 '스모킹 조(Smokin Joe)' 조 프레이저(1944~2011)를 완벽히 모방했다. 

프레이저는 37전 32승 27KO를 기록한 20세기 최고 복서 가운데 한 명이다. 스트레이트가 총알처럼 빨라 주먹을 뻗은 그의 손에서 '연기가 나는 거 아니냐'는 캐스터 멘트로 스모킹이란 애칭을 얻었다. 올드 팬들에겐 1971년 무하마드 알리와 펼친 세기의 대결로 각인돼 있다.

미디어 잡지 '콤플렉스 유케이(Complex UK)'는 "맥그리거 의상은 복싱 레전드 프레이저를 향한 트리뷰트(헌사) 성격이 짙다. 자신을 프레이저와 동급에 놓음으로써 격을 한 단계 끌어올린 창의적 발상"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스카이 뉴스'도 말을 보탰다. 이 매체는 "그간 맥그리거는 공식석상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정장, 거친 입담으로 반발심을 일으켰다. 인기만큼 안티 세(勢)도 강했다. 그러나 이번 사례(프레이저 의상)에서 보듯, 그는 반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꿈쩍도 안했다. 아이덴티티를 잃기는커녕 엑셀레이터를 밟고 직진했다. 자신의 패션 선택을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보란듯이 옷으로 맞받아쳤다"고 평가했다.

파이터로서 성적이 훌륭했다. 2013년 4월 UFC에 데뷔한 뒤 7연승을 달렸다. 판정승은 단 한 번. 모두 (T)KO로 상대를 눕혔다. 실력이 뒷받침되니 맥그리거의 입(口)과 옷, 행동거지가 특별한 위상을 얻었다. 경기장 안팎 요소가 조응하기 시작했다. 주먹과 패션은 강한 시너지를 냈다.

떠벌이에서 뱉은 말은 증명하는 실력가로, 탁월한 격투가에서 MMA 아이콘으로 성장 곡선을 그렸다. 맥그리거 이미지는 해체와 재조립을 거듭하며 연일 새롭게 구축됐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격투기 선수가 됐다. 아무리 파이트를 잘해도 얻지 못할 수준의 인지도였다.

콤플렉스 유케이는 "과거 TV 토크 쇼에 나와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붙고 싶다'고 떠들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결과적으로 보면) 맥그리거는 그때 또 하나의 플랜이 가동됐음을 선언한 셈이었다. 이후 메이웨더가 즐겨 입는 붉은 가운을 따라 착용하면서 (스스로) 분위기를 만들었다. 똑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은 뒤 SNS에 퍼뜨리는 일, 이게 맥그리거가 패션을 활용하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 코너 맥그리거(왼쪽)와 캐나다 모델 조시 마리오존 ⓐ 인터넷 화면 캡처
문신 역시 말 걸기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맥그리거 가슴에 새긴 올드스쿨 고릴라 타투는 캐나다 출신 모델 조시 마리오 존을 따라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렇듯 격투 외적으로도 끊임없이 이슈를 생산하는 파이터가 맥그리거다. 그는 대중이 질리지 않도록 꾸준히 새 이야기를 덧입힐 줄 안다.

콤플렉스 유케이는 "노선이 분명하다. 맥그리거는 프레이저, 메이웨더,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 등 (불법 여부를 떠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전설적인 존재를 모방하면서 독특한 포지션을 점유했다. 유수의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그와 협업하기 위해 컨택을 시도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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