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항서 감독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여의도, 김도곤 기자, 영상 송승민 PD] "처음에는 베트남행 망설였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팀 감독이 금의환향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4강으로 이끈 박항서 감독은 지난 6일 귀국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등 잛은 휴식을 취한 박항서 감독은 17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베트남을 열광시킨 포용의 리더, 박항서 감독을 만난다'를 제목으로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10월 베트남에 부임했다. 1년도 되지 않아 2018년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결승 진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두 대회 모두 베트남 축구 역사에 처음 남긴 기록이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감독 부임 과정과 지난 대회들, 또 앞으로 있는 대회 준비 등을 허심탄회하게 밝혔다.

◆ 베트남? 망설였는데 아내의 적극 권유로 승낙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지도자는 박항서 감독이 처음이다. 전례가 없던 만큼 박항서 감독은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망설였다. 하지만 아내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 당시 박항서 감독은 창원시청 감독직을 그만 둔 후 야인으로 있었다. 이때 베트남의 제의가 들어왔다.

박항서 감독은 "프로팀이면 쉽게 승낙했을텐데 대표팀이라 부담이 커 망설였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을 들었다. 박항서 감독은 "집에서 빈둥빈둥 놀고 있으니까 가정의 재정을 위해 가라고 했다"며 웃어보였다.

이어 "내 나이면 은퇴할 나이다. 일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한다. 중국 쪽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드 문제가 터졌고 마침 베트남에서 제의가 왔다.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해 승낙했다"고 밝혔다.

◆ 한국과 맞대결 "피하고 싶지 않았다"

박항서 감독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에서 한국과 만났다. 16강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덜미를 잡히면서 조 2위, 베트남이 최종전에서 일본을 꺾고 조 1위가 되면서 16강이 아닌 4강에서 만났다. 비록 1-3으로 졌지만 베트남의 아시안게임 축구 역사상 첫 4강 진출이었다.

박항서 감독과 함께 베트남에 있는 이영진 수석코치는 조별리그 때 '한국을 피하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했다.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말레이아에 져 조 2위가 되면서 4강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자칫 한국과 베트남 중 한 팀이 조기에 탈락할 수 있었으나 4강에서 만나 한국은 우승, 베트남은 아시안게임 축구 역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뤘다.

박항서 감독은 "'한국을 만나든 다른 팀을 만나든 정면돌파하자, 피하지 말자'고 했다. 다행이 한국이 말레이시아에 져 16강에 만나지 않았다"며 웃어보였다.

◆ 베트남의 인기왕 박항서

1년도 되지 않아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기에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박항서 감독은 "조금 있는 정도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길거리에 나가면 사진 요청이 쇄도하고 식당에 가면 음식값을 받지 않을 정도다.

박항서 감독은 "그래도 평범하게 지내려고 한다. 주위 사람들은 모자나 마스크를 써서 가리고 다니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런 행동 자체가 스트레스다. 팬들이 나한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겨우 사진 찍자는 정도인데 괜찮다. 식당에 가면 밥값, 택시를 타면 택시비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매번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공짜로 밥줄테니 오라는 식당은 있다"며 활짝 웃었다.

▲ 박항서 감독 ⓒ 연합뉴스
◆ "쌀국수 먹지 말라고 한 적 없다."

이날 박항서 감독은 '쌀국수 금지'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부임 후 선수들에게 쌀국수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쌀국수를 못먹게 한 것이 아니라 균형있는 식단을 제공했다.

박항서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의 인바디를 측정했다. 3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밸런스, 상체 근력 취약,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체지방이 너무 없는 문제였다"고 했다.

이에 상체 근력은 오전, 오후 훈련이 끝난 후 30분 추가 훈련으로 보충했고, 체지방 문제는 식단으로 해결했다. 쌀국수를 먹긴 먹지만 체지방 보충을 위해 다른 음식을 보충하자고 주문했다. 주요 식품은 우유다. 우유를 통해 단백질과 지방을 동시에 보충했다.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았다. 베트남에서 우유는 딱히 인기 있는 식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우유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박항서 감독의 설명. 하지만 우유와 함께 두부, 생선 등을 같이 섭취시키면서 문제를 해결한 박항서 감독이다.

◆ 내가 지갑을 안 연다고?

아시안게임을 통해 해설 데뷔를 한 최용수 전 감독은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인…'이라는 멘트로 수많은 선배들을 벌벌 떨게 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인…'이라고 운을 뗀 후 존경이라는 단어에 상반되는 농담을 했다.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인 최강희 전북 감독의 늘 고정된 헤어스타일,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인 황선홍 전 감독의 볼리비아전을 언급해 시청자들을 웃게 했다. 박항서 감독도 예외가 아니었다. 최용수 해설위원은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인 박항서 감독님은'이라고 운을 뗀 후 '감독님의 지갑을 구경해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박항서 감독 역시 이 언급을 알고 있었다. 이에 쉬는 시간에 짬을 내 최용수 해설위원을 불러 밥도 사주고 술도 사줬다고 한다.

◆ 박항서 감독과 영원히 뗄 수 없는 히딩크

박항서 감독과 거스 히딩크 감독은 깊은 인연이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끌었다. 지난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4강으로 박항서 감독은 200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베트남에서 4강 신화를 맛봤다.

히딩크 감독은 중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에 부임했다. 박항서 감독은 성인 대표팀을 포함해 연령별 대표도 맡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대회에서 만날 수 있다.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님은 나에게 지도자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항상 감사드린다.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다"는 마음을 건넸다.

하지만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질 수 없다는 승부사의 면모를 보였다.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더라도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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