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구와 축구, 아이스하키, 농구, 카누 등에 이어 남북 단일팀을 꾸린 유도가 2018년 세계선수권대회 혼성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대한유도회 제공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 세계유도선수권대회는 남자가 1956년 제1회 대회(도쿄), 여자가 1980년 제1회 대회(뉴욕)를 연 이후 따로 열리다가 1987년 에센(당시 서독) 대회 때 남녀부가 통합됐다.

통합 첫 대회에 출전한 여자 선수 가운데에는 뒷날 66kg급(체급 조정 후 70kg급) 세계선수권자[1993년 해밀턴(캐나다) 대회, 1995년 지바(일본) 대회)이자 올림픽 챔피언[1996년 애틀랜타(미국)]이 되는 서울체육중학교 3학년 조민선(48kg급)이 있었다. 조민선은 이 대회에서 한국 여자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인 16강을 기록했다.

남자 선수 가운데에는 60kg급 김재엽이 결승전에서 일본의 호소가와 신지를 통쾌한 허벅다리걸기 한판으로 누르고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결승전에서 당한 누르기 한판 패배를 설욕했다.

대회가 열리는 동안 경기장인 그루가할레 관중석에서는 남북 선수들이 나란히 앉아 경기를 치르는 남북 선수들을 응원하는가 하면 한국 선수단이 마련한 김밥을 나눠 먹으며 우의를 다졌다. 북측 이 아무개 선수가 오후 경기 시작 시간을 잘못 알아 실격했을 때는 남측 선수와 임원이 자신들 일인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71kg급 이창수는 다음 대회인 1989년 베오그라드(당시 유고슬라비아) 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했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글쓴이와 다시 만났다. 이 대회에서는 한국의 정훈에게 져 은메달을 차지한 이창수는 1991년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뒤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서울에 온 이창수는 장은경(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63kg급 은, 작고) 하형주(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95kg급 금) 등이 주축인 '柔脈會(유맥회)'에 가입하고 국내 대회에 출전하는 등 남녘 유도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한국 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에센 대회 북한의 유일한 메달리스트인 박정철(86kg급 은)은 3년 뒤인 1990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다. 대회 기간 한국의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첫 금메달리스트인 박종학[71kg급, 1981년 마스트리히트(네덜란드) 대회]과 교류하며 성도 같고 외모도 비슷해 의형제를 맺기도 했다.

박정철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획식에 한국의 정은순(농구)과 공동 기수로 나서 한국 스포츠 팬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2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는 1945년 남북 분단 이후 한국과 북한 선수단이 대규모로 만난 대회로, 대회 기간 ‘남북통일축구경기’ 개최가 성사된 대회로 남북 교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도 남북 유도인은 경기인만이 함께할 수 있는 정을 나눴다.

대회가 중반을 넘어갈 무렵 한국 기자단 숙소 근처에 있는, 북한이 운영하는 류경식당에서 열린 남북한 유도 관계자 모임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김병주(78kg급 금) 정훈(71kg급 금) 등 한국 선수들과 북한 유도 중(重)량급 간판 스타 황재길(95kg 이상급 금)과 뒷날 북한유술(유도)협회 서기장이 되는 박학영(60kg급 동) 그리고 앞에 소개한 박정철과 이창수 등 남북한 메달리스트들이 모두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대동강 잉어회와 룡성맥주 등에 이어 평양 냉면이 나온 이 회식 자리에는 북한 응원단 일부도 참석했다. 평양음악무용대학과 청진사범대학 등에 다닌다고 자신들을 소개한 여성 응원단은 한결같이 고운 얼굴이었다. ‘남남북녀’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12년 뒤 부산에서 ‘남남북녀’를 다시 실감하리라고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3 부산 아시안게임은 북한이 한국에서 열린 국제 종합 경기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대회로 역시 남북 교류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2002년 9월 29일, 44개 참가국 가운데 마지막으로 입장한 600명의 남북 선수단은 2년 전 시드니 올림픽 때와 같은 복장과 대열로 손을 맞잡고 스탠드를 메운 6만 관중의 환호에 답했다. 공동 기수인 남측 황보성일(핸드볼)과 북측 최정희(축구)가 아리랑 선율 속에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아시아드 주 경기장에 들어설 때 장내는 환호에 휩싸였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개막식은 성화가 최종 주자인 남측 하형주와 북측 계순희(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48kg급 금)에 의해 성화대에 점화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남남북녀’에다가 각각 남북의 유도 영웅이었다.

계순희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일본의 여자 유도 영웅 다무라 료코(뒤에 다니 료코)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땄을 때를 비롯해 한국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남녘 동포들의 응원에 감사한다’는 인사를 잊지 않아 한국 스포츠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올림픽 금메달 외에 2001년 뮌헨(52kg급), 2003년 오사카, 2005년 카이로, 2007년 리우 데 자네이루 세계선수권대회(이상 57kg급)에서 우승한 계순희(북한 대표 팀 코치)는 지난 19일 2018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열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조민선 한국체육대학교 교수와 함께 IJF(국제유도연맹)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4 남측 14명과 북측 4명으로 꾸린 남북 단일팀 ‘코리아’는 27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2018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혼성 단체전 동메달 결정전에서 독일을 4-0으로 물리쳤다.

남자 90㎏ 이상급 김민종(남측)이 선봉으로 나서 스벤 헤인리를 업어치기 한판으로 물리쳤고, 이어 여자 57㎏급 권유정(남측)이 아멜리에 스톨을 업어치기 한판으로 꺾었다. 권유정은 경기 도중 어깨가 빠졌지만 승리를 지키는 투혼을 발휘했다.

남자 73㎏급 안창림(남측)이 이고르 반트케를 업어치기 되치기 절반으로 잡은데 이어 여자 70㎏급 권순용(북측)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라우라 바르가스 코흐에 업어치기 절반 승을 거둬 동메달을 확정했다.

1라운드를 부전으로 통과한 ‘코리아’는 루마니아와 펼친 2라운드에서 4-0, 네덜란드와 벌인 준준결승에서 4-0으로 가볍게 이겼다. 그러나 ‘코리아’는 준결승에서 일본에 0-4로 졌다. 일본은 프랑스를 4-1로 꺾고 2015년 아스타나(카자흐스탄) 대회 이후 이 세부 종목에서 3연속 우승했다. 한국은 2017년 부다페스트(헝가리) 대회에서 이 종목 3위에 올랐다.

역사의 물줄기가 크게 바뀌지 않은 한 ‘코리아’는 2019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와 2020년 도쿄 올림픽 혼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에 다시 도전한다.

◇2018년 세계유도선수권대회 혼성 단체전 출전 ‘코리아’ 멤버

여자 57kg급=김지수(재일 동포) 권유정(안산시청) 김진아 리효선(이상 북측) 여자 70kg급=정혜진(안산시청) 김지정(한국체대) 권순용(북측) 여자 70kg 이상급=김민정(한국마사회) 한미진(충북도청) 남자 73kg급=안창림 안바울(이상 남양주시청) 안준성(용인대) 최인혁(대구시청) 김철광(북측) 남자 90kg급=곽동한(하이원) 이승수(한국마사회) 남자 90kg 이상급=김민종(보성고) 조구함(수원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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