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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동열 사태 반전,’ 문제의 본질 모른 채 국회로 불러들인 결과일 뿐일까

김도곤 기자 kdg@spotvnews.co.kr 2018년 10월 11일 목요일

▲ 10일 국정 감사에 참석한 선동열 야구 국가 대표 팀 감독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선동열 감독 논란이 국회로 간다는 뉴스를 보고 글쓴이는 반전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먼저 스포티비뉴스 고유라 기자가 쓴 기사부터 살펴보자.

“TV 보는 감독 연봉 과하다? 야구 가치 뭘로 판단하나”라는 제목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손혜원 의원은 10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에서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과정에 대한 질의 응답 도중 선 감독에게 "연봉이 얼마냐"고 물었다.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질문이었지만 선 감독은 "2억 원"이라고 답했다. 손 의원은 "출근도 안하면서 2억 원을 받느냐"고 질타했고 선 감독은 “TV로 경기를 보는 게 낫다"고 답했다.

손 의원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을까. 손 의원은 국정 감사 후 자신의 SNS에서 선 감독을 강도 높게 비난했고 한 네티즌이 '대표 팀 감독의 연봉으로 과한 금액은 아니라고 본다'고 댓글을 달자 "집에서 프로 야구 경기 TV로 보면서 2020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감독에게는 과합니다"고 덧붙였다. (중략)

게다가 2억 원이 과하다는 것은 어떤 근거인가. 국제 대회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대표 팀 감독의 연봉을 과하다고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만약 누군가 "국회의원들이 보좌관 도움을 받으며 1억5000만 원을 받는 것은 과하다"고 이야기한다면 손 의원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어서 “'사이다' 기대한 야구 팬들에게 '고구마' 안긴 국회” 제하 기사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김수민 의원이 먼저 공격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프로 야구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많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냐", "오지환에게 미리 대표 팀 언질을 줬냐" 등 심증에서만 비롯된 질문을 퍼붓다 지난해 김선빈과 오지환의 기록을 토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대표 팀 코칭스태프가 뽑으며 참고한 선수들 기록은 올해 기준이었다. "올해 6월까지 3개월 기준으로 선수를 뽑기는 힘들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구 현장 전문가가 아닌 김 의원 자신의 판단이었다.

야구 대표 팀 문제를 자꾸만 정치권 이야기와 결부시키며 본질을 흐린 손혜원 의원의 주장은 더욱 답답했다. 손 의원은 "지난해 국정 농단이 화제가 될 때 김응룡 KBSA 감독이 선임됐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발언을 시작으로 "양해영 사무총장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보좌관 출신"이라며 아시안게임 대표 팀 선발과 관련 없는 이력을 들먹여 '정치 프레임'을 씌웠다.

6년 전 국회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3개와 은메달 9개, 동메달 8개로 종합 5위에 올라 메달 수로는 2008년 베이징 대회(금 13 은 11 동 8)에 이어 2위, 순위로는 1988년 서울 대회 4위(금 12 은 10 동 11)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을 세웠다. 국제 대회에 나서는 선수들이 컨디션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시차가 까다로운 유럽 대륙 대회에서 거둔 최상의 결과였다.

아주 좋은 성적이었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있기도 했다. 심판 판정 문제와 관련한 피해를 204개 출전국 가운데 한국 선수단이 유독 많이 봤기 때문이다.

대회 초반부터 박태환(수영) 조준호(유도) 신아람(펜싱) 등이 줄줄이 판정 문제로 손해를 보거나 경기력에 일정 수준 영향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분들(한국인 IOC 위원 지칭)은 그곳(런던)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이번 선동열 감독 사례처럼 대회 이후 불똥이 국회로 튀었다. 대한체육회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국회에 출석한 가운데 스포츠 외교력 부재를 질타 받았다. 호통이 덧붙여진 것 빼고는 그때도 일반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날린 ‘그분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엉뚱한 과녁에 쏜 것이었다. 한국인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은 국적이 한국이지 한국을 대표해 IOC 위원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IOC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있는 나라나 지역에 사는 주민 가운데 프랑스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위원으로 선출한다. 뽑힌 이들은 IOC에 그 나라나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그 나라나 지역에 대한 IOC의 대표다.

한국 국적의 IOC 위원은 IOC가 한국에 파견한 대사(大使) 정도로 보면 된다. 한국 국적의 IOC 위원이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IOC와 IOC 위원의 특별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1894년 6월 파리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회의는 근대 올림픽의 창시와 이를 관장하는 조직인 IOC의 결성 그리고 제1회 대회를 고대 올림픽의 나라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1896년에 열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IOC는 올림픽에 정치가 끼어들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썼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은 정치가나 정치 조직을 매우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올림픽을 각국 정부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만들어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지킬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신이 프랑스의 군인 가계 귀족(남작)이기도 했거니와 IOC를 조직할 때 작위를 지닌 귀족들을 위원으로 잇따라 받아들였다.

위원들의 지위가 두드러지면 두드러질수록, 또 존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치가들이 간섭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귀족 IOC 위원이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의 앤 공주, 모나코의 알베르 2세 국왕 등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이들 귀족 IOC 위원 가운데 몇몇은 올림피언이기도 하다. 앤 공주는 승마(1976년 몬트리올 대회), 알베르 2세 국왕은 봅슬레이(1988년 캘거리 대회~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종목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IOC는 1894년 6월 기구 설립을 결정하며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정치권의 개입을 철저히 막았다. 국적과 종교, 지역을 초월한 권위를 스스로 만들었다.

국내 아마추어 단체를 총괄하는, 올림픽에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는 요즘에는 일부 프로 종목 선수들의 국제 대회 출전을 지원하기도 하는 대한체육회는 NOC로도 기능하고 있다.

정치가 왜 스포츠에 끼어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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