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원 감독이 돌아왔고, 수원은 FA컵 4강에 올랐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수원, 한준 기자] “웃음거리가 되지 말자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했다.” (염기훈)

제주 유나이티드를 승부차기로 꺾고 2018 KEB하나은행 FA컵 준결승전에 진출한 뒤 수원월드컵경기장 믹스트존에서 만난 염기훈의 표정은 밝았다. 염기훈은 조원희, 신화용, 양상민 등과 함께 지난달 30일 서정원 감독의 집을 찾아가 확고하던 ‘사퇴 의지’를 누그러뜨린 수원의 선참급 선수 중 한 명이다. 지난 시즌까지 수원의 주장으로 서정원 시대의 수원 리더십을 함께 만들어온 그에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노장들이 한번 뵙고 싶었다. 감독님이 사퇴했을 때 연락해도 안받으셨다. 카톡으로 독일 가기 전 한번 뵙고 싶다고 남겼다. 이틀 전 연락이 와서 그럼 오라고 해서, 가기 전 뵙고 저희들이 힘든 부분을 감독님께 얘기를 드렸는데 많이 미안해 하셨다. 자기가 나왔을 때 우리 팀이 잘되고 그랬으면 홀가분할 텐데 그러지 못한 부분을 보면서 더 힘들었다고 했다. 내가 나와서 애들이 더 힘들구나라는 말을 하셨다. 저희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힘든 결정은 못할 줄 알았다. 만났지만 확고했다. 안돌아오시는구나, 감독님이 저희 마음을 알아주신 것 같다.”

서정원 감독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기다린 수원삼성 프런트, 이날 경기처럼 포기하지 않고 연락한 베테랑 선수들의 설득 끝에 수원 벤치로 돌아왔다. 지난 8월 말 사퇴 의사가 공식 발표된지 49일 만에 전격 복귀를 알렸다. 두 차례 모두 수원의 2018시즌 가장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벌어졌다. 8월에는 전북현대와 AFC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10월에는 FA컵 8강전을 이틀 앞두고다.

▲ 팬들에게 복귀 인사를 하는 서정원 감독 ⓒ연합뉴스


◆ 서정원은 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복귀를 결정했나

서정원 감독이 사퇴 의사를 번복하고 돌아온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축구계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사상 초유의 해프닝이자, 코미디라는 표현도 들린다. 염기훈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지 말자”고 선수들에게 말할 정도로, 이 선택은 위험요소가 컸다. 자칫 제주전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복귀 결정 이틀만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17일 제주전을 앞둔 사전 인터뷰에서 서 감독 스스로도 이 선택은 ‘일시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확실한 건, 나갔다 돌아온 것이 스스로 전혀 용납이 안된다는 점이다. 이번 시즌만 하고 그만둘 생각이다.” 서 감독은 이번 복귀가 결코 2019년까지 보장된 기존 계약 기간을 채우러 돌아온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이 시기만 같이 이겨내고,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 잘 마무리를 짓고 나가겠다.”

2013년 부임해 위기의 수원을 쇄신한 서 감독은 어느덧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이제 서 감독이 없는 수원 벤치가 낯설고 어색한 수준이다. 실제로 서 감독이 나간 뒤 수원은 생각 이상으로 허전했고, 돌아온 뒤 익숙함은 취재진조차 지난 5년 반의 시간을 떠오르게 하며 가슴뭉클한 상황을 만들었다. 서정원 퇴진을 외쳐온 수원 서포터즈 프렌테 트리콜로도 경기 시작 전 서정원 응원 플래카드와 함께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수원에서 프로 선수로 최고의 시간을 보낸 서 감독은 수원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누구보다 큰 ‘레전드’다. 그는 수원 코치를 거쳐 감독이 되었고, 2014, 2015시즌 리그 준우승, 2016시즌 FA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냈으나 한계도 만났다. 이 과정에서 구단도, 감독도, 선수도 솔루션을 찾지 못해 2017시즌과 2018시즌에 부진한 경기와 결과가 이어졌다. 

정체된 팀에 대한 피로와 불만이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2018시즌 서 감독이 중도사퇴하게 만든 것은 그의 가족에게까지 미친 과한 비난이었다. 현재 예산 범위 안에서 서 감독보다 나은 감독을 찾기 어렵다는 수원, 팀과 선수에 대한 애정 속에 비전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도 지휘봉을 내려놓지 못한 서 감독의 불편한 동거는 수원이 비탈길을 걷게 했다. 결국 무너진 것은 대외적으로 팀 운영의 최전선에 서 있는 감독이 됐다. 

“마음의 짐이 많이 됐다. 그런 행동(전북전 직전 사퇴)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감독이라는 자리에서 더 큰 것도 겪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까지 안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참을 수 없었다. 더 마음이 아팠던 건, 제가 아이들의 계정을 못 보게 설정했다는 것이었다.”

▲ 서정원 감독의 응원 걸개를 걸고 이름을 연호한 서포터즈


◆ 서정원 복귀와 FA컵 4강에도 ‘불편함’이 남는 이유

그래서 여전히 서 감독의 선택에는 의문과 의아함이 남는다. 잃을 것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선택, 세간의 조롱을 받을 수 있는 선택을 왜 한 것일까. 

“(가족이 반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여러 상황이 일어나는 것에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책임감도 많이 생겼다. 저 때문에 이곳에 온 선수들도 있고, 저 때문에 팀에 남은 선수들도 있었다. 나만 아프다고 빠져나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제가 왔다고 해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은 생각이다.”

서 감독을 잘 아는 이들은 그가 오직 ‘선수들만 보고 왔다’고 했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좋은 상황이었다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안 좋은 상황이라 용기가 났다. 그런 부분을 감수하고 결정을 했다.”

서 감독의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것은 그의 뜻이 관철되지 않은 것이다. 선수들이 서 감독을 찾아가 설득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이병근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세우고도 공식 홈페이지에 여전히 서정원 감독을 표기해 놓은 뒤 후임을 물색하지 않으며 서 감독에게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 수원 프런트의 의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묘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 대한 불편함은 서 감독도 솔직히 말했다.

“처음 나갈 때는 당연히 그만두려는 마음이 강했다. 돌아올지 솔직히 나도 몰랐다. 정말 몰랐다. 나갈 때는 마음이 편하고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구단에서 사표 수리를 안 하는 상황이 힘들게 했다. 완강히 이야기를 했지만, 구단주님이 요청을 계속 하셨다. 10일 간격으로 만나자고 하셨다. 감독 선임을 하시라고 말했지만 구단주는 오히려 회사에 감독을 알아보지 말라고 지시하셨다고 하셨다. 그 부분이 힘들었다.”

▲ 서 감독 복귀를 설득한 염기훈


서 감독이 ‘회사의 지시’를 따른 이유는 온전히 선수들 때문이었다. 일주일 안에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코치진과 선수들의 상황이 눈에 밟혔다. 

“몇몇 선수들이 소리를 지르는 게 솔직히 기뻤다. 꿈만 같다고 말하는 선수도 있었다. 정이 참 많이 든 것 같다. 오직 선수들만 보고 왔다. 선수들의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아픔이 느껴졌다. 심지어 꿈에 나왔다는 선수도 있었다.”

FA컵 제주전에 진다면,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에 가시마 앤틀러스를 이기지 못한다면, 수원은 빈 손으로 최악의 2018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이었기에, 서 감독은 선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하겠다는 마음으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시선을 감수했다. 그리고 자칫 질 수 있었던 제주전을 그 힘으로 이겼다.

“오늘 우리 선수들이 저 때문에 더 뛰려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 많이 보였고, 그런 모습들이 저에겐 가슴이 아프고 저에게 너무 고마운 일이지만, 미안한 감도 많이 든다.” 서 감독은 자신이 정신적으로 도움을 줬지만 전술적으로는 코치진이 준비한 경기였다고 부연했다. “오늘 이런 승리는 우리 코칭스태프가 만들었다. 제가 자리를 비웠고 지금까지 만들어 온 코칭스태프가 기여한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염기훈도 증언했다. “감독님이 처음 훈련장에 왔을 때도 다들 마음이 편하다고 얘기한다. 든든하고 이제는 편안하다. 저도 그랬다. 감독님이 처음 와서 저희를 가르친 것은 아니다. 뒤에서 멀찍이 서서 지켜보기만 해도 편안한 느낌을 받았고 선수들도 훈련이 끝나고 힘든 결정으로 오셔서 좋았다. 흔들렸던 마음이, 감독님이 사퇴하시고 그 마음을 잡기 힘들었다. 노장으로 다그치고 하려고 해도 쉽지 않더라. 오시자마자 싹 없어졌다. 선수들이 마음을 잡은 게 가장 큰 수확이다.”

▲ 경기 후 회견에서 서 감독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 서정원의 용기가 헛되지 않으려면, 수원 구단이 용단을 내려야 한다

남은 두 달여 시간 동안 서 감독이 팀에 관여하는 부분은 커질 것이다. 서 감독은 올해까지만이라고 강조하지만, 구단은 2019년까지 계약 기간을 다 서 감독에게 맡기겠다는 생각이다. 선수들도 우선 시즌을 마쳐봐야 알 수 있지 않겠냐는 반응이다. 구단도, 선수들도 시즌 막판 유종의 미를 거둔다면 서 감독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점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서 감독이 힘들게 낸 용기의 배경과 진의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돌아와서 안주하겠는 생각은 절대 없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나가는 게 확실하다. 힘든 상황에서 선수들이랑 같이 동고동락하겠다. 내년을 위해 새로운 감독이 오는 게 맞다. 팬들에게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마지막까지 선수들을 응원해주셨으면 한다. 좋은 감독이 오셔서 팬들의 눈높이에 맞는 축구를 보여주셨으면 한다.”

지난 6년 간 서 감독은 ‘수원병’으로 불리던 수원 선수단 내 분위기를 쇄신하고, 롱볼 축구에 의존하던 플레이 스타일을 개선하는 등 성과를 냈다. 2016년 FA컵 우승으로 무관의 갈증도 풀었다.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에 서 감독도 숙제를 만났고 지쳤다. 

축구계의 많은 이들이 2016년 위기론을 극복하고 FA컵 우승을 이뤘을 때를 이별의 적기로 봤다. 서 감독 스스로도 재충전 내지 새로운 도전을 통한 환기가 필요했고, 매년 예산이 줄어든다는 수원도 새로운 리더십으로 팬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 비단 수원뿐 아니라 지금 K리그가 맞이한 문제는 구단들이 현상유지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변화를 위해 수반되는 예산을 집행하는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은 무겁다. 하지만 결정권자를 위축시키는 것은 권한은 적고 책임만 큰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도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지금 수원이 처한 위기, 그리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뭄부림은 오롯이 선수들과 서 감독, 그리고 코칭스태프의 몫으로만 보인다. 

서 감독에겐 용단이지만, 수원 구단에는 그렇지 않다. 서 감독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기다린 수원 프런트의 결정은 팀을 방기한 것처럼 보인다. 수원 프런트는 심지어 후임 감독 물색에도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서 감독이 올해까지만이라고 말한 현 시점에도 사전 작업에 나설 생각은 없다. 우선 시즌을 끝내고 논의한다는 생각이다. 

▲ 신화용의 역대급 선방을 본 관중은 2,909명. 텅 빈 관중은 어떻게 돌아오게 할 것인가?


수원삼성이 1995년 창단하고 즉각적으로 성과를 내며 단숨에 K리그를 대표하는 팀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3년, 5년, 10년 주기로 설정한 마스터 플랜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추진력이다. 지금 수원이 맞이한 위기의 근원은 추진력의 실종이다. 서정원 리더십의 위기가 수원의 추락을 부른 근원이 아니다. 예산이 줄어들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기 위한 치열하고 치밀한 고민, 그리고 이 고민을 현실화할 용감한 결정이 필요하다. 

49일만에 서정원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촌극의 책임은 수원 구단에 있다. 서정원은 흔들리는 선수들을, 무너지는 수원을 차마 보기 어려워 모두가 만류한 복귀를 결정했다. 수원 프런트는 이 결정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수원이 서 감독이 발휘한 용기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신화용의 선방으로 제주를 제쳤지만, 수원의 경기력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선수들의 의지가 이룬 4강이다. 우승은 의지만으로 이룰 수 없다.

16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열린 한국과 파나마의 A매치는 4연속 매진에 암표상도 횡행했다. 수원과 제주의 17일 밤 FA컵 경기장에는 2,909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평일 저녁 FA컵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수원의 과거 명성을 생각하면 처참한 흥행 실패다. 지난해부터, 올해 내내 이어져온 빅버드의 텅빈 관중석은 이미 일상이라 놀랍지도 않았다. 수원은 서 감독이 돌아오길 바라기에 앞서 떠나간 관중이 돌아올 수 있게 운영해야 한다. 수원 구단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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