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트루시에 전 일본 대표팀 감독 ⓒ한준 기자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축구를 선도해왔다. 그리고 한일 양국의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두 팀은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승리를 이뤘고, 조별리그 통과에 성공했다. 16강에서 멈춘 일본보다 4강 신화를 쓴 한국의 임팩트가 컸다. 

본선에 앞서 일본이 이룬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 일본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준비한 과정에 1999년 FIFA 월드유스챔피언십(현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2000년 시드니 올림픽 8강, 아시안컵 우승,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을 차례로 이뤘다.

한국 축구를 바꾼 주역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있었다면, 일본에는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있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목표로 일본의 20세 이하 대표팀,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 성인 대표팀을 겸임하며 4년 프로젝트를 맡은 트루시에 감독은, 히딩크 감독의 4강에 가려졌지만 이 시기 일본 축구의 획기적인 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뜨거웠던 한일월드컵 이후 16년. 60대에 접어든 두 한일 축구의 영웅은 여전히 현장에 있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 중국 올림픽 대표팀을 맡았고, 트루시에는 베트남으로 향했다. 2026년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장기 계획을 갖고 유망주 육성에 투자하고 있는 베트남의 PVF 아카데미(베트남 최대기업 빈그룹이 사회공헌 사업으로 투자해 운영하는 유소년 육성클럽)가 트루시에를 총감독이자 기술위원장으로 선임했다. 

트루시에 감독은 남북 스포츠 교류의 장이 된 강원도 개최 제5회 아리스포츠컵에 참가한 베트남 15세 이하 선발팀을 대동하고 10월 말 한국을 찾았다. 스포티비뉴스는 짧은 일정 속에 트루시에 감독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일본을 떠난 이후 카타르, 중국 등 아시아에서 막대한 투자를 벌이는 국가에서 일했던, 프랑스 명문 클럽 올랭피크마르세유를 지휘하기도 한 트루시에 감독은 꾸준히 현장의 최일선에서 아시아 축구와 세계 축구의 발전상을 겪었다. 트루시에 감독이 한일 월드컵 이후 한일 축구는 물론 아시아 축구와 세계 축구계의 변화를 짚었다. 

▲ 일본 대표팀의 2002년 한일월드컵을 이끈 트루시에 감독


다음은 트루시에 감독과 일문일답.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오랜만이다. 그때 한국 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는 중국 올림픽 팀을 맡았다. 당신은 클럽 축구나 대표팀이 아닌 베트남 아카데미를 택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가족적인 파티가 있었다. 한일 양국 협회장과 히딩크 감독, 내가 참석해 아주 친근한 파티를 했었다. 작년에 그때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FIFA U-20 월드컵 결승전 현장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이 중국으로 간 것은 알고 있었다. 리피 감독도 중국에 있고, 히딩크도 갔다. 서로 시너지가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히딩크 감독의 코치였던 박항서 감독이 지금 베트남 대표팀 감독을 이끌고 있다. 박 감독은 베트남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  

-베트남에 감독이 아니라 기술위원장으로 간 이유는?
왜냐면, 난 늘 도전에 응해왔다. 도전의 레벨을 따지지 않았다. 내 경력을 보라. 난 나이지리아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나서 부르키나파소에 갔다.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을 위해 간 것이었다. 난 위신이나 명망을 따라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다. 명성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와서는 3부리그 경기도 이끌게 된다. 내게 중요한 것은 이게 어떤 도전인가, 어떤 사람들과 일하는가다. 축구는 나의 열정이기도 하지만,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그런 열정을 느끼고 싶다. 

베트남의 몇몇 인사가 지난 3월에 접촉해서 내게 PVF 아카데미 기술위원장을 제안했다. 보장받고 싶은 부분이 있어 직접 베트남에 가서 시설을 둘러보고 공식적인 인사들에게 비전도 들었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니 좋은 도전이라고 판단했다. 베트남과 연락하고 있을 때 빗셀고베와도 계약할 뻔 했었다. 이니에스타를 영입한 라쿠텐의 미키타니 회장은 내가 결국 거절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한 모든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유럽에 있거나, 감독으로 있다면 결과에만 집중해야 한다. 경기장 밖에서 일하면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사람들을 돕고 조언할 수 있다. 물론 하이 레벨 축구나 그런 대회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난 200회 이상 국제 경기를 했다. 월드컵에 두 번 나갔고, 올림픽,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코파아메리카, 아시안컵을 경험했다. 그리고 여기에 왔다. 월드컵 참가는 더 이상 내게 꿈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감독이 두 번의 월드컵을 경험했겠나? 세계적으로도 많아야 10명 정도일 것이다. 

난 날 믿는 사람들과 일하고 내가 믿는 사람들과 일한다. 1부냐, 2부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축구는 축구다. 물론 낮은 수준일 수 있다고 인지하지만 그런 곳에 있어야 할 필요도 있다. 매주, 매일, 온종일 열정을 나눌 수 있는 일이다. 진정한 도전이다. 하이 레벨이라면 쉽다. 좋은 컨디션에 최고의 선수가 있다. 여기는 로우 레벨이다 그게 이 일의 키포인트다. 

-동남아시아 축구가 급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관심이 있었나?
맞다. 전에 몰랐던 지역이다. 이 지역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진정한 에너지와 잠재력을 봤다. 베트남 사람들의 열정, 순수한 잠재력을 봤다.그 잠재력은 우선 지난번에 열린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으로 드러났다. 당시 베트남 현지의 반응 보면 대단했다. 마치 월드컵을 치른 것 같았다. 베트남은 이런 기반과 철학을 갖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축구가 굉장히 인기 있다. 오랫동안 그래왔다. 베트남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인기도 대단하다. 시청률도 매우 높다. 베트남에는 진짜 축구 문화가 있다. 

최근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26년 월드컵에는 본선 참가국이 48개국으로 확대된다. 그렇다면 자동적으로 베트남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것이다. 9~10개 아시아 팀이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면, 지금 베트남이 충분히 10위권으로 갈 수 있다 본다. 야망이 크다. 내 미션은 베트남 축구를 발전시켜 2026년 월드컵에 나가게 하는 것이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베트남 대표팀이 2026 월드컵 본선에 나가게 하는 것은 아주 큰 도전이다. 8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다. 꼭 8년을 일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8년 뒤를 목표로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먼저 베트남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함께 일하고, 팀으로 일하고, 그런 구조가 좋다. 우리는 힘을 갖고 있다. 비전을 갖고 있고 구조와 시설을 갖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날 믿어봐라. 아주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 1999년 청소년 월드컵 준우승-2002 월드컵 16강…"코만도식 합숙훈련 성과"
■ 선수들의 심리 콤플렉스 타파+유럽 진출 선수 확대가 한일 축구 발전 동력
■ 세계 축구와 아시아 축구 좁혀진 격차, "엄격해진 판정 기준 변화 때문"

▲ 필립 투르시에 감독 ⓒ한준 기자


-베트남이 최근 선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시아의 강국, 특히 한국과 경쟁할 때는 힘의 차이가 있었다. 피지컬적으로도 숙제가 분명하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한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TOP2에 드는 나라다. 우리는 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한 경기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지난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는 일본을 1-0으로 이겼다. 베트남이 일본을 꺾고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했다. 난 그 경기를 봤다. 한 경기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당장 한국, 일본과 같은 수준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타깃은 축구 수준을 한국 일본 수준으로 높이는 게 아니다. 이들과 동등한 수준이 되어 경쟁하는 게 아니라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는 것이다. 우선 태국, UAE, 카타르, 우즈베키스탄, 이란 등의 팀과 경쟁하며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일본과 비교한다면, 난 일본을 잘 아니까, 베트남과 일본이 기술적으로는 차이가 크지 않다. 큰 차이라면 베트남이, 자신들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베트남은 이란, 일본, 한국과 경기할 때 콤플렉스가 있다. 경기 전에 스스로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기회가 없다. 난 베트남을 멕시코과 비교하곤 한다. 멕시코는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비교하면 떨어지지만 브라질이 쉽게 이길 수 없는 팀이다. 

난 베트남을 설명할 때 비교할 장단점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좋다는 장점? 피지컬이 약하다는 단점? 아니다. 그것보다는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중요하다. 누구나 자신만의 강점과 단점이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믿어야 한다. 축구는 11대11로 경기한다. 어제 진실이 내일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콤플렉스를 없애고 자기 자신을 믿고 나아가면 할 수 있다. 이게 포인트다. 스스로 믿도록 하는 것. 내가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다. 

경기장 위에서 우리도 볼을 콘트롤 할 수 있고 패스할 수 있고 달릴 수 있다. 한국, 일본과 같은 거리를 뛸 수 있고 같은 플레이를 할 수 있다. 콤플렉스 없이 경기하면 해낼 수 있다. 일본, 한국과 경기할 때, 외국에 나가서 경기할 때, 외국에 나가면 베트남에서, 홈에서 경기하는 것과 다르다. 그런 심리적인 면과 그 차이를 발전시켜야 한다. 

-한국과 일본도 2002년 월드컵 전에 그랬다. 유럽 공포증이 있었고 월드컵에서 1승도 못했다. 월드컵 이후 두 나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 무엇을 어떻게 바꾼 것인가?
쉬운 문제다. 바꾸기 쉽다. 변화는 ‘코칭’에서 오는 게 아니다. 유럽 클럽들이 한국과 일본 선수들을 어떻게 고려하는 지에서 온다. 그때 일본에는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1명뿐이었다. 지금은 25~30명이 뛴다. 유럽 클럽들이 이제 아시아에도 축구가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한국도 13명가량의 선수가 유럽에서 뛰고 있다. 이런 선수들은 자동적으로 맨시티, 맨유를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에서 하이레벨 선수와 뛰고 하이레벨 감독과 일한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이 선수들이 다른 태도를 갖게 한다. 이 선수들을 변하게 한다. 이 과정은, 그들이 대표팀에 올 때 다시 작용한다. 바이에른뮌헨, 올랭피크마르세유에서 뛰다가 대표팀에 오면 다른 자세를 보이게 된다. 다시 그 나라에 오면 책임감도 달라진다. 

일본이 왜 발전했냐고? 선수들이 유럽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내게 일본 축구를 어떻게 발전시켰냐고 물으면 20여 명의 선수가 유럽에 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축구협회(JFA)나 대한축구협회(KFA)의 기술 정책으로 발전시킨 게 아니다. KFA가 하고 있는 것? 이미 충분하다. 축구를 가르치고, 교육하고, 이런 것들은 이미 강하다. 하지만 한국에 남아 있는다면? 발전할 수 없다. 유럽으로 가면 더 발전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퀄리티, 일본의 퀄리티는 90%가 유럽 진출 덕분이다. 오직 그뿐이다. 

-하지만 당신이 일본 청소년 팀, 올림픽팀으로 성적냈을 땐 유럽파가 없지 않았나? 그때 국제대회에서 바로 성적을 냈다. 단기간 어떻게 바꿀 수 있었나?
그것은 코칭 문제다. 물론 특별한 프로세스가 있었다. 코만도(특수부대)처럼 운영했다. 20명의 코만도가 모여서 밤낮으로 산에 오르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특공대의 프로세스다. 3-4주 합숙 훈련하며 뭉치고, 팀워크를 집중하고, 심리적으로 무장했다. 난 선수들에게 파트너를 믿고, 서로를 믿으라고 매니지먼트했다. 물론, 전술적으로, 조직력 측면에서도 잘 준비했다. 플랫3도 썼다. 

당시 피지컬적으로 약한 일본은 도전적인 축구를 하기 어려웠다. 수비 전술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지만 축구는 유도가 아니니까. 몸이 강해서 상대를 밖으로 밀어낼 수 있지만, 사람을 막을지, 공을 막을지를 정할 수도 있다. 사람을 막기엔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작고 가벼웠다. 공을 따라 수비해야 했다. 공이 오길 기다렸다가 싸우면 진다. 

난 일본 선수들에게 설명했다. 우리 중 누구도 유벤투스에서, 아스널에서, 바이에른에서 뛸 수 없다. 하지만 함께라면 우리는 독일, 잉글랜드,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다. 그게 내 매세지였다. 우리가 소통하고, 조직되고, 규율이 있으면 한 경기는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를 냈다. 우리는 월드유스챔피언십에서 미국, 포르투갈, 멕시코, 우루과이를 이겼다. 스페인을 만난 결승전에서 졌다. 하지만 좋았다. 스페인까지 이겼다면 사람들이 오히려 이 대회를 좋은 대회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이겼다면 오히려 덜 기억했을 것이다. 

▲ 1999년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2002년 월드컵 16강을 이룬 트루시에 감독


-지난 15년 간 축구는 어떻게 발전해왔다고 보나? 전술적인, 전략적인 발전 혹은 피지컬적인 발전이 축구강국과 격차를 좁혔다고 보나? 
갭이 줄어든 것은 피지컬 때문이 아니다. 심판의 판정 기준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는 일본 축구를 말할 때 바보같고, 너무 나이브하다고 했다. FIFA의 룰은 공을 가진 상대를 터치하면 안 된다고 되어 있지만 유럽에선 신경 쓰지 않고 팔꿈치를 썼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다이빙했다. 일본에선 그러지 않았다. 내가 월드컵을 준비할 때, 일본 선수들에게 유럽 팀을 만나면 FIFA 룰을 잊으라고 했다. FIFA 룰을 따르면 바보가 되고 이기지 못할 것이다. 상대는 우리의 발도 밟고 때리고 옷도 잡아당기고 도발할 것이다. 그것에 대비되어 있어야 한다. 오늘 날에는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예전처럼 거칠게 태클을 할 수 없고, 상대 선수를 그렇게 터치할 수 없고 사람을, 팔꿈치를 쓸 수 없다. 이제 축구가 됐다. 더 축구다워졌다. 이제 공을 다루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됐다. 

그래서 일본에게 더 기회가 생기게 됐다. 판정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심판이 이제 반칙을 더 엄격하게 잡는다. 시뮬레이션도 경고를 준다. 그래서 이제 축구는 더 공을 잘 다루는 팀이 유리하다. 일본은 그 점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패스, 콘트롤, 슛, 크로싱, 규율… 지난 월드컵 벨기에전을 보라. 일본이 벨기에를 부쉈다. 하지만 마지막 5분에 놓쳤다. 

난 다시마 고조 JFA 회장에게 말했다. 다시금 나이브한 모습 때문에 당했다고. 그때 일본이 아주 잘했고, 벨기에를 사실상 파괴했다. 85분을 지배했다. 오직 마지막 5분이 문제였다. 그때 벨기에가 만회하고 일본은 격파했다. 그 전에는 완전히 부숴졌다. 일본이 빨랐고 호전적이고, 커뮤니케이션도 좋았고 창조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그걸 잊었다. 그게 일본이다. 바보 같은 실수를 했다. 경기를 통제해야 했다. 그런데 계속 공격만 했다. 2-0이 됐는데도 공격했다. 그러다가 2-3으로 졌다.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코치진이 그런 경험이 부족했다. 이는 일본인 지도자들의 경험 문제였다. 그들은 상대보다 더 축구를 잘하려고 했다. 때로는 이기기 위해 축구를 덜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일본은 그걸 몰랐다. 상대를 꺾을 줄 알아야 한다. 이기기 위해 꼭 축구를 상대보다 더 잘할 필요는 없다. 바르셀로나와 경기하면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나? 이기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은 그 문제를 조금씩 개선하고 있는데, 벨기에전의 실수는 모두 거기서 비롯됐다. 그래도 아시아 축구는 발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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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타와 밀고 당기기에 성공했던 트루시에 감독

 
-한국 대표팀의 발전상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일각에서는 2002년 이후 발전했다가 최근에 정체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내가 주목하는 점은 얼마나 많은 선수가 유럽에서 뛰고 있느냐다. 충분하다. 매년 우리는 한국 선수들이 유럽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있다. 두 번째로 볼 부분은 한국이 매 월드컵 예선을 통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축구 발전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포인트다. 매년 새로운 한국 선수가 유럽에 가고, 매 월드컵마다 본선에 간다. 이걸로 충분하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로 충분하다. 월드컵 우승팀이 4년마다 늘 이길 수 있다고 보나? 그럴 수 없다. 누구도 그럴 수 없다. 스페인, 프랑스, 독일을 포함해도, 누구도 할 수 없다. 

월드컵이나 유러피언컵, FA컵 같은 토너먼트 대회의 특성이다. 한국이 2002 월드컵에서 4위, 프랑스가 28위였다. 그게 한국의 수준이고 프랑스의 수준인가? 이건 이 토너먼트에서의 레벨이다. 좋은 준비, 행운, 대진표, 그런 여러 측면이 작용한다. 그렇게 나온 순위는, 이 대회에서는 분명 진실이다. 하지만 진짜 사실은 한국이 세계 4위가 된 것은 아니다. 

한국이 계속 월드컵에 가고 있고 계속 좋은 선수를 배출하고, 유소년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된다. 한국과 일본의 진짜 위치는 24~25위권이라고 본다. 때로는 50위권, 30위권으로 갈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20위권을 유지한다고 본다. 

축구 발전은 쉽지 않다. 한국은 유럽과 8시간 시차가 있다. 유럽 축구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기 쉽지 않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경기 보는 것은 어린 선수들에게 쉽지 않다. 모던 풋볼의 에볼루션을 실시간으로 보기 어렵다. 유럽에 세계 최고의 선수가 있다.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일본, 한국 등등 최고 선수들은 다 유럽에 있다. 하이 레벨 프로세스는 이런 것이다. 유럽에 있다. 

한국에 산다면 이런 팀들을 친선경기를 위해 데려오기도 어렵고, 경기를 하러 가기도 어렵다. 새벽 시간에 정보를 계속해서 얻기도 어렵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이 과정 안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 축구 수준, 일본 축구 수준은 좋다. 4년마다 월드컵에 나가고 있으니까. 그게 키포인트다. 그게 확실한 사실이다.

-선수들은 발전하고 있는데, 지도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일본 지도자들의 발전은 어떻게 보나?
난 로컬 감독들의 수준도 높다고 본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고려하느냐에 있다. 빅리그에서 온 선수들이 한국, 일본에서 일하는 지도자를 마주하면 어떤 생각이 들겠나. 예를 들어, 유럽에서 과르디올라와 일하다가 오는 선수라면, 로컬 감독들이 선수들을 다루기가 어렵다. 로컬 감독이 선수를 충분히 존중하지만 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 된다. 선수들이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꼭 감독이나 코치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존중은 해야 한다. 특별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넌 여기서 뛰어야 한다. 넌 뛰고, 넌 이번에 뛰지 못한다. 이런 것을 결정하는 것이 감독의 일이다. 이런 결정이 쉽지 않다. 외국인 감독이라면 쉽다. 로컬 감독은 신문도 읽고, 여러 반응을 보게 되는데, 외국인은 안볼 수 있다. 매일 이런 환경이다. 언론과 여론의 반응을 자동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관중들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로컬 감독은 자연히 영향을 받게 된다. 외국인이라면 이해를 못하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일본에 있을 때 언론과 여론을 보지 않았나?
이길 때만 봤다. (웃음) 졌을 땐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로컬 감독이라면 읽고 싶지 않아도 들린다. 그래서 쉽지 않다. 내 생각에 그것이 빅클럽이 로컬 감독을 잘 안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PSG도 프랑스 사람을 안 쓴다. 맨유도 영국인을 안 쓴다. 아스널도 그렇다. 레알마드리드는 지단이 있다가 스페인 사람이 와서 문제를 겪고 있다. 

하이 레벨 클럽은 로컬 감독을 쓰지 않는다. 늘 외국인이다. 왜냐면 외국인은 중립적이다. 모두가 그를 공격할 수 있다. 하이레벨에선 외국인이 더 잘한다. 이건 능력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난 한국에도 좋은 감독이 있다고 확신한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감독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난 한국과 일본의 경우 외국인 감독이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 유스 발전 과정에 일본 코치만 쓴다. 그래서 일본 축구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일본 교육은 끔찍하다. 넌 이 자리에 앉고, 저기로 가고, 가만히 있으라. 이런 식의 수동적인 태도를 갖도록 가르친다. 그래서 15세 17세 단계에 외국인 코치가 필요하다. 이게 바꿔야 할 포인트다. 더 많은 외국인이 유소년 시스템에 관여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 하려면 너무 늦다. 

■ 할릴호지치의 밀고 당기기, JFA가 기다려주지 못했다
■ “나는 2002년 월드컵 6개월 전 이탈리아와 친선전에 나카타를 선발에서 뺐다”
■ 하이레벨에 외국인 감독 필요성, "능력 때문이 아니라 상황 때문"
■ 모리야스는 젊고 뛰어난 지도자…한국 축구계와 소문만 무성 공식 접촉 없었다

▲ 하이레벨에 외국인 감독이 필요한 이유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는 트루시에 감독


-할릴호지치 감독은 외국인 감독이었지만 일본에서 문제를 겪었다.
첫 번째 이유는 결과다. 월드컵 준비 경기에서 JFA는 피치 위에서의 결과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이유는 회장이 감독과 선수 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특히 나이든 선수들, 혼다, 가가와 등이 월드컵에 갈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난 할릴호지치를 잘 안다. 나 역시 그런 성향인데, 때로는 선수들과도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한다. 우리는 늘 도전하고 반응해야 한다. 감독은 사람을 반응(reaction)하게 하는 사람이다. 선수들이 반응하게 해야 한다. 액션은 "난 널 좋아한다. 같이 일하자. 해보자." 이런 것이다. 리액션은 "난 널 좋아하지 않아. 이대로 가면 넌 월드컵에 못 간다." 이런 공격적 메시지로 선수들의 반응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감독은 그런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선수가 준비가 됐는지 안됐는지 파악하고 끌어내야 한다. 

나도 나카타와 그런 일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을 6개월 남겨두고 이탈리아와 도쿄에서 경기를 했다. 이탈리아에서 뛰던 나카타가 왔는데 내가 그를 불러서 넌 벤치라고 했다. 그때 나카타와 함께 로마에서 뛰던 선수들도 이탈리아 대표팀에 많이 있었다. 내가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일본에서 뛰는 로컬 플레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었다. "(나카타도 벤치인 것을) 봐라. 난 너희를 믿는다." 왜냐면 종종 선수들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J리그 선수들이 나카타에게 그 책임을 미루려고 했다. "아니다. 네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나카타는 우리에게 보너스다. 나카타의 뒤로 숨지 마라." 난 그걸 보여주고 싶다. 나카타 없이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황은 전략이다. 

이 전략은 운영하기 쉽지 않다. 상상해보라. 나카타가 이탈리아와 경기에 벤치에 있다? 언론이 따지지 않겠나? 많은 일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하프타임에 이탈리아를 상대로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나카타에게 말했다. 후반전은 이제 네가 뛰어라. 나카타는 굉장히 강한 동기부여를 갖고 경기장에 나섰다. 나카타도 그때 굉장히 분했을 것이다. 우리는 결국 1-1로 비겼다. 내가 이 프로세스의 승자였다. 

감독은 때로는 팀을 ‘터치’해야 한다. 감독은 페이퍼 워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을 ‘터치’해야 하는 사람이다.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다. 누굴 뛰게 하고, 누구를 들어오게 하고. 할릴호지치 감독 역시 나처럼 팀을 운영하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JFA는 몇몇 선수들이 정말 월드컵에 가지 못할까봐 아주 우려했다. 일본의 시스템이 그렇다. 결국 그들은 결정했다. 대회 한 달전에 리스크를 감수하기로 했다. 할릴호지치가 계속 감독으로 있었다면 어땠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대신 맡은 니시노 감독은 대회를 마치고 그만뒀다. 

-일본은 다시 일본인 감독을 택했다.
새로 온 모리야스 감독은 아주 좋은 지도자다. 젊고, 성과도 냈고, 무엇보다 보통의 일본인같은 결정을 하지 않는다. 일본인이 하지 못하는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지난 경기에 혼다, 가가와 등을 안 부르고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큰 비전을 갖고 있다. 그는 일본 축구계 밖의 시스템이 어떤지 잘 안다.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호전적인 면도 있다. 그 역시 프로 선수였고. 히로시마에서도 타이틀 세 개를 얻었다. 월드컵에서 니시노 감독의 코치로 일했다. 그런 경험이 있다.

모리야스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도 맡고 있다. 두 팀을 함께 하고 있다. 최근 성적도 좋다. 하지만 아시안컵 이후에는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의 운영이 분리될 수도 있다고 본다. 모리야스는 도쿄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둘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성공적으로 겸임하지 않았나?
난 했지만, 그때는 올림픽이 일본에서 열린 대회가 아니었다. 도쿄에서 열리는 2020년은 특별하다. 난 그 시드니 올림픽 팀을 월드컵 2002년 대회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활용했다. 그때와 지금은 같은 프로세스가 아니다. 난 그때 20세, 23세 팀을 하고 A대표팀을 했다. 난 80~100여명의 선수와 일했다. 1999년에 난 월드 유스에 나갔다. 거기서 최고의 선수를 올림픽에 데려갔다. 거기서 최고의 18명의 선수를 성인 대표팀에 데려갔다. 결국 2002년 월드컵에 17명의 선수가 내가 이전에 맡은 아래 단계 팀에서 왔다. 새로운 세대를 만든 것이다. 

물론 모리야스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2020년 대회에 더 집중해야 한다. 할 수도 있겠지만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다시마 회장도 모리야스가 트루시에처럼 하길 바란다고 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아시안컵은 당장 열리기 때문에 이 시기에 새로운 감독을 데려오긴 어려울 것이다. 아시안컵 이후에는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 일본에서 경력의 정점을 만든 트루시에 감독


-과거에 J리그에 유명한 외국인 감독이 많았다. 요즘 J리그에 일본인 감독이 늘어났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문제가 먼저다. 팀의 재정 자원상 하이레벨 감독을 데려올 수준이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정책적으로 좋은 국내 감독이 잘 할 수 있다고 여기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일본의 목표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다. 유럽과 다르다. 유럽 챔스 우승은 어마어마한 돈이 되지만 아시아는 그 정도 수준은 아니다. 일본의 전략은 지금까지 ACL이 아니라 J리그였다. 리그 비즈니스와 내수 시장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빅네임을 못 데려오니까. 외국인이라도 무명이라면 매력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급여는 비싸다면, 일본인 감독이 낫다는 거다. 벵거, 무리뉴, 과르디올라라면 몰라도, 이런 감독을 급여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라쿠텐 정도만 가능하다. 최대 500만 유로 정도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사정도 그럴 것이다.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기에 예산이 맞지 않을 것이다. 물론 대표팀은 다르겠지만, 클럽 차원에서는 중국처럼 돈을 쓸 수 없지 않나. 중국은 감독에게 2000만 유로를 쓴다. 리피 감독이 2000만, 펠레그리니나 카펠로 감독은 1000만 유로를 받았다.

-처음 일본에 갈 때 벵거 감독이 추천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때 첫 아시아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나?
난 벵거와 친구였다. 그리고 그때 난 남아공 대표팀 감독이었다. 1998년에 프랑스가 월드 챔피언이 됐고, 일본이 프랑스 감독 찾고 있었다. 난 프랑스인이었고. (웃음) 벵거가 일본에 날 추천했고 내게도 물어봤다. 주저는 전혀 없었다. 전화 연락을 받았다. 일본에서 만나고 싶다고 하자 난 기뻤다. 그렇게 아시아에서 내 이야기가 시작됐다. 

-일본을 떠난 이후 한국 대표팀, K리그 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나?
벤투 감독도 중국에서 큰 성공은 못했는데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오지 않았나. 나한테도 전화가 오지 않을까 기다렸는데 연락이 없어서 실망했다. 왜 전화를 안했나? (웃음, 주/ 농담의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3~4년 전에도 수도권의 K리그 팀과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과 내 관계는 깊게 이어지지 못했다. 진짜 접촉은 없었고 소문뿐이었다. 공식적인 제안은 받아보지 못했다. 내가 일본에서 일했던 것 때문에 날 꺼려한 것 같다. 

일본에서의 평판도 있지 않나. 당신도 알지 않나? 내가 성격이 어떻고, 까다로운 사람이고. 그런 얘기들. (웃음) 그리고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일했던 외국인 감독을 쓰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더라. 나는 잘 모르지만 한일 양국 간의 역사적인 이유도 있는 것 같고. 하지만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할 때는 여전히 한국과 일본이 서로 경기를 하면 패배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난 한국에 늘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많다. 하지만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중국과 카타르 축구를 경험한 견해에 대해 2편에서, 베트남 축구 도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3편에 이어집니다.

인터뷰=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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