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현이 호주 출국 전 서울 해방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 김병현 인스타그램
[스포티비뉴스=이재국 기자] "출국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호주에서 다시 공을 잡는 BK 김병현(39)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개월가량 가족과 떨어져 홀로 호주에서 생활해야하는 그로서는 출국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호주프로야구리그(ABL) 멜버른 에이시스는 지난달 29일 구단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는 가장 위대한 한국 선수 중 한 명을 갖게 됐다. 월드시리즈 영웅 김병현을 환영한다"고 김병현 영입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ABL리그 개막일은 오는 15일. 김병현의 소속팀 멜버른은 캔버라 캐벌리와 개막전을 치른다. 이제 개막까지 일주일가량 남았다. 이에 따라 김병현의 마음도 바빠졌다. 비행기표를 구했지만 조금 더 빨리 출국할 수 있는 항공편을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는 "이번주 출국하는데 그냥 조용히 다녀오겠다. 호주에 가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요란스러워지는 것 같다"며 ABL 멜버른 입단이 화제가 되고 있는 사실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 김병현(오른쪽)과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
김병현은 2016년 11월 KIA에서 방출됐다.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국내 다른 팀에 입단하지도 않았기에 대부분의 팬들은 은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그의 존재는 잊혀져 갔다.

그러나 김병현은 자신의 입에서 한 번도 '은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그동안 내면의 도전 정신과 야구를 향한 열정이 꿈틀대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가서 현지 팀 유니폼을 입기도 했고, 올 초에는 모교 광주일고 스프링캠프를 함께 가서 후배들을 돌보며 몸을 만들기도 했다.

올해 중반에 기자를 만났을 때 그는 "아직은 은퇴할 때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제 나이도 있으니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한다"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도전의 길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이번에 호주에서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왜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이에 대해 "과거 좋았던 폼과 공을 어느 순간 잃어버렸는데, 그 느낌을 한 번이라도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좋았던'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시절이다.

물론 안다. 흐르는 세월을 그도 비켜갈 수 없다는 것을. 당시의 공을 완벽히 되찾는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로선 당시의 폼과 느낌을 최대한 가깝게 찾아보겠다는 생각이다. 2003년 시즌 도중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고, 그 이후에도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서서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는 애리조나 시절 이후로는 폼과 감각을 잃어버려 "요령과 경험으로 던졌던 시절"로 기억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 무대에서도 뛰었지만 줄곧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기 위해 도전하는 시간이었다. 식이요법을 통해 고기를 먹지 않고 살을 빼기도 했고, 고기를 섭취하며 다시 살을 찌워보기도 했다. 구속에 신경을 쓴 날도 있었고, 느낌에 중점을 둔 날도 있었다. 투구폼을 바꿔보기도 수십 차례. 그러나 될 듯 말 듯, 닿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는 상황만 반복됐다.

KIA 방출 이후 은퇴와 현역 연장의 갈림길에 서 있던 그에게 길라잡이가 된 것은 엉뚱하게도 꿈이었다. "꿈속에서 제가 야구를 하고 있더라고요. 드디어 내 공을 찾았다고 좋아했는데 일어나보니 꿈이더라고요."

아직 내면에서 야구를 향한 열정의 불꽃이 사그라지지 않았음을 발견하고는 놓았던 공을 다시 잡아보기로 했다. 은퇴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여기서 멈추면 평생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질롱 코리아가 아닌 멜버른을 선택한 이유

▲ 멜버른은 구단 SNS를 통해 김병현의 입단 소식을 알렸다 ⓒ 멜버른 에이이스 페이스북
ABL은 지난해까지 호주 내 6개 팀으로 운영됐지만, 이번 시즌부터 한국선수로만 구성된 '질롱 코리아'와 일본과 대만 선수 위주로 구성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투아타라'가 가세하면서 8개 팀으로 확대됐다. 질롱 코리아는 레전드 투수인 구대성 감독과 박충식 단장이 이끌고 있다. 대부분 프로에서 방출되거나 프로구단에 지명을 받지 못한 이들이 재기를 위해 입단했다. 여기에는 전 KIA 투수 김진우, 전 LG 투수 장진용, 전 롯데 투수 이재곤 등도 포함됐다.

그렇다면 김병현은 왜 질롱 코리아에 입단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질링 코리아는 한국인으로만 구성돼 있기 때문에 김병현으로선 다른 팀보다 편하게 생활할 수 있다. 한국말을 쓰고, 한국 음식이 마련되는 등 적응 문제도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질롱 코리아를 탄생시킨 윈터볼코리아 김현수 대표도 김병현에게 입단 의사를 타진하는 등 영입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몸을 만들고 던져야한다면 그때까지 기다려주겠다", "투수로 나서지 않더라도 괜찮다"며 모든 것을 김병현에게 맞춰주겠다는 뜻도 전달했다. 김병현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질롱 코리아에 대한 국내 팬과 호주 현지 팬들의 관심도가 급증해 홍보와 마케팅 차원에서도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에 김병현이 투수로 나선다면 전력도 향상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함께 운동하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후배들에겐 살아있는 교본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김병현은 "감사하다"면서도 정중히 사양했다. 그는 이에 대해 "서로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혹시 선배 구대성이 감독을 맡고 있어 부담스럽다는 뜻일까.

그는 "구대성 선배님과는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 국가대표도 같이 해봤고, 그 이후 종종 만나기도 했다. 성격도 좋으시고 정말 좋은 분이라 전혀 그런 부분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냥 후배들이 절실하게 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괜히 내가 민폐를 끼칠 수도 있고, 조용히 다른 팀에서 야구를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다"고 멜버른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그의 평소 성격이 잘 묻어나는 대목이다. 김병현으로선 스스로 고민을 하고 해답을 찾기 위해 호주에 가는 상황인데, 오히려 한국 감독과 한국 선수들이 있는 팀에서는 개인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보는 눈도 많아 책임감과 부담감이 커질 수도 있다.

그러자 김현수 대표 역시 "우리로선 아쉽지만 김병현 선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오히려 다른 팀으로 만나서 경기를 하는 것도 호주 현지 팀들이나 팬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수도 있다"며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ABL 정규시즌은 1월 20일까지 예정돼 있다. 팀당 40경기씩 치른다. 일주일에 4경기씩 소화하는데 목~금~토~일요일에만 경기가 편성돼 있다. 월~수요일 3일은 휴식과 이동일이다. 현재 일정대로라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2월 3일 최종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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