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대전, 이재국 기자] 한화 정우람(33)은 올 시즌 생애 최고의 해를 만들었다.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세이브왕에 올랐고, 그의 활약 속에 10년간 음지에 움츠려 있던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가을 창공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미우나 고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맺힌 육성응원을 펼쳐온 한화 팬들은 비로소 처져 있던 어깨를 펴고 11년 만에 찾아온 가을야구를 신명나게 응원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남는다. 무려 11년을 기다렸는데 단 4경기 만에 가을야구를 접었다. 정우람은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진행된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에서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동시에 전했다.

그는 "올 시즌 팬들의 많은 사랑 덕분에 3위라는 좋은 선물로 가을야구까지 갔는데, 조금 더 우리 선수들이 팬들에게 더 많은 경기를 보여드리지 못한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좀 있는 것 같다"고 돌아보면서 "선수단도 어떻게 해서든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가 SK하고 좋은 경기를 하자는 분위기였는데, 준플레이오프 4경기 만에 떨어지게 돼 팬들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선수들도 아쉬운 마음이 많다"고 선수단 분위기를 알렸다.

▲ 한화 정우람이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스포티비뉴스 이재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가족과 시간 보내며 대전에서 마무리훈련

인터뷰를 진행한 6일엔 늦가을 하늘이 높고 청명했다. 그러나 야구장엔 함성 대신 적막감이 감돌았다. 마무리훈련을 위해 대전구장을 출근한 한화 베테랑 선수들의 함성 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그라운드에 앉은 정우람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여기서 한국시리즈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야구를 계속 하고 있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계속 되되며 아쉬움을 삼켰다.

요즘 어떻게 지낼까. 정우람은 "시즌 때 긴장감에서 벗어나 조금 편안하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애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내랑 영화도 많이 보고 그러고 있다"고 근황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내년 시즌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세밀하게 구상하고 있다. 1년을 정신없이 지내다보면 기술적 부분에서 세밀하게 못 들어가고 경기적인 부분만 신경 쓰는데, 이제 시즌이 끝나고 정리가 되는 것 같다"면서 벌써 내년 시즌을 바라보고 있음을 넌지시 알렸다. 그는 주전급 선수들과 함께 대전구장에서 자율적으로 개인훈련을 하며 심신을 추스르고 있다.

▲ [스포티비뉴스=대전, 한희재 기자]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2018 KBO리그 준플레이오프 2차전이 20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9회초 마운드에 오른 한화 투수 정우람이 투구를 하고 있다.
◆ 심수창에게 별풍선 500개 쏜 사연

정우람은 한화에서 방출된 전 동료이자 선배 투수 심수창(37)이 한 인터넷방송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 해설가로 나서자 별풍선 500개를 쏘며 응원을 한 바 있다.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그는 "그걸 누가 알려줬나. 몰래 보냈는데"라며 놀란 표정을 짓더니 "좋아하는 선배고, 방송 정식 해설은 아니지만 그렇게 인터넷 방송으로 하는 걸 보니까 재밌더라. 후배로서 작은 성의를 표시한 것뿐이다. 나름대로는 통 크게 쐈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수창이 형이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고마워하시는 것 같더라"고 뒷얘기를 전했다.

심수창은 해설을 통해 야구의 기술적 얘기도 했지만, 선수단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나 팬들이 궁금해 할 만한 비화들을 재치 있게 풀어내면서 단숨에 ‘심수창 어록’까지 탄생시켰다. 정우람은 "수창이 형은 평소엔 조금 더 그런 재치가 많이 나오는 선배인데, 덜 보여준 것 같다. 평소에도 억지로 웃기기보다는 과묵하고 잘 생긴 얼굴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반전 매력이 있다"고 폭로(?)했다.

◆ 짧게 끝난 가을야구, 미안한 그 순간

한화는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넥센에 2-5로 패하며 1승4패로 무릎을 꿇는 바람에 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됐다. 많은 이들은 2-3으로 뒤진 8회말 무사 1, 2루 위기에서 정우람이 등판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다. 당시 한용덕 감독의 선택은 김범수였다. 그러나 2사 2, 3루로 이어진 위기에서 김범수는 임병욱에게 2타점 2루타를 맞고 말았다. 승기가 완전히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당시 불펜에서 어떤 심정으로 경기 지켜봤을까.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도 불펜에서 팔을 풀기 시작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시간이 좀 부족했다. 김범수는 미리 다 몸을 풀어놓은 상태였다. 준플레이오프 때 공이 워낙 좋았고, 또 자신감도 있었기 때문에 감독님이 범수를 낸 것 같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실투가 아니었다. 타자가 워낙 잘 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내가 받아들였으면 후배들한테 짐을 덜 수 있었는데, 아직도 그때 그 부분이 미안하다. 내가 좀 더 빨리 몸을 풀었으면 2아웃이 됐을 때쯤 나갔을 텐데, 1이닝 전체를 범수에게 넘긴 것 같아 더 미안하다. 그렇지만 범수도 이번 기회에 얻을 수 있는 게 많았을 것이다."

경기 종료 후 구단버스를 타기 위해 구장을 나가다 버스 앞에 진을 치고 있던 팬들을 향해 모자를 벗고 인사한 사연과 당시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한화가 올 시즌 이렇게 가을야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팬 여러분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이었기 때문에 인사는 거기에 대한 보답이었다. 또 가을야구를 더 오래 보여드리지 못한 데 대해 죄송스런 마음도 있었다"면서 "준플레이오프가 끝났는데 팬들이 집에 돌아가지 않고 마지막까지 선수단의 대전 가는 길을 배웅해주시고, 끝까지 우리 선수들 이름을 불러주시고 환호해주셔서 고마웠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큰절을 하지 그랬느냐'는 질문에 그는 유쾌하게 웃은 뒤 "큰절보다 더 큰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화 구단은 가을야구 시작인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앞서 한화생명이글스파크 관중석 의자마다 장미꽃 한 송이와 카드를 놓아뒀다. 그리고 정우람은 가을야구 마지막인 준플레이오프 최종 4차전이 끝난 뒤 모자를 벗고 팬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긴 기다림과 짧은 여운.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은 구단과 정우람의 진심어린 인사였다.

▲ [스포티비뉴스=대전, 한희재 기자] 한화 이글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2018 KBO리그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19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다. 구단에서 팬들에게 마련한 감사의 꽃이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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