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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태의 독일일기] 장인어른과 함께 즐기는 분데스리가, 일상이 주는 힘

유현태 기자 yht@spotvnews.co.kr 2018년 11월 16일 금요일
▲ 아우크스부르크 팬들이 호펜하임 원정에 나섰다. 경기장 분위기를 달구는 중요한 축이 원정 팬이다.
[스포티비뉴스=프랑크푸르트(독일), 유현태 기자] 장인 어른과 사위는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며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 작은 광경에 분데스리가의 힘을 느꼈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중학교 3학년생으로 꾸려진 팀차붐플러스는 지난 9일 출국해 독일 축구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연습 경기와 함께 2차례 분데스리가를 직접 관전하면서 "경기장 분위기가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많은 관중 앞에서 뛰고 싶다며 확실한 동기부여를 얻기도 한다. 

팀차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꿈을 심어주기 위해 분데스리가 경기를 보여주고 싶어했다. 차 감독과 함께 지켜본 경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차 감독이 선수로 뛰었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경기였다. 상대는 샬케04. 두 팀이 맞붙은 지난 11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는 50,700명 관중이 운집했다. 차 감독은 "프랑크푸르트 경기장의 분위기를 함께 느낀 걸로 행복하다. 이런 걸 봤을 때 얼마나 좋을까. 꿈이 생길까. 텔레비전으로 받았던 것을 현장에서 느꼈을 텐데. 내가 가진 것보다 더 좋았다"는 말로 경기장 분위기에 감탄을 표했다.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서 평범한 두 독일인과 나란히 앉아 경기를 봤다. 머리가 하얗게 샌 한 남자와 수염이 턱과 인중을 수북히 가린 한 남자. 언뜻 보기에도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은 경기를 보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독일어를 하진 못하지만 선수들의 이름이 들린다. 축구 경기 20년 이상 본 촉을 살려보면 해석이 가능하다. 아들 뻘인 남자가 "저기 4번이 안테 레비치고, 8번이 루카 요비치에요"라는 설명이다. 아들이 지나치게 친절한 것 같아 질문을 던졌다. "아버지세요?" 답이 돌아온다. "장인 어른이에요. 아내는 집에 있고요."

독일에서 축구를 보는 것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지인과 경기장으로 걸어와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본다. 오랫동안 응원한 팀답게 경기장 분위기나 응원가엔 익숙하지만 각자 원하는 대로 즐기다 돌아간다. 장인과 맥주를 몇 잔이나 마시면서 경기를 지켜본다니 참 소소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장인은 사위를 위해 프레츨을 사오다가 세번째 골 장면을 놓쳤다.

괜히 집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난다. '축구기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고향 팀 경기에 같이 놀러 가곤 했다. 주말마다 일이 많아 부모님하고 축구보러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경기장을 찾으면 어찌 축구만 보겠나. 눈은 피치로 향하지만 맥주도 나눠 마시고, 일상적인 이야기도 나누고, 골에는 같이 환호하는 시간이었다. K리그2(챌린지)가 막을 내려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부모님하고 빠른 시일 내에 같이 지역 K리그 구단을 보러 다녀와야겠다.

▲ 장인을 모시고 경기장을 찾은 사위. 축구장은 남자끼리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가 아닐까.

분데스리가에 엄청난 슈퍼스타는 없지만 수준높은 축구, 열정적인 팬이 있다. 대체 왜? 유럽에서 여러 차례 축구 경기를 본 경험을 살린다면, 독일엔 밥 먹으러 가듯 자연스럽게 경기장을 찾는 현지 팬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흔히 말하듯 '축구가 일상'인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팀차붐플러스가 VfB슈투트가르트, 다름슈타트 유소년 팀과 경기를 치를 때 다른 운동장에선 다른 연령 대의 아이들이 공을 차고, 부모도 자연스레 축구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축구가 참 자연스러웠다. 이런 팬들의 수가 충분히 많으니 경기장은 언제나 북적인다.

팀차붐플러스와 다름슈타트 유소년 팀의 경기는 FC에를렌세의 클럽 하우스에서 벌어졌다. 에를렌세의 클럽 하우스에서는 간단한 카페테리아를 운영하는데, 운영하는 이들이 클럽의 서포터였다. 자발적으로 구단 운영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사실 한국과 독일의 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의 아이들은 아버지는 물론 할아버지, 혹은 증조까지 축구에 빠진 모습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축구를 하고 또 관람하고, 그 자체를 즐긴다. 축구 선진국이 된 것엔 이유가 있다. 한국 축구는 기초부터 탄탄한 독일을 하나의 롤모델로 생각한다. 다만 아직 독일 수준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 2층 좌석 일부를 제외하곤 가득 경기장을 메운 프랑크푸르트 팬들. 그리고 샬케 원정 팬.

조금 더 냉정히 생각해보자. 축구 좀 못하면 어떤가, 축구가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22명의 사람이 공 하나를 보고 이리저리 90분간 뛰는 것 아닌가. 행위 자체만 보면 별것도 아니다. 

하지만 축구에 열광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있다. 차 감독은 "우리가 2002년 월드컵 했을 때 감동을 돌아보자. 축구를 잘해서 행복했다. 축구를 잘해서 행복을 돌려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나"라며 축구 발전에 힘쓰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7월 러시아월드컵 때도 우린 독일을 2-0으로 꺾은 뒤 행복해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일상에서 그렇게 의미있는 일이 얼마나 있나. 우리가 즐기고 의미를 부여하면 중요한 일이 되곤 한다. 축구도 그렇게 보면 분명 의미가 깊은 일이다.

선수들은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산다. 하지만 K리그처럼 소소한 우리 옆의 축구, 진짜 일상적인 축구는 평소 관심을 받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4년에 한 번은 반드시 16강에 올라야 한다고 목표를 외치곤 한다. 한국 축구는 항상 옆에 있는 가족이 아니라, 기념일에만 만나는 여자친구 같다. 사실 'K리그를 사랑해 주세요'라는 외침은 공허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독일의 일상적인 축구 인기에 부러움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독일 분데스리가는 유럽에서도 가장 팬 층이 탄탄한 리그다. 2017-18 시즌 기준으로 평균 관중은 44,646명으로 38,297명을 기록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보다 많았다. 독일이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관중이 드는 것은 2006년 독일월드컵을 치러 경기장 규모가 크고, 구단의 소유 구조를 결정하는 '50+1 룰'을 유지하는 등 많은 팬들이 축구를 즐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하지만 경기장이 큰 것, 티켓 값이 비싸지 않은 것이 분데스리가의 인기 요소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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