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끝이 아닙니다. 운동선수에게 새로운 시작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미래를 가꿔 나가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습니다. 스포티비뉴스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사는 8명의 각계각층 인사들을 만나 선수 생활 이후 삶에 대한 조언을 들어 봤습니다. 선수들이 어떻게 인생 2막을 그려 나가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꿈꾸고, 준비하고, 도전하라고 말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기획·제작됐습니다.

[스포티비뉴스=글 김건일 기자·영상 송경택 PD] 한국 무술 태권도는 주먹과 발을 사용해 상대를 공격하는 투기 무술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방어다. 평화와 공정성을 존중하는 태권도의 정신적 기반 때문이다. 국민생활체육회에 따르면 태권도는 배우는 이가 수련의 목적을 결코 남을 공격해서 제압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극복의 고결한 태도에 두도록 만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국기원과 세계태권도연맹(WTF)은 태권도를 어떻게 공격적으로 바꿀까 고민한다.

1994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태권도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퇴출 위기에 몰렸고 2024년 올림픽에 앞서 일본 무술 가라테와 생존 경쟁이 불가피하다.

태권도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전 세계적인 지적에 한 멕시코 청년이 반박한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헨리 세후도, 2008 베이징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론다 로우지, 2004 아테네올림픽 레슬링 4위 다니엘 코미어, 킥복싱 세계 챔피언 출신 스티븐 톰슨까지 각 무술 일인자가 모인 UFC 무대에서 태권도로 우월성 증명에 나섰다.

UFC가 소개하는 페더급 11위 야이르 로드리게스(26, 멕시코)의 주 종목은 한국 무술 태권도. 가장 좋아하는 태권도 기술을 묻자 "공중회전 발차기"라고 말했다. 정식 기술 명은 540도 발차기다. 로드리게스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검지를 빙빙 돌렸다. 

로드리게스는 실제로 경기에서 태권도를 한다. 뒤돌려차기, 나래차기, 옆차기 등 태권도를 한 번쯤 배웠을 한국인이라면 낯익은 기술이 옥타곤에서 펼쳐진다.

전 세계가 지적하는 바와 달리 로드리게스는 재미있는 파이터로 평가받는다. UFC에서 8번 싸워 3차례나 보너스(명승부 보너스 1회, 퍼포먼스 보너스 2회)를 땄다. 조 로건 UFC 해설위원은 "단연코 UFC에서 가장 화끈한 파이터"라며 로드리게스를 치켜세웠다.

태권도는 어떤 무기의 사용도 없이 손과 발만 쓰지만 일편필승의 가공할 공격력을 갖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옥타곤에서 11승 2패 전적을 쌓았다. 지난 11일(한국 시간) 로드리게스와 경기를 앞두고 정찬성은 "발차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계의 날을 바짝 세웠다.

축구 강국으로 알려진 멕시코는 태권도가 인기 스포츠다. 올해로 보급 49주년째. 2008년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부문에서 기예르모 페레스(Guillermo Pérez)와 마리아 에스피노사(María Espinoza)가 금메달 2개를 목에 건 뒤로 태권도 붐이 커졌다.

로드리게스는 당시 태권도장에 들어간 꿈나무 중 한 명이었다. 5살에 올림픽 태권도 선수를 꿈꾸며 태권도 흰띄를 맸다.

"5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고, 8년 정도 했다. 검은띠는 못 땄다. 많은 사람이 내가 검은 띠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어떤 규정들 때문에 검은띠를 못 땄지만 조건은 다 갖췄다. 원래는 올림픽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었다. 많은 태권도 선수들이 태권도 선수로 은퇴를 하고 나서 현역 생활을 관두는 경우가 많다. 한 종목에서 잘 풀리지 않았다면 다른 종목에 도전해야 하는 등 무엇이든 계속 노력해야 한다."

로드리게스는 태권도를 배운 지 8년째 되는 해 몇몇 규정에 발목이 잡혀 태권도를 포기했다. 배운 게 무술이라 유도, 복싱으로 전향했지만 발차기를 했을 때 짜릿한 감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발과 손을 동시에 쓰는 킥복싱을 접하고 빛을 찾았다. 발차기와 함께 유도, 복싱을 모두 쓸 수 있는 종합격투기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을 꿈꿨지만 태권도에서 더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또 다른 올림픽 종목인 유도로 전향했다. 2년 정도 연습했고 토너먼트도 경험했다. 하지만 유도를 계속하기에는 경제적인 부담이 컸다. 그래서 유도보다 상대적으로 싸고 멕시코인들이 많이 하는 복싱으로 전향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질렸다. 나는 발차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발차기를 하는 운동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킥복싱을 1년 동안 연습했다. 종합격투기에 대한 비디오는 봤지만 그곳에서 싸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킥, 펀치, 팔꿈치, 무릎 공격을 하는 종합격투기를 보고 바로 반해버렸다. 17살에 시작했다."

정통 태권도와 종합격투기는 달랐다. 정통 태권도는 겨루기를 할 때 보호 장구를 차는 반면 종합격투기는 맨몸으로 싸운다. 상대를 쓰러뜨리기에 앞서 내 몸을 먼저 걱정해야 했다.

"기술 자체를 바꿔야 했다. 힘들었다. 태권도는 발등으로 상대방을 공격하지만 종합격투기는 발등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내가 다친다. 스피드를 유지하면서 기술을 바꿔야 했다. 발차기를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도 잘하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나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직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태권도 발차기는 속도, 민첩성, 반응속도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밸런스다. 태권도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기 신체를 제어해서 원하는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로드리게스는 태권도로 성공시대를 열었다. 종합격투기 데뷔전에서 이겼고 UFC에 들어와선 6연승을 달렸다. 통산 11승 2패 4KO 승 전적을 자랑한다. 지난 11일 정찬성에게 경기 종료 1초를 남기고 역전 KO승리를 거뒀다.

"태권도는 어려운 스포츠다. (멕시코에선) 경쟁자가 적지만 성장을 위해서는 좋은 경쟁자가 필요하다. 멕시코 태권도 선수들은 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하거나 올림픽에 도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다. 가끔 우리는 혼란스럽다. 다들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 실력을 깨닫고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기획·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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