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와무라 나나카는 지하 아이돌 '가멘죠시'의 멤버로 올해 프로 파이터로 데뷔했다. ⓒ앨리스프로젝트

-연말 기획- 이교덕 기자와 정윤하 칼럼니스트의 일본 격투기 기행 ①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격투기 전문 기자] 일본에선 방송에 데뷔해 전국구 스타로 뜨기 전, 특정 지역에서 먼저 활동하는 아이돌 그룹들이 있다. '지하 아이돌(地下アイドル)'이라고 부른다. 왠지 무시무시한(?) 어감인데, 팬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려는 게 특징이다.

유명 걸 그룹 AKB48도 도쿄 아키하바라를 지역 기반으로 성장한 지하 아이돌 출신이다. 그룹 이름의 AKB가 전자 제품 거리로 유명한 아키하바라(Akihabara)의 준말이다.

'가멘죠시(假面女子, 가면여자)'라는 꽤 유명한 지하 아이돌이 있다. 영화 '13일의 금요일' 살인마 제이슨처럼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이색 걸 그룹이다. 취향 저격당한 마니아 팬들이 많다. 페이스북 팔로워는 2018년 12월 현재, 40만 명에 이른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11만 명을 넘었다.

가와무라 나나카(22)는 독특한 콘셉트의 가멘죠시에서도 가장 독특한 길을 걷고 있는 멤버다. 158cm 아담한 키에 예쁜 외모로 주목받는 데 그치지 않고 올해 프로 파이터로 데뷔해 화제를 모았다.

가와무라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6년 동안 배구를 했다. 2013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연예 기획사 앨리스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우연한 기회에 격투기를 접했다. 지난해 건강한 몸매를 만들려고 종합격투기 체육관에 다니다가 소질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결혼 전 프로 레슬러가 되려고 했다는 과거를 알고 더 열정을 불태웠다.

▲ 가와무라 나나카는 일본 여성 종합격투기 단체 '딥 쥬얼스'에서 활동한다. 프로 전적 2승 2패. ⓒ도쿄(일본), 이교덕 기자

곧 아이돌과 프로 레슬러를 겸업하는 '이도류'를 선언했고, 지난 3월 종합격투기로 영역을 넓혔다. 일본 여성 종합격투기 단체 딥 쥬얼스(DEEP JEWELS) 19에서 프로 데뷔전을 펼쳤다.

패배→승리→패배로 전적 1승 2패를 쌓고 있다가 지난 1일 일본 도쿄 신주쿠페이스에서 열린 딥 쥬얼스 22에서 도모미 소우다(39)에게 3-0으로 판정승해 2승째를 따냈다.

외모와 달리, 싸움꾼 기질이 있다. 마이크를 들고 노래할 땐 가녀린 소녀지만, 오픈핑거글러브를 끼면 무서운 악바리로 바뀐다. 얼굴 상처를 걱정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고 난타전을 펼친다.

"떠 볼려고 별짓 다 한다"고 치부하기엔 실력이 만만치 않다. 기술 수준도 계속 향상되고 있어 앞날이 기대되는 유망주로 꼽힌다. 프로 레슬러 다카기 산시로는 "상상한 것을 그대로 할 수 있는 운동 능력을 지녔다"고 칭찬했고 "야마자키 츠요시 종합격투기 코치는 "연습보다 실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타입"이라고 분석했다.

가와무라의 등장은 일본 여성 격투기 세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세계 최초 지하 아이돌 프로 파이터'라는 타이틀이 눈에 띈다.

가와무라가 출전하면 딥 쥬얼스 경기장은 '뮤직뱅크' 분위기로 바뀐다. 가멘죠시 동료들이 특별 공연을 펼치고, 열혈 팬들이 입장권을 사서 경기장에 들어온다. 순식간에 콘서트홀이 된다.

▲ 가멘죠시의 특별 공연, 팬들이 함께 열창한다. 그리고 가와무라 나나카의 경기를 가멘죠시 멤버와 팬들이 보면서 응원한다. ⓒ도쿄(일본), 이교덕 기자

가와무라를 보기 위해 대회 전날 공개 계체에도 여러 팬들이 찾아온다. 가와무라의 기획사는 여기서 유료 악수회를 연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같이 찍고 악수를 한 번 하면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데 2000엔(약 2만 원)을 받는다. 휴대폰 사진 및 영상 촬영은 철저히 금지한다.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이 즐기는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2000엔을 내고 가와무라와 악수하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줄을 서서 또 2000엔을 내는 한 남성 팬도 볼 수 있었다. 유료 악수회는 보편화돼 있는 일문 문화 가운데 하나다.

일본에서 여자 격투기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비주류에 속하다가 최근 주류로 급부상하고 있다. 딥 쥬얼스가 자주 열리는 신주쿠페이스는 600석 규모의 그리 크지 않은 경기장인데, 입석으로 보는 관중까지 포함해 총 1000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모일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티켓 가격은 최하 5000엔(약 5만 원)으로 대부분이 유료 관중이다.

일본 최대 격투기 대회인 라이진(RIZIN)에서도 여성 경기가 빠지지 않는다. 나스카와 텐신, 호리구치 교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 파이터가 바로 슛복싱 출신 레나다. 여성 경기가 없던 프라이드 시절 "남자 중 남자 나와라"를 밀던 다카다 노부히코 본부장은 라이진에선 "강자들이여 나와라"를 외친다.

가와무라는 큰 무대인 라이진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알리고 싶어 한다. "12월 31일 연말 이벤트에 출전하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다.

▲ 정윤하 칼럼니스트는 가와무라 나나카와 사진을 찍고 악수를 했다. 그리고 2000엔을 냈다.

실제로 아이돌과 사진 찍고 4000엔을 쓴 정윤하 칼럼니스트의 한마디

"이교덕 기자가 내게 말한다. 사람들이 가와무라와 사진을 찍는다고. 너도 가서 한 번 찍어 보라고. 줄을 섰다. 사진을 찍었다. 폴라로이드다. 질도 좋다. 돌아서는 순간,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손을 내민다. 사진 한 방에 2000엔, 일본 문화 화끈하다!

라이진 취재를 갔을 때였던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아이돌 스타였던 이노우에 다카코를 만났다. 그녀도 이제 40대다. 더 이상 아이돌은 아닐 테지.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당신의 오랜 팬입니다.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 주는 그녀, 사진은 잘 나왔다. 물론 이번에도 내 지갑은 2000엔의 액수만큼 가벼워졌다. 이교덕 기자가 미소짓는다. 스타와 팬이 주고받는 것, 이것이 일본 문화의 핵심이다. 좋아한다면 아낌이 없다."

정윤하 칼럼니스트 jungyh@bananamall.co.kr

[일본 격투기 기행]은 매주 일요일 게재됩니다. 다음 편은 12월 9일 '역도산의 묘를 찾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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